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GTX-①모스크바 “지하 100m 거미줄”

입력 2009.06.22 18:29  수정

하루 900만명 이용…“가장 안전하고 빠르다”

“고용창출·시민편의 두 토끼 잡는 최고 전략”

‘미래형 교통수단’인 철도. 그중에서도 지하철은 자타공인 시민에게 가장 친숙한 친구다. 수도권 시민들에겐 든든한 친구가 하나 더 생긴다. 최근 경기도가 제안해 국가사업으로 추진 중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 ‘GTX’다. GTX는 전문가들로부터 1974년 서울역~청량리역 구간에 첫 전철을 개통하면서 시작한 한국 지하철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각국의 대심도 광역철도 운영 상황을 살펴보면 이 같은 평가가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세계 주요도시의 광역철도 현황을 3회(①모스크바 메트로 ②베를린·부다페스트 지하철 ③파리 광역급행전철)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모스크바 지하철 이용객들이 지하철을 탄 모습.

“다섯 살 때 엄마 손을 잡고 처음 지하철을 탔죠. 전차, 버스보다 지하철이 빠릅니다. 모스크바 지하철은 땅속 70~80m에서 달리는데, 깊이에 신경 쓰지 않아 당연히 공포감도 없었습니다. 환기 시설과 안전장치도 잘 돼 있고요.”

모스크바의 ‘러시아지하철박물관’에서 일하는 세르게이에프 알렉산드르 세르게이비치(66)씨는 ‘공포감을 느끼는 승객은 없었느냐’고 묻자 “무엇에 대한 두려움인지 이해가 안 된다. 다시 말해 달라”고 외려 되물었다.

애초 ‘방공호’로 지하 100m에 만든 지하철이라 공포감은 없었다 할지라도 안전사고 우려마저 지울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러나 세르게이비치씨는 그런 질문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사고는 없었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빈 열차로 오가면서 점검하고 있다”면서 “단순한 접촉 사고는 있었으나 기록에 남길 만한 사고는 한 건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안정감·속도·안전성 가장 뛰어난 운송수단”

모스크바에서 가장 깊은 빠르크 빠베듸역(승리 공원역)의 지하철 승객들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고 있다.
모스크바 지하철은 1930년대 스탈린 시대부터 건설되기 시작했다. 세르게이비치씨보다 나이가 많은 셈이다. 그러나 버스, 트롤리버스, 노면전차, 택시를 비롯한 여러 모스크바 교통수단 가운데 지하철은 단연 인기를 끌고 있다. 하루 이용객만 900만명에 이르며 대중교통수단 분담률도 42%나 된다.

“대심도 지하철이 없는 모스크바는 상상도 할 수 없어요. 현재 시민 58%가 이용하고 있죠. 지하철이 전차, 버스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교통수단보다 속도가 빠르거든요. 안정감과 안전성 또한 가장 뛰어납니다.”

모스크바의 교통 구조는 ‘과녁형’이다. 크렘린 궁을 중심으로 외곽으로 퍼지는 형태다. 오전엔 사람들이 중심가로 일제히 몰려들었다가 오후에 외곽으로 빠져나간다. 오후 8시쯤 교통체증이 절정에 달한다. 시내에서 공항까지 30분 거리인데 보통 두 시간 전에 출발해야 비행기를 안심하고 탈 수 있을 정도다.

안전요원·기술자 상주… 비상 때 대처방식 뛰어나

‘러시아지하철박물관’의 세르게이에프 알렉산드르 세르게이비치씨가 철도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땅속 깊은 곳의 세상은 차원이 다르다. 모스크바 지하철은 11개 노선으로 177개의 역이 거미줄처럼 퍼져 있으며 열차는 평균 1분 30초 간격으로 운행된다. 출근 시간대엔 열차가 20~30초마다 역을 통과한다. 앞차가 떠나자마자 뒤차가 들어선다. 그래서 열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어가거나 가방이라도 넣어 문을 열어 보려는 웃지 못할 광경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지하철역 접근성도 뛰어나다. 거리의 상가 건물로 들어가 ‘M’이라고 적힌 지하통로로 들어가면 된다. 1995년 지어진 ‘빠르크 빠베듸역(승리 공원역)’은 모스크바 지하철 역 중 가장 깊다. 120m가 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84m로 들어가야 한다. 언제 내려갈까 싶은데 속도가 꽤 빠르다. 에스컬레이터 왼쪽으로 뛰어 내려가는 사람도 있다. 1~2분간 내려가면 CCTV 화면으로 에스컬레이터를 뚫어지게 모니터링하는 안전요원이 눈에 띈다.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나면 안전요원과 함께 대기 중인 기술자들이 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평상시 에스컬레이터는 네 개 라인 중 두 대만 가동한다. 그러나 화재 등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비상전원이 모두 켜지고 네 대가 일제히 위로 올라가는 ‘대피유형’이 된다.

러시아 메트로노선도.

환승은 번거롭지 않을까? 모스크바 지하철의 특징 중 하나는 플랫폼이 열차와 열차 사이에 있다는 것이다. 열차가 승객을 가운데에 두고 양옆으로 정차하는 형태다. 승차장이 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환승역으로 바로 갈 수 있으며 대부분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할 수 있다. 승강장은 돔 형의 천장과 벽에 예술작품이 자리해 갤러리 못잖은 미관을 자랑하는데, 환기구가 작품과 한 데 어우려져 촘촘히 설치돼 있다. 환기 상태도 괜찮은 편이다. 오래된 지하철도 창문을 열어 놓은 채 운행한다.

“급행철도 이용하자는 선진국형 변화 있을 것”

대심도 지하철은 모스크바의 자랑거리이자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교통수요를 감당할 대안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세르게이비치씨는 속도 및 안전성과 함께 산업적인 효과를 노리고 모스크바 지하철을 건설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지하철을 벤치마킹하러 찾아와 자랑스럽다”면서 “모스크바에서 지하철을 만든 건 산업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 등으로 어려워진 경제 상황을 뚫고자 지하철을 만들었다”면서 “고용창출과 시민 안전, 편의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이 모스크바 지하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밝혔다.

모스크바 지하철 이용객들이 역사를 빠져 나가고 있다.

김시곤 서울산업대 철도대학원 교수는 “모스크바의 모든 길이 지하철로 통하기 때문에 도시가 발전할수록 지하철 의존도도 커질 것”이라며 “교통체증을 피해 승용차보다 빠른 지하철, 급행철도를 이용하자는 선진국형 교통수단의 변화가 또 한 번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스크바의 성장동력이자 명소로 자리잡은 지하철. 혹시 모스크바엔 이런 말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땅속 100m 지하철을 타보지 않고서 모스크바에 갔다고 말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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