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냄새가 이렇게 좋을 수는 없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09.07.25 09:33  수정

<영락원에서 온 편지①-이인녕씨의 전원생활 이야기>아내 달래느라 2년 걸려


대구에서 이곳 경산시 자인면 단북리로 이사를 온 게 4년이다.

혼자 가라던 아내를 달래느라 2년 정도 걸렸다. "30년 이상 밤낮없이 일 했고 아이들도 제 자리 찾아가니 내하고 싶은 일 푸른 자연과 살고 싶다"고 아내를 설득하고 또 했다.

지쳐서 "당신 마음대로 하라"는 아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부동산소개소에 집 팔아달라고 하니 아내가 기가 막힌다고 했다

물론 조건은 있었다. 정원에 잔디 깔고 나무를 심자고 해서, 얼른 조경업자에게 부탁해 아내가 하자는 대로 다 했다. 정원석 놓고, 도로쪽 차벽목으로 대나무 심고, 소나무, 백일홍, 감나무 연산홍 심고, 정자 짓고, 물론 한도액은 아내 몰래 정해주고, 집 이름은 영락원(永樂園)으로 했다. 아내 영길이가 노후에 즐겁게 보내라고.

350평 토지에 건물 30평, 정원 150평, 텃밭 150여평으로 건물은 몇해 전에 지은 것이고 정원은 업자와 영락원 원장이 알아서 하고 텃밭이 내 몫이다. 처음에는 인삼, 더덕, 도라지, 오가피 등 뭐든지 다 심고, 토종닭, 오골계를 영주에 있는 축산기술연구소에 가서 분양받고 흑염소도 3마리 길렀다.

농업고등학교 출신, 농민의 아들인데 그렇게 싫던 농사일이 나이가 들면서 흙을 만지고 있노라면 흙냄새가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씨뿌리고, 김매고, 물 주고, 상치, 배추, 더덕잎 따서 양푼이에 밥 비벼 아내와 같이 먹는 우리시대 최고의 밥상은 더욱 일품이다.

뒤뜰에 수십년 된 뽕나무가 있어 초여름 한철 오디 따느라 정신없다. 오디는 설탕과 1대1로 즙을 담아 마시기도 하고 소주에 오디주를 담는다. 오디는 농가에서 나는 최고의 건강식품인 것 같다.

오디도 따고 토종닭에 유정란과 신선한 채소가 건강에 좋다고 친구들이 자꾸 몰려온다. 대학동기들이 떼를 지어서 부부간에 오면 무조건 1박 2일이다.

친구들이야 좋지, 별이 반짝이는 달빛아래 파란 잔디위에서 즐거운 노랫소리와 지글거리는 삼겹살과 소주 실컷 마시고 나면 영락원 원장님 특식이 바로 녹두죽이다. 고기와 술먹은 뒤 밥 생각은 없고 깔끔하고 구수한 영락원 특식 녹두죽 때문에 왔던 손님 또 온다.

그래서 영락원 원장님 불평이 많다. 손님이 많으니 일이 자꾸 많을 수 밖에. 뒤늦게 편하라고 영락원이라더니 일하러 왔냐고. 한번씩 다녀가면 조용해 지겠지라며 달래곤 한다.

겨울에는 벽난로 앞에서 도란도란 살아가는 얘기와 고구마 굽는 재미가 일품이다. 동네가 복숭아 농사하는 곳이라 벽난로 땔감은 얼마든지 있고 연료비 안들고 새파란 불꽃을 내며 타는 복숭아나무 타는 냄새도 향기롭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지역 특성도 알아보지도 않은 인삼재배, 닭장에 들어온 족제비, 시끄럽고 냄새나고 파리가 많이 끓는 염소사육은 실패했다.

겨울이 지나면 벽난로 안에 들어가 낮잠 자고, 여름엔 장난감 말을 타고 텃밭의 새싹만 골라 밟고 다니며, 병아리, 계란, 토끼새끼 갖고 놀고 잔디밭에 뒹구는 개구쟁이 손자들의 재롱을 보고 있노라면, "잘 왔구나. 이게 영락원이구나."

글/이인녕 경상북도장애인체육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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