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경쟁 본격화… K콘텐츠가 세워야 할 새로운 기준 [위기의 K콘텐츠, 연합 빅딜 시대③]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12.25 07:32  수정 2025.12.25 07:32

한국 콘텐츠 산업 내부에서는 연합 체제가 점차 기본 구조로 자리 잡는 흐름 속에서, 앞으로 시장이 어떤 균형점을 설정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도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개별 기업의 선택을 넘어 협업 구조가 시장 질서를 규정하기 시작한 만큼, 빠르게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커진 연합 체제가 어떤 힘을 만들고 어떤 재편을 초래할지를 면밀하게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가 가장 먼저 거론하는 것은 ‘IP 주도권의 균형’이다. 여러 제작사·배급사가 참여하는 협력 구조에서는 IP 소유권과 수익 배분의 비율이 장기적으로 창작 생태계를 좌우한다. 한 프로듀서는 “연합 구조가 굳어지는 순간 IP의 힘이 특정 회사로만 몰릴 가능성이 있다”며 “프로젝트마다 권리와 책임의 균형이 얼마나 투명하게 유지되는지가 향후 질서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글로벌 협업이 늘어날수록 IP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기 때문에, 초기 단계에서의 권리 조정 기준을 명확히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두 번째로 거론되는 쟁점은 제작 인력과 창작자를 둘러싼 ‘운영 안전망’이다. 연합 체제 아래 대형 프로젝트가 늘어나면서 제작 일정은 더욱 압축되고, 촬영·후반·마케팅 단계가 병렬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과정에서 현장 스태프와 창작 인력은 장시간 노동, 역할 범위의 불명확성, 프로젝트 종료 이후의 고용 공백 등 구조적 압박을 먼저 떠안게 된다. 규모가 커질수록 자본과 의사결정은 상층에 집중되지만, 노동 조건에 대한 책임은 개별 현장으로 분산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근로시간 상한, 초과근무에 대한 보상, 직무 범위 명시, 제작 종료 이후 정산 구조 등은 연합형 제작에서 가장 쉽게 흐려지는 지점으로 꼽힌다.


봉준호 감독의 사례는 이러한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설국열차’와 ‘옥자’를 제작하며 미국식 조합 규정에 따라 근로시간과 역할, 책임을 명확히 구분하는 시스템을 경험했고, 이후 ‘기생충’ 제작 과정에서도 표준근로계약을 충실히 지킨 점이 업계 안팎에서 주목받았다.


글로벌 협업이 일상이 된 현재, 연합 체제가 단순한 규모 확장이 아닌 지속 가능한 제작 구조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노동 기준을 어디까지 제도화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해외 파트너십이 일상화된 현재, 국가별로 상이한 제작·노동 표준에서 발생하는 혼란을 최소화할 공통 규칙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국가에 따라, 주당 근로시간 기준, 초과근무 보상 방식, 현장 안전 책임의 범위가 크게 달라 공동 제작 과정에서 마찰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예컨대 북미 제작 환경에서는 주 근무시간과 휴식 규정, 안전 담당자의 배치 여부가 조합 규정으로 명확히 관리되는 반면, 일부 아시아 시장에서는 일정 압박을 이유로 이러한 기준이 관행적으로 유연하게 적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일본 프로듀서는 “국경을 넘는 제작이 늘어날수록 각 시장의 제작 문법과 계약 기준을 정확히 이해한 상태에서 협상에 나서야 한다”며 “근로시간이나 보험·안전 규정처럼 기본 조건을 명확히 정리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불리한 계약을 반복해서 받아들이는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쟁점은 협업 중심 구조 속에서 한국 제작사가 어느 정도의 ‘협상력’을 실제로 유지하고 있느냐는 문제다. 일본·동남아 제작사, 글로벌 OTT와의 공동 개발·공동 제작 사례는 빠르게 늘어났지만, 제작 참여 비율이나 후속 판권, 리메이크·스핀오프 권리에 대한 명확한 산업 기준은 여전히 축적되지 않은 상태다. 그 결과 프로젝트마다 조건이 제각각 설정되며, 초기 투자 부담은 한국 제작사가 떠안고도 IP 활용의 주도권은 제한적으로 행사하는 구조가 반복해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제작사들은 경험을 통해 협상 기준을 내부적으로 정리하고 있지만, 이는 개별 회사의 노하우에 머물러 있을 뿐 산업 차원의 공통된 가이드라인으로 확장되지는 못했다.


이에 업계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연합 체제가 산업의 토대가 되는 지금, 단순한 규모 경쟁이 아니라 ‘균형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대형 파트너십이 성장 동력을 만들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창작자·중소 제작사·독립 프로젝트가 함께 숨 쉴 수 있는 환경이 유지될 때에만 산업 자체의 지속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연합이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면, 지금부터는 그 연합을 어떤 질서로 운영할 것인지가 한국 콘텐츠 산업의 다음 장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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