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자격상실 몰랐다고?"…시총 14조 기업의 아마추어 시스템[기자수첩-ICT]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입력 2025.12.18 09:59  수정 2025.12.18 10:00

무자격 사외이사 20개월 방치…준법 감시 시스템 '먹통'

차기 대표 인선 '절차적 흠결' 논란 자초…이사회 전면 쇄신해야

KT 광화문빌딩 웨스트 사옥 'KT 스퀘어' 전경. ⓒKT

KT 사외이사가 자격이 없는 상태로 20개월 가량 이사회에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이다. 동네 구멍가게도 아닌 시가총액 14조원 기업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


조승아 전 이사는 현대차그룹 추천으로 2023년 6월 KT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이후 2024년 3월 현대제철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되면서 겸직 상태가 됐고, 당시 최대주주 국민연금 지분 매각으로 같은 해 4월 현대차그룹이 최대주주로 변경되면서 상법상 결격 사유에 해당하게 됐다.


현행 상법은 최대주주가 법인인 경우 그 법인의 이사·감사·집행임원 및 피용자에 해당할 때 사외이사직을 상실한다고 규정한다. 사외이사가 자격이 없는 상태로 20개월 활동한 것을 KT는 여태 모르고 있다가 사외이사를 새로 모집하면서 뒤늦게 확인했다고 한다.


회사측은 "2023년 사외이사 최초 선임 당시에는 해당하지 않았던 사안으로, 기존 대주주의 보유 지분 매각에 따라 사후적으로 발생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점잖게 표현했을 뿐 까맣게 몰랐다는 자백이나 다름없다.


상법상 사외이사 자격 요건 확인은 기업 지배구조에 있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다. 이를 장기간 방치한 것은 준법 감시(Compliance) 시스템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허술한 감시망 아래서 조 전 이사가 자격 없이 참여해온 이사회 결정이 무효가 되는 일련의 과정은 황당한 일이다. 그 보다 더한 것은 결격사유 파악이 차기 CEO를 뽑는 시기와 맞물렸다는 것이다.


회사는 조 전이사가 최종 후보 1인을 정하는 최종면접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며 대표이사 인선 과정에서 절차나 과정상 문제가 없다고도 강조한다.


최후 1인 선임에서는 불참했더라도 그간 후보자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참여했다는 사실은 절차적 흠결 논란을 피해가기 힘든 대목이다. 자격 없는 심판이 경기에 참여했지만 자격 있는 심판이 더 많았으니 경기 결과는 유효하다는 주장과 뭐가 다른가.


현재까지의 KT 태도는 "몰랐다"는 해명으로 이번 사안을 단순 해프닝으로 뭉개려는 것 같다. 해명으로 덮을 일이 아니다. 왜 준법 감시 시스템이 20개월간 멈춰있었는지부터 규명하고 투명하게 알려야 한다.


또한 조 전 이사가 후보 선정 과정에 참여했던 만큼 현 이사회는 이미 절차적 정당성에 타격을 입었다. 임기에 연연하지 말고 정당성과 합법성을 갖춘 이사회로 아예 새롭게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스스로 보여야 한다.


그저 유야무야 넘어가려 한다면 KT라는 회사는 보안 관리 뿐 아니라 준법 감시 시스템 조차 허술한 '덩치만 큰 구멍가게'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셈이 된다.


이런 회사에서 뽑은 대표이사를 과연 시장이 신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최대주주인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대주주들 역시 관리·감독 부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KT는 올 한 해 보안 리스크로 홍역을 치렀다. 후속 조치로 대표이사를 비롯한 새로운 경영진 구성을 앞두고 있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일수록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법적 면죄부를 찾기 보다 주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을 내놓는 것이 '국민기업' 다운 태도다. 주주와 국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법적 효력'이 아니라 무너진 '경영 신뢰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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