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을 초대해 대화를 나누는 콘텐츠는 전혀 새롭지 않다. 하지만 최근 유튜브에서는 기존 인터뷰 형식을 비틀고 자신만의 감각과 서사를 입힌 토크 콘텐츠가 빠르게 늘고 있다. 유튜버들은 기획자이자 연출자, 그리고 호스트가 돼 신선한 토크 형식을 만들어냈다.
ⓒ유튜브 채널 '조나단'
19일 유튜브 채널 ‘조나단’에는 ‘채령이랑 피 땀 눈물‘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업로드됐다. 이는 방송인 조나단의 유튜브 정기 콘텐츠 ‘조간산책’의 13번째 에피소드로 걸그룹 있지의 채령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 편에서는 ‘도전’이라는 소소한 주제로 시작해 찜질방 경험담, 배달 음식 에피소드, 인내심에 대한 생각 등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확장된다. “스케줄 전에 찜질방 가서 땀을 좀 빼고 온다”는 채령의 말에 조나단은 “나도 도전해볼까?”라며 응수하고 실제로 찜질방에 가 일상 속 이야기 중심의 토크가 펼쳐진다.
‘조간산책’은 격식을 차린 인터뷰 대신 서울 곳곳의 공원과 산책로를 걸으며 가벼운 수다를 나누는 형식이다. 촬영 장소는 매회 달라지고, 특정 주제 없이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 매력이다. 보통 유튜브 토크 콘텐츠에 출연하는 연예인 게스트들은 신곡 발표나 드라마 출연 등 공식 스케줄을 겸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채령 역시 있지가 지난 10일 미니 11집 '터널 비전'(Tunnel Vision) 발매를 기념해 나온 스케줄이지만 영상에서는 신보에 대한 언급 없이 사적인 대화가 중심이 됐다. 앨범 홍보가 아닌 채령 자체에 초점을 맞춘 구성은 기존의 방식과 차별성을 보인다.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오당기)‘는 코미디 영상을 제작하는 유튜버 크루로 구성된 채널 ‘빠더너스‘의 유일한 시즌제 프로그램이다. 초기에는 크루 멤버 문상훈이 술에 어울리는 안주를 배달로 시키면서 배달이 오는 동안 문상훈의 개인 이야기를 나누는 콘텐츠였다. 인터넷 강사, 기자, 취업준비생 등 ‘부캐’ 영상으로 주로 코믹한 모습을 보여준 문상훈은 이 콘텐츠로 실제 본인의 진솔한 이야기, 음악, 영화 취향 소개하는 등 일명 ‘문과감성’을 보여주며 인기를 쌓았다.
시즌 2부터 게스트 밴드 ‘십센치’(10CM)의 권정열이 나오며 이를 시작으로 아이유, 에스파 카리나 등 여러 유명인들이 출연하고 있다. 음식의 종류도 일반 배달 음식으로 다양해졌고 문상훈이 준비해온 질문들을 게스트에게 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하지면 콘텐츠의 방향은 여전히 삶을 살아오며 게스트가 느낀 가치관 등을 말하면 문상훈이 공감하며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잔잔하고 철학적인 주제를 이어간다.
ⓒ유튜브 채널 '짜잔씨'
일본 ‘갸루걸’ 스타일로 주목받고 있는 유튜버 짜잔씨의 토크 콘텐츠 역시 최근 1020 여성층을 중심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핀터레스트 감성, 일본 서브컬처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짜잔씨는 게스트마다 독특한 콘셉트를 설정해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식을 이용했는데, 큰 줄기는 일본 드라마나 만화에서 착안한 설정 기반 ‘롤플레잉 토크’다. 지난 5월 첫 공개된 아일릿 모카 편은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친구 등록 편’에서 모티프를 얻어, 하루 동안 짜잔씨가 ‘렌탈 친구’가 되어주는 콘셉트로 구성됐다. 의뢰인 역할의 모카는 걸리시한 분위기로 유명한 멤버답게 레이스 카페와 아기자기한 떡볶이집, 스티커 사진 부스 등을 함께 돌며, 감성적인 일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고민 상담을 나누는 장면들은 1020 여성들에게 큰 공감을 얻으며 SNS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이후 아이즈원 출신 가수 예나가 출연한 편에서는 ‘동갑내기 과외하기’라는 콘셉트가 더해졌다. MBTI(성격유형검사) ENFP인 외향형 예나가 내향적인 INFP 짜잔씨에게 외향인의 사고방식을 가르쳐주는 방식으로 대화를 풀어갔다. 예나의 서브컬처적 활동 콘셉트와 짜잔씨 채널의 정체성이 맞닿아 있어 콘텐츠가 더욱 유기적으로 흘러간다. 특히 촬영 장소였던 짜잔씨의 방에는 만화 포스터와 피규어, 장난감 등이 가득했고 이 소품들을 활용한 토크도 이어지며 요즘 인기를 끄는 ‘오타쿠’ 감성과도 맞아떨어졌다.
유튜브에서 인기를 끄는 토크 콘텐츠들의 공통점은 정해진 질문지가 아닌, 유튜버들이 만든 연출된 일상과 설정을 통해 이야기할 틈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이처럼 각본 없는 유튜브식 토크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배경에 대해 제작자, 출연자, 시청자 모두에게 윈윈(win-win)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출연자 입장에서는 짜여진 대본이 없는 형식이 훨씬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고, 자연스러운 매력을 보여줄 수 있다"며 "제작 측면에서도 단촐한 구성으로 효율을 높일 수 있어 모두에게 이득"이라고 말했다. 특히 “유튜브 콘텐츠는 일상의 틈에서 수다처럼 소비되며 시청자에게 관계를 형성하는 듯한 착각을 유도한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이런 상상적 관계는 팬덤 형성과 지속적 콘텐츠 소비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며 "최근에는 콘텐츠의 정보보다 출연자와의 인간적 관계와 매력에 더 주목하는 흐름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튜브 콘텐츠는 레거시 미디어의 정제된 편집보다는 라디오에서 이미 보여졌던 대화 중심의 관계적 문법을 계승한 형태에 가깝다. 유튜브식 토크 콘텐츠는 플랫폼의 특성을 십분 발휘한다. 이 교수는 "라디오가 방송 편성의 한계를 넘어 살아남기 위해 대화를 중심에 뒀던 것처럼, 유튜브는 그 문법을 시각적으로 확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시청자는 유튜브 영상 속 인물들과 함께 산책하고, 밥을 먹고, 수다를 나눈다고 상상한다"며 "이렇게 함께 존재하는 듯한 감각을 만드는 편집과 구성 방식이 지금의 유튜브 토크 콘텐츠가 지닌 가장 큰 힘"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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