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납치도 웃으며 넘긴다…무거운 설정 낮추는 코미디의 힘 [D:영화 뷰]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6.06.26 07:03  수정 2026.06.26 07:03

비극적 중압감 허물고 관객을 이야기 안으로 이끄는 완충 장치

실패와 재기, 납치와 복수. 소재만 놓고 보면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코미디는 이 무거운 상황을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장치다. 최근 극장 개봉작 ‘와일드 씽’과 넷플릭스 영화 ‘남편들’은 서로 다른 플랫폼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지만, 위기를 웃음으로 승화한다는 점에서 같은 코미디의 힘을 보여준다.


‘남편들’ 스틸컷 ⓒ넷플릭스

23일 넷플릭스에 따르면 ‘오늘 대한민국의 톱 10 영화’ 1위는 지난 19일 개봉한 ‘남편들’이 차지하고 있다. 범죄 조직에 납치된 아내를 구하기 위해 전남편과 현남편이 얼떨결에 손을 잡는 코미디 액션 영화로, 신선한 설정과 배우들의 유쾌한 티키타카를 내세운다.


극장에서는 ‘토이스토리5’와 ‘군체’ 사이에서 '와일드 씽'이 코미디 영화로 고군분투 중이다. 한때 무대를 호령했지만 불의의 사건으로 잊힌 혼성그룹 트라이앵글이 20년 만에 다시 마이크를 잡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작품의 출발점은 모두 위기다. ‘와일드 씽’의 위기는 사라진 이름과 잊힌 무대, 그리고 다시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2000년대 초 혼성그룹이라는 설정은 향수를 불러오지만, 그 안에는 한때 빛났던 사람들이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대중 앞에 서야 하는 민망함과 절박함이 깔려 있다. 그러나 중압감을 어딘가 어색하지만 진심이 담긴 무대 퍼포먼스를 통해 실패의 무게를 웃음과 향수로 감싼다.


‘남편들’ 역시 전남편 황충식(진선규 분)과 현남편 이민석(공명 분)이 아내와 딸을 구하기 위해 손을 잡는 설정은 영화의 표면적인 줄기다. 범죄, 납치, 가족 위기, 복수 서사가 차례로 얹히지만 영화는 이를 어둡게 끌고 가지 않는다. 충식과 민석의 유치한 신경전, 신생 마약 조직을 이끄는 마도준(김지석 분)과 구세력 김용강(윤경호 분) 사이의 엇박자, 여러 인물이 얽히며 벌어지는 상황극이 사건의 긴장을 낮춘다.


한국 코미디는 오래전부터 무거운 장르를 웃음으로 낮춰왔다. ‘극한직업’은 마약반 형사들의 잠복수사를 치킨집 운영이라는 생활 코미디로 바꿨고, ‘엑시트’는 도심 유독가스 재난을 취업 실패 청년과 전 직장 동료의 민망한 공조로 풀어냈다. ‘육사오’는 남북 군사 대치라는 배경을 로또 1등 복권 쟁탈전으로 비틀었고, ‘헬로우 고스트’는 죽음과 가족 상실의 정서를 귀신들과의 동행 코미디로 낮췄다. 웃음은 사건의 무게를 지우지 않는다. 대신 관객이 그 무게를 감당하지 않고도 이야기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든다.



‘와일드 씽’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위기는 꼭 비극적으로만 다뤄질 필요는 없다. ‘와일드 씽’은 재기 실패의 두려움을 음악과 무대, 배우들의 과감한 망가짐으로 풀어낸다. 헤드스핀을 연마한 강동원, 랩과 무대 위 반전 매력을 보여주는 엄태구, 호탕한 에너지를 더하는 박지현, 비운의 2위 가수로 극의 웃음을 키우는 오정세의 조합을 보고 웃다 보면 어느 순간 다시 무대에 오르려는 이들의 땀과 절박함이 보인다.


‘남편들’도 마찬가지다. 납치된 가족을 구해야 하는 상황은 본래라면 긴박한 범죄 액션의 재료다. 그러나 영화는 이 위기를 코미디로 바꾼다. 딸에게 짝퉁 스마트워치를 사주는 충식과 이미 진짜 애플워치를 준비한 민석의 대비처럼, 영화는 인물들의 생활감과 허술함을 웃음의 장치로 삼는다. 동시에 그 짝퉁 스마트워치가 딸의 위치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식의 반전은, 서툴고 낡아 보이는 방식도 때로는 제 역할을 한다는 안도감을 남기기도 한다.


코미디의 힘은 현실의 위기를 없애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실패와 불안, 납치와 복수 같은 상황을 웃으며 지나갈 수 있는 거리로 바꾸는 데 있다. 그래서 코미디는 가벼운 장르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가장 무거운 상황을 가장 낮은 진입장벽으로 통과하게 만드는 장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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