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통, 자리가 없다
국제금융, 손발도 없다
국내금융은 甲, 국제금융은 乙
공무원의 자부심, 내 평생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허장 기획재정부 2차관.ⓒ 데일리안 DB
국제금융통은 귀하다
지난 2일 허장 기획재정부 2차관이 임명됐다. 국제금융통의 화려한 금의환향이다. 그 이면에는 우리나라 국제금융의 어두운 현실이 있다.
환율이 폭등하던 지난해 연말, 김용범 정책실장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종합적인 정책 실행 능력을 곧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언론은 정부가 ‘고강도 구두 개입’에 나섰다고 보도했고 환율은 바로 33원이나 떨어졌다. 그러나 실상은 ‘구두 개입’이 아니라 ‘실제’ 개입이었다. 우리나라의 외환 보유고가 1997년 IMF 외환 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한 달 사이 26억 달러나 줄었다. 쉽게 말해 국민의 비상금인 외환 보유고를 헐어 환율을 방어한 것이었다. 김용범 실장의 장담은 시장과 맞선다는 비판을 받았고, 결국 환율은 다시 1500선을 위협하고 있다.
국제금융통, 자리가 없다
국제금융통들의 승진 희망 1순위는 국제금융국장이 아니다. 우수한 국제금융통도 국장급 승진할 무렵이면 무조건 금융정책국장(과거에는 재정경제부 소속, 현재는 금융위원회 소속)으로 도망가려 한다. 국내 금융을 담당하는 금융정책국장을 거치면, 청와대 금융비서관, 차관보, 기획조정실장(이상 1급), 기획재정부 장·차관, 금융위원회 정·부 위원장(장·차관급), 청와대 경제수석(차관급), 대통령 정책실장(장관급+) 등 꽃길이 보장된다. 아무리 못 가도 금융정보분석원장(FIU, 1급) 승진이 보장된다. 그런데 국제금융국장이 되면 1급 승진 자리는 딱 하나 국제경제관리관뿐이고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그러니 국제금융통들은 머리가 굵어지면 국제금융을 떠나 국내금융으로 눈을 돌린다.
비교적 단순한 세무행정과 비교하면 국제금융의 왜소한 위상이 잘 드러난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은 1실장(1급) 4국장 체제다. 세제실은 국세청장, 관세청장(이상 차관급), 국세청 차장, 서울국세청장, 중부국세청장, 관세청 차장(이상 1급) 등 건너갈 곳도 많다. 그런데 국제금융은 1, 2급 딱 1명씩에 건너갈 곳은 수출입은행 딱 하나다. 허장 신임 2차관도, 국제경제관리관을 마지막으로 친정을 떠났다가 금의환향한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다.
국제금융, 손발도 없다
관리관과 국장 단 두 명이 환율, 공급망 금융, 국제기구 대응, 대미 투자 협상 등 모든 ‘전투’를 지휘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설령 지휘방침이 내려진다 해도 국 단위 이하 중대장 격인 과장들이 전투를 실행할 수가 없다. 세제실은 국세청과 관세청이라는 막강한 집행기구를 거느린다. 금융정책국은 막강한 금융감독원을 거느렸다. 국제금융국은 손발이 전혀 없어 직접 시장을 상대해야 한다. 미국 재무부가 수백 명의 분석관을 두고 세계 금융시장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데 비하면 한국의 국제금융은 너무 허약하다.
실질적인 경제 외교 전쟁을 위해서는 현재 국제금융 편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국제금융을 실 단위로 격상시키고, 최소한 정책(정보, 전략), 외교(공격, 협상), 안보(방어)의 3국으로 확대 개편해야 한다. 대통령 안보실에도 경제 안보 차장을 신설해 국제금융 전문가를 투입해야 한다.
국내금융은 甲, 국제금융은 乙
관가에 전해져오는 전설이 있다. “재무부 이재국(요즘의 금융정책국) 사무관이 부르면 한은 총재가 달려온다.”라고 박정희 대통령의 처조카 사위로 고시 3과에 합격한 장덕진 전 장관이 이재국장으로 금융권을 주무르던 옛날이야기라고 치부하지 마라. 거기에는 중요한 사실이 담겨 있다.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은 시장인 금융권에 대해 슈퍼 ‘갑’이다. 인허가, 제도 설계, 감독권 등 금융사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고, 퇴직 후 ‘재취업’도 압도적으로 많다.
국제금융국장이나 국제경제관리관은 미국이나 일본, 유럽연합 같은 금융 강국 재무부 관료들에게 ‘을’로 일한다. 큰소리치던 실세 관료도 뉴욕이나 런던에서는 ‘세일즈맨’에 불과하다. 우리 약점을 방어하고 “우리나라 괜찮으니 투자하라”고 설득하거나 읍소해야 한다. IMF 국장이 한국에 출장 나오면 국제금융국 관료는 볼 생각도 안 하고 바로 장·차관 최소한 국제경제관리관실로 직행한다. 국제금융통들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겠나? 국제금융통들은 평생 ‘을’로 살아야 하는 국제금융에서 도망가고 싶다. 우수한 국제금융통이 금융정책실로 도망간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우선 김용범 정책실장부터 세계은행과 G-20 사무국장 경력을 갖춘 국제금융통이었지만 결국 국내금융으로 유턴했다.
환율 무너지면 못 살~아
옛날 가수 패티 김이 부른 ‘그대 없이는 못 살아’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와 식량, 모래를 제외한 원자재를 모두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다. 그 노래 가사에 빗대면
한국의 처지는 딱 이렇다.
‘수입 안 하면 못 살아, 수출 안 해도 못 살아,
환율 올라도 못 살아, 환율 너무 내려도 못 살~아….”
옛날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 실적을 일일 보고 받고, 매달 수출진흥 확대 회의를 열어 수출을 독려하고 진두지휘했다. 당시는 고정환율제라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만일 박정희 대통령이 요즘 살아계신다면 환율과 외환 보유고를 일일 보고 받으셨을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환율과 외환 보유고는 이상이 생겨야 보고하는 이상한 관행이 생겼다.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환율에 웃고 우는 나라다.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일일 보고에 환율과 외환 보유고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알아야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있어야 더 알고 싶다.
공무원의 자부심, 내 평생 조국과 민족을 위해
공무원들은 박봉에 과중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자부심으로 산다. 하나, 나는 대한민국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한다. 둘, 나는 갑이다. 원래 순서는 그래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선후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갑’으로 일하는 자부심으로 버티면서, 혹시 ‘을’ 취급받으면 폭음하며 사표를 품에 넣고 다닌다. 그러나 국제금융통들은 한국이 세계 경제의 패권국가 또는 준패권국가가 될 때까지는 ‘갑’으로 일할 수 없다. 그러니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라도 채워줄 수 있도록은 해 줘야 하지 않겠나?
예로부터 ‘갑’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탁직(濁職)’은 직급을 낮추고, 직접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 ‘청직(淸職)’은 직급을 높였다. 청직인 국제금융통들이 자부심을 갖고 나라를 위해 일할 여건을 만들어 주라. 한편 대표적인 탁직 검찰과 경찰의 직급이 21세기 들어 계속 높아지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
글/ 김구철 금강대 연구교수·전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