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조 증후군' 국민의힘, 진정한 보수정당 맞나 [기자수첩-정치]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5.12.01 07:00  수정 2025.12.01 07:00

美 '보수주의자의 양심' 배리 골드워터는

워터게이트 때 자당 출신 닉슨 사임 추동

尹 계엄 1주년 되는데 사과하네 마네 난리

모래에 머리 파묻는다고 '계몽령' 되지 않아

땅바닥에 머리를 파묻고 있는 타조 ⓒ연합뉴스

배리 골드워터는 미국 보수주의의 정신적 지주라 불리는 정치인이다. 1964년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 수락 연설에서 "자유를 수호하는데 있어서 극단은 결코 악일 수 없으며, 정의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중도는 미덕이 될 수 없다"고 외쳐, 전당대회장을 가득 메운 대의원들로부터 1분 가까이 박수갈채를 받았다.


골드워터는 민주당 출신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형성한 유권자 그룹 '뉴딜 연합'에 압도당하고 있던 공화당을 동부 엘리트들의 이익집단에서 보수주의 혁명의 기지로 변모시켰다. 그가 저술한 '보수주의자의 양심'은 국민의힘 정치인들도 단골로 인용하는 소재다.


이런 골드워터지만, 워터게이트 사건 때에는 공화당 소속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결정적으로 추동했다. 골드워터는 사건 초창기에는 자당이 배출한 닉슨을 적극 두둔했다.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3류 절도 사건"으로 묘사했다. 틀린 설명도 아니었다. 워터게이트 침입은 닉슨은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측근들의 과잉 충성으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4년 8월 5일, 이른바 '스모킹 건' 테이프가 공개됐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FBI의 수사를 차단하라고 CIA에 명령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골드워터는 격노했다. 그는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감당할 수 있는 거짓말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틀 뒤 휴 스콧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존 로즈 하원 원내대표와 함께 백악관을 찾았다. 이제 닉슨 개인보다는 미국 헌법과 공화당의 명운이 훨씬 중요했다. 진정한 선당후사였다. 당시 골드워터가 닉슨을 끝까지 끌어안고 있었더라면, 공화당은 닉슨과 함께 침몰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민주당 출신 지미 카터 대통령의 재선을 저지한 1980년대의 레이건 혁명의 토대는 결코 마련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자유를 수호하는데 극단은 악이 아니다"
외친 골드워터, 자당 출신 닉슨 사임 추동
尹 계엄의 죄악은 워터게이트보다 심해
사과를 하네, 마네 하며 난리 피울 일인가


국민의힘 출신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죄악은 리처드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워터게이트는 닉슨 자신은 알지도 못했던 공작이었으며, 그는 사후에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고 거짓말을 했을 뿐이었다. 진정한 보수주의자였던 골드워터는 그것만으로도 미국 헌법과 공화당에 미치는 악영향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의 12·3 계엄은 정반대다. 공적 라인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가운데, 대통령이 극소수 고등학교 동문 라인에 의지해 계엄을 스스로 주도했다. 전시·사변도 아니었고, 병력으로서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비상계엄으로는 국회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없는데도, 병력을 국회에 파견했다. 모든 측면에서 그 위헌성은 명백하다.


그런데도 1주년이 다가오는데 그 대통령을 대선 후보로 공천했던 정당에서 사과를 하네 마네 난리를 피우고 있다. 공천이란 국민 앞에 '이 사람이 참으로 대통령을 할만한 사람이니까, 이 사람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하는, 공당의 무거운 책임을 담은 행위다.


공천을 해서 내놓은 상품이 이토록 불량품이었고, 주권자로부터 반품과 환불 요청을 당했다면, 허리를 90도로 굽혀 사과하는 것은 진작에 했어야 한다. 그런데 '리콜'이 된지 1주년이 되는데 지금 보니 불량이 있었으니 없었으니, 사과를 하느니 마느니 자기네들끼리 야단이다. 버릇처럼 입에 달고 사는 자유시장경제 측면에서도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윤 전 대통령의 독선적 국정 운영에 당시 집권여당이 진작부터 제대로 우려를 표하고 고언했더라면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고언은 탄압하고 무릎 꿇리면서 "공개적으로 총질하지 말라. 물밑에서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고 있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실패했다. 윤 전 대통령이 실패했다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 봐도 명약관화하다. 아크로비스타 사저로 돌아오면서 "3년 하나 5년 하나…"라는 뜻모를 소리를 한다고 실패가 성공으로 반전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물밑에서 헌신하고 있다던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 자신들의 소위 '헌신'이 실패로 돌아간 것에 대해서라도 사과해야 하지 않나.


국민 앞에 대선후보로 공천해 내놓았는데
반품·리콜 당하면 누구든 사과하지 않나
사과를 권유하는 여론이 그리도 불편한가
아무도 권유조차 않는 순간 떠올려보길


사과를 하면 계엄령이 계몽령이 아니게 돼버린다는 황당한 펼침막이 국민의힘 장외집회장에 나부끼고 있다. 이런 꼴을 보면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과 일부 지지자들이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고 있는 타조와 같아 보인다. 집단적으로 타조 증후군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들이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고 있는다고 해서, 계엄령이 계몽령이 될 일은 없다. 계엄령은 원래부터 계몽령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아닐 것이며, 계엄령에 대한 정치적 판단은 이미 다수 국민들 사이에서 확고하게 내려져 있다.


사실 이렇게 보면 국민의힘이 사과를 하든 말든 상관 없기도 하다. 사과를 하든 말든 계엄은 이미 잘못된 일이며, 사과를 함으로써 새삼 잘못된 일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국민들이 국민의힘에 사과를 권하는 것은 국민의힘을 향한 마지막 애정이 남아 있고, 또 국민의힘에 기대하는 역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들은 12·3 계엄만큼이나 계엄 이후의 정국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국민들이 윤 전 대통령의 독선적 국정 운영을 싫어했던 것은 윤 씨 말고 성(姓)만 바꿔 다른 성을 가진 사람이 대신 독선적 국정 운영을 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또다른 일방이 독선하고 폭주하면서 우리 사회의 균형이 완전히 붕괴되는 것을 막아낼 수 있는 구심점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 뿐이기 때문에, 국민들에게는 국민의힘이 사과하고 윤 전 대통령과 단절한 뒤,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과를 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난리다. 큰일은 1년 전에 진작에 났다. 사과는 큰일을 수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그런데도 하네 마네 난리굿을 벌이고 있으니, 설령 이 난리 끝에 사과를 하더라도 그런 사과를 국민들이 진정성 있는 사과로 받아들이겠는가. '마지못한 사과'를 일부러 연출이라도 하는 것인가.


심지어 사과를 하라는 권유가 굉장히 불편하게 들리는 국민의힘 지도부 인사들도 있는 모양이다. 사과를 하라는 권유를 불편하게 여길 게 아니라, 사과를 하라는 권유를 하는 국민들조차 없어지는 상황이 오는 것을 두렵게 여기라. '그래, 너희는 그러고 살아라'라고 많은 국민들이 생각하는 순간을 상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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