[위기의 한국 관광②] K여행 옥죄는 규제…글로벌 여행 플랫폼은 '무풍지대'

남가희 기자 (hnamee@dailian.co.kr)

입력 2026.08.12 07:00  수정 2026.08.12 07:00

국내 기업 '겹겹 규제'…해외 플랫폼은 규제 공백

규제 빈틈 속 소비자 피해도 커져

관리·감독 부처 제각각…"범정부 컨트롤 타워 필요"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구역이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뉴시스

글로벌 온라인 여행 플랫폼(OTA)가 국내 여행시장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하는 가운데, 국내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느슨한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며 '규제 역차별' 논란이 커지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여행·플랫폼 기업들은 사업 과정 전반에 걸쳐 다양한 법적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


국내에서 여행 사업을 하는 여행사는 관광진흥법에 따라 여행업 등록을 하고 보증보험 등에 가입해야 한다. 여행상품 거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장치다.


정보보호와 가격 표시에도 별도의 규제가 적용된다.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일정 요건을 충족한 사업자는 정보보호 및 개인정보보호 관리체계(ISMS-P) 인증을 받아야 한다.


또 전자상거래법에 따라 상품 첫 화면에는 소비자가 구매를 위해 필수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포함한 총금액을 표시해야 한다.


이와 달리 글로벌 온라인 여행 플랫폼은 본사와 서버를 해외에 두고 국내에서는 단순 지사 형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현행법에 따른 실질적인 규제와 법 집행에 한계가 있다.


실제로 해외 온라인 여행 플랫폼에 대한 규제 공백이 이어지면서 이를 파고든 영업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특히 가격 표시 방식은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대표적 규제 격차로 꼽힌다.


국내 여행·플랫폼 기업들은 상품을 판매할 때 세금과 수수료 등 소비자가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비용을 포함한 가격을 표시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글로벌 온라인 여행 플랫폼(OTA)에서는 상품 검색 단계에서 세금이나 수수료 등을 제외한 낮은 가격을 먼저 노출하고 최종 결제 단계에서 이를 추가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상품 선택 단계에서 글로벌 온라인 여행 플랫폼(OTA)의 상품이 국내 업체보다 저렴한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어 일종의 '다크패턴(눈속임 상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와 소비자단체가 올해 해외 숙박 예약 플랫폼 6곳과 이용자 1000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는 세금과 수수료를 제외한 가격을 우선 표시하거나 환불 조건을 눈에 잘 띄지 않게 안내한 사례가 확인됐다.


조사 대상에는 아고다와 에어비앤비, 익스피디아, 부킹닷컴, 트립닷컴, 호텔스닷컴 등이 포함됐다. 응답자의 55%는 해당 플랫폼 이용 과정에서 불편이나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한국 관광을 온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 ⓒ뉴시스

소비자 분쟁 시 국내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도 주요 문제로 지적된다. 트립닷컴 이용약관 제12조는 분쟁 발생 시 싱가포르 법률을 적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내에서 수년간 영업하면서 기본적인 신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례도 확인됐다.


트립닷컴은 2017년 한국 시장에 진출한 이래 2025년까지 8년간 통신판매업 신고조차 하지 않고 영업을 이어왔다.


이에 공정위는 지난 6월 트립닷컴 싱가포르 법인과 트립닷컴코리아가 통신판매업 신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일부 항공권 취소 대금을 소비자가 결제한 수단이 아닌 항공사 바우처로 환급한 행위 등에 시정명령과 과태료 총 1000만원을 부과했다.


트립닷컴 관계자는 "운영 프로세스와 고객 지원 체계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으며, 여행객에게 더 나은 선택권을 제공하기 위해 항공권 환불 정책도 업데이트했다"며 "앞으로도 글로벌 표준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한국 소비자들이 더욱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고객 보호 정책과 서비스 운영 체계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보보호 분야에서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일부 해외 온라인 여행 플랫폼은 정보보호 및 개인정보보호 관리체계(ISMS-P) 인증을 받지 않은 상태다.


이처럼 글로벌 온라인 여행 플랫폼들이 각종 규제를 피해가는 사이 그 부작용은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 7월까지 접수된 아고다와 트립닷컴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총 3456건에 달했다. 아고다는 2190건, 트립닷컴은 1266건으로 집계됐다. 환불 거부와 과도한 취소 수수료 부과 등이 대표적인 피해 사례로 꼽힌다.


이에 대해 트립닷컴 관계자는 "한국 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한국소비자원 등 국내 유관기관과 긴밀한 협력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접수되는 민원 유형을 주기적으로 분석해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고 있으며, 24시간 한국어 전담 고객센터를 운영하는 등 소비자 불편 해소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규제 격차는 국내 여행시장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막대한 자본력과 글로벌 이용자망을 갖춘 글로벌 온라인 여행 플랫폼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규제 부담까지 차이가 나면서 국내 기업의 경쟁 여건이 더욱 불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국내외 사업자가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총액 표시와 환불, 수수료, 검색 노출 기준을 투명하게 만들고 국내 소비자가 신속하게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글로벌 온라인 여행 플랫폼을 종합적으로 관리·감독할 정부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는 관광산업과 여행업 제도를 담당하고, 공정위는 전자상거래와 약관, 경쟁질서를 살핀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전기통신 관련 이용자 보호를 담당하고 개인정보 문제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맡는다.


하나의 글로벌 온라인 여행 플랫폼을 놓고도 여행업 등록은 문체부, 가격 표시와 약관은 공정위, 개인정보는 개인정보위 등 사안별로 관리·감독 주체가 나뉘어 있는 셈이다.


문제는 각 기관이 소관 법률에 따라 개별적으로 글로벌 온라인 여행 플랫폼을 관리하면서 사업 전반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보는 주체가 없다는 점이다.


부처 간 규제 영역의 경계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고, 국내외 사업자 간 규제 형평성을 일관되게 조율하기도 어려워 규제 공백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온라인 여행 플랫폼 시장의 거래질서와 데이터 관리, 국내 관광기업의 경쟁력을 함께 다룰 수 있는 범부처 대응 체계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위기의 한국 관광③] 글로벌 여행 플랫폼으로 쏠리는 고객…K여행 생태계 종속될라>에서 이어집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남가희 기자 (hnamee@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