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나홍진·연상호…세계가 기억하는 ‘한국 영화의 얼굴’ [칸, 다음 K무비를 묻다②]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5.28 14:10  수정 2026.05.2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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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춘향뎐', 한국 영화 최초 칸 경쟁부문 문열어

"독착성·장르성 탁월"

올해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가 한국 영화의 화려한 귀환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세계 영화계가 수십 년간 쌓아온 K무비에 대한 확고한 신뢰와 독자적인 브랜드 가치가 자리 잡고 있다.


국내 영화 산업의 체력이 약화했다는 우려 속에서도 칸이 다시 한국 영화를 전면에 호출한 이유는, 한 감독의 반짝 흥행이나 일시적인 화제성에 기댄 결과가 아니다. 박찬욱·봉준호·이창동·홍상수에서 나홍진·연상호·정주리로 이어지는 감독 계보, 세대를 거치며 꾸준히 이름이 축적된 이 구조 자체가 세계 최고 권위의 무대에서 한국 영화가 구축한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칸 입장에서 한국 영화는 이제 낯선 손님이 아니라 믿고 기다리는 공급처가 됐다.


그 역사는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한국 영화 최초로 칸 경쟁부문에 초청되며 문을 열었고, 이창동·홍상수가 뒤를 이으며 한국 영화의 이름을 칸에 새기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2004년이었다.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K무비라는 이름을 세계에 처음 각인시켰다. 이후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2009년 심사위원상을, 이창동 감독의 '시'가 2010년 각본상을 받으며 한국 영화는 경쟁부문의 단골 수상국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리고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으면서 한국 영화는 세계 영화계의 중심으로 완전히 진입했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 봉준호 감독, 송강호ⓒ뉴시스

칸이 한국 영화에 매료된 데는 이유가 있다. 칸은 극단적인 예술성과 새로움을 요구하면서도 관객을 압도하는 완결성을 함께 본다. 영국에서 온 영화 평론가 에드워드는 "한국 영화는 이 까다로운 기준을 장르성과 작가성의 기묘한 결합이라는 독자적 문법으로 충족해왔다. 한국의 스릴러·공포·액션·사회극은 단순히 말초적인 자극에 머물지 않는다. 한국 사회 특유의 현실성과 계급 갈등, 인간 내면의 밑바닥을 긁어내는 감정의 밀도를 장르적 쾌감과 결합해, 대중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감독 고유의 강렬한 연출 스타일을 남기는 데 탁월하다"라고 한국 영화를 평했다.


이어 "무엇보다 칸은 원래부터 감독의 개성과 영화적 언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영화제다. 그런데 한국 영화는 상업성과 작가주의를 동시에 결합하는 데 강점을 보여왔다. 익숙한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감독 고유의 스타일과 감정 리듬이 선명하게 살아 있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는 칸이 선호하는 작가적 장르영화의 영역을 꾸준히 확장해왔다"라고 말했다.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작 '악인전'·'공조'·'헌트'·'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베테랑2', '군체'ⓒ뉴시스

이러한 한국 장르영화의 에너지를 가장 직관적으로 증명하는 무대가 바로 미드나잇 스크리닝이다. 경쟁부문이 작가주의의 전장이라면, 미드나잇 스크리닝은 한국 장르영화의 화력이 가장 날것으로 폭발하는 섹션이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장르 영화를 소개하는 이 심야 상영 부문에서 한국 영화는 사실상 단골 초청국이다.


2008년 나홍진의 '추격자'가 한국형 스릴러의 탄생을 알리며 칸을 강타한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후 '표적'(2014)·'오피스'(2015)가 뒤를 이었고, 2016년 연상호의 '부산행'은 K-좀비 신드롬의 시발점이자 글로벌 메가 히트작으로 기록되며 세계 영화계에 충격을 안겼다. 이어 '불한당'·'악녀'(2017)·'공작'(2018)·'악인전'(2019)까지 쉼 없이 이어지며 밤의 뤼미에르 대극장을 달궜고, 코로나 공백(2020·2021) 이후에도 '헌트'(2022)·'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2023)·'베테랑2'(2024)·'군체'(2026)로 지난해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이 섹션을 점령해 왔다.


ⓒ'군체' 미드나잇 스크리닝 상영을 기다리는 관객들

뤼미에르 대극장을 가득 채운 전 세계 관객들이 한밤중에 한국 영화에 환호하고 기립박수를 보내는 풍경은 이제 칸의 익숙한 시그니처가 됐다.


이러한 비평적 찬사는 예술적 호평에만 머물지 않고 칸 필름 마켓을 뒤흔드는 상업적 가치로 직결되고 있다. 올해 '호프'는 마이클 패스벤더·알리시아 비칸데르 등 할리우드 탑스타들을 합류시키고 북미 배급권은 네온이, 라틴아메리카·유럽 다수 지역은 무비가 선점하며 200여 개국 선판매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나홍진 감독 신작에 대해 "쉼 없는 속도감과 강렬한 스펙터클로 가득 찬 작품"이라고 전했다. 칸은 거대한 예술 축제인 동시에 세계 영화 비즈니스의 자본이 이동하는 거대한 마켓이다. 한국 영화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다만 세계 영화계의 시선이 찬사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칸영화제 프레스 센터에서 만난 루니(미국)는 "'호프'와 '군체'가 보여준 글로벌 자본과의 결합은 K무비가 가진 상업적 영리함을 대변한다"면서도 "세계가 한국 영화에 진정으로 기대하는 바는 자본의 규모가 아니라 시스템에 안주하지 않는 과감한 오리지널리티와 날 것 그대로의 에너지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짚었다.


프랑스 영화학도 리오는 이 지점을 보다 직접적으로 짚었다. 그는 "한국 영화의 장르는 독특하고 색깔도 진해서 좋다. 그런데 최근에는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쉬웠다. 한국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독창적인 색깔을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호프'는 수상에 실패했지만 경쟁부문 상영 직후부터 현지 언론과 글로벌 배급 시장에서 가장 강한 반응을 끌어낸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박찬욱·나홍진·연상호라는 이름은 올해도 칸에서 한국 영화의 현재를 상징했다. 그리고 이는 여전히 세계 영화계가 한국 영화 특유의 장르적 에너지와 감독 브랜드를 강하게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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