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퇴정 검사' 감찰 지시 '후폭풍'
'마약 외압' 수사지휘권 논란 재조명
野 "본인 관련 사건 개입 의도 명백"
與, 李 지시 고리로 '검찰개혁' 고삐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을 둘러싼 '직권남용'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한 차례 서울동부지검에 수사 당부를 하면서 '지휘권' 논란에 휩싸인 것이 불과 한 달 전이다. 그러나 해외 순방 직후, 이화영 전 경기부지사의 재판에서 검사들이 집단 퇴정한 것에 '감찰'을 지시했다. 문제는 '법무부 장관'을 통한 지시가 아닌 탓에 '직권남용' 논란이 또다시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전 부지사는 이 대통령이 연루된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징역이 확정된 인물이다.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이 전 부지사 재판에서 검사들의 집단 퇴정을 겨냥해 "법과 원칙에 따라 신속하고 엄정한 감찰을 진행하라"고 지시한 것에 후폭풍이 만만치 않은 분위기다.
앞서 지난 25일 술파티 위증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부지사 재판에선 검사들이 모두 퇴정하는 일이 발생했다. 재판부가 이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려면 증인신문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검찰이 신청한 증인 64명 중 6명만 채택했기 때문이다. 검사 측은 이 결정에 곧바로 재판부를 바꿔달라고 법관 기피 신청을 냈고 "불공평한 소송 지휘를 따를 수 없다"며 모두 법정 밖으로 나갔다.
이 대통령은 검사들의 퇴정이 재판을 지연시키려는 의도이자 재판부와 사법부에 대한 존중감을 보여주지 못해 "헌정질서 가치를 흔드는 행위"라고 판단해 내린 지시였다고 강유정 대변인은 전했다.
야권에선 곧바로 '직권남용' 문제를 제기했다. 검찰청법 제8조에 따르면, 구체적 사건에 관해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할 수 있는 것은 법무부 장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성호 장관이 이 대통령의 지시를 언론 보도를 통해 접했다는 점이다. 야권에선 "불과 한 달 전에도 수사지휘권 논란이 불거졌다가 정정하지 않았느냐"라는 비판이 나오는 실정이다.
정 장관은 지난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검사를 감찰하라는 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것이 맞느냐'라는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나한테 직접적으로 전달되지는 않았고, 언론 기사를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해 서울동부지검에 "철저한 수사 당부"를 지시한 바 있다. 나아가 임은정 검사장은 필요시 '수사검사 추가'를, 검경 합동수사팀엔 백해룡 경정을 파견하는 등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야권을 중심으로 '수사지휘권 침해' 논란이 불거졌고, 이틀 뒤 강유정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 지시 사항은 법무부 장관에 의해서 지시가 전달이 되고,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사항은 아니다"라고 정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번 논란에 대해선 후속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이는 임 검사장과 백 경정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 것과 달리, 행정부 수장으로서 공무원인 검사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여당에선 검사가 '공무원'인 만큼 집단 퇴정으로 사법부 권위를 훼손한 인사에 대해 대통령이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야당에선 검찰청법에 따라 구체적 지휘·감독은 법무부 장관만 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명백한 위법 지시"라고 지적했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검찰청법이 정한 권한 체계를 정면으로 위반한 조치로서 명백한 위법 지시"라면서 "헌법이 보장한 검찰의 독립성과 삼권분립까지 침해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의 이번 '검사 감찰' 문제는 앞선 마약 수사 외압 의혹 당시 불거진 '수사지휘권' 논란보다 문제 소지가 크다는 목소리도 야권에서 나온다. 표면적으로 이 전 부지사 재판과 이 대통령은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사건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과 이 전 부지사는 대북송금 사건의 '공범'이라고 야권은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감찰 지시가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 6월 쌍방울 그룹으로부터 억대 뇌물을 받고 800만달러 대북 송금에 공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부지사에 대해 총징역 7년 8개월 등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 전 부지사는 현재 술파티 위증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검찰의 이른바 진술 회유는 대북송금 사건 당시 논란의 중심에 있던 사안이다. 결국 이 전 부지사 측의 검사실 연어회 술파티와 진술 회유를 위한 세미나 등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데일리안DB
문제는 이 전 부지사 재판이 현재 중단된 이 대통령의 대북송금 사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지만, '공범'으로 지적받는 상황에서 해당 검사들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것은 자칫 검찰이 외압으로 느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는 것이다.
서지영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KBS라디오 '전격시사'에 출연해 "이 대통령이 본인과 관련된 재판에 대해 굳이 입장을 표현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며 "검찰이 신청했던 64명 증인 중 58명이 일괄 기각된 만큼 (집단 퇴정은) 저항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대통령이 직접 감찰을 지시한 것은 사법행정 체계 자체를 전체적으로 흔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철 개혁신당 최고위원도 "자신과 관련된 특정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할 뿐 아니라, 법무부 장관을 거치지 않고 정면으로 얘기하는 것은 직권남용에 해당할 정도의 문제"라면서 "검사들이 퇴정한 것은 재판에서 불이익받을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항의의 표시로 선택한 적법한 절차인데, 이것이 법치주의의 문제가 아닐뿐더러 사건 개입 의도가 의심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여당과 이 전 부지사는 이 대통령의 '감찰 지시'를 고리로 검찰 압박에 나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집단 퇴정'을 "사법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규정하고 향후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이 전 부지사는 이들 검사가 재판을 방해할 목적으로 퇴정했다고 주장하며 국가수사본부에 법정모욕 및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검사 집단 퇴장 사태는 대한민국 사법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면서 "민주당은 이번 사태 관련자들에 대한 철저하고 투명한 감찰, 법정 질서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책임 규명,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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