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부의 대이동' 이지민·이은진 공동 저자 인터뷰
민간 화폐 부상 ‘사회 변화 신호’…승부는 실사용
책 '스테이블코인 부의 대이동' 저자 이지민 스크롤 재단 한국 대표(왼쪽)와 이은진 리플 APAC 세일즈 디렉터 ⓒ각 사
블록체인이 '기술의 언어'라면, 스테이블코인은 대중과 금융 시장을 잇는 '신뢰의 언어'다. 단순한 디지털 화폐의 등장을 넘어 전 세계 금융 인프라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도구로, 지금 이 순간에도 스테이블코인은 그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변동성이라는 가상자산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법정화폐의 안정성에 기술 효율성을 결합해 자본 흐름을 재편하고 있다.
책 '스테이블코인 부의 대이동'은 이같은 흐름을 산업 최전선에서 직접 경험하고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의 공동 저자 이지민 스크롤(Scroll) 재단 한국 대표와 이은진 리플 APAC 세일즈 디렉터는 전통 금융과 블록체인을 넘나들며 새로운 금융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을 체감한 인물로 꼽힌다.
지난 19일 데일리안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한 두 사람은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투자 자산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의 대전환을 이끄는 인프라, 나아가 '사회 변화의 신호'로 바라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에서 민간으로 '화폐 권력' 이동…"신뢰의 주체가 바뀌었다"
책 '스테이블코인 부의 대이동' ⓒ다산북스
두 저자가 펜을 들게 된 이유는 현장에서 목격한 '충격적인 변화' 때문이다. 이 대표는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금융 상품이 아닌 화폐 권력의 이동으로 해석했다.
이 대표는 "사람들이 정부가 아닌 '민간 기업'이 발행한 화폐(USDT·USDC 등)를 각종 논란 속에서도 망설임 없이 믿고 쓴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다"며 "개발도상국 송금부터 기업 재무까지 스테이블코인이 침투하는 것을 보며 가상자산과 전통 금융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음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금융사에서 15년간 근무한 이 디렉터 역시 '신뢰의 비용'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그는 "전통 금융에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은 너무 느리고 비쌌다"며 "블록체인이 금융의 근본 구조를 더 투명하고 빠르게 바꿀 '신뢰의 언어'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산업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JP모건·페이팔도 쓴다…"가상자산 넘어 금융 핵심 인프라로"
이 디렉터는 특히 전통 금융기관들이 직접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거나 인프라에 통합하기 시작한 현상을 시장의 가장 결정적인 변화로 꼽았다.
그는 "HSBC, JP모건, 씨티그룹 등 글로벌 은행들이 관련 플랫폼을 상용화하고 있으며 페이팔의 스테이블코인 출시나 리플의 '리플 USD(RLUSD)' 발행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가상자산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전통 금융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쓰면 돈이 된다'…결제 넘어 수익 모델로 진화
스테이블코인의 활용성은 어디까지 진화한 것일까. 이 대표는 현재 스크롤에서 수익형 스테이블코인 PM을 겸임하며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자형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기존의 '결제형'이 디지털 현금처럼 쓰인다면 '이자형'은 보유만으로도 미국 국채 수준의 이자를 자동으로 받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사례로 '이더파이 캐시카드'를 들었다. 그는 "적금을 깨지 않고도 카드를 쓸 수 있는 것과 같다"며 "스테이블코인을 예치해 이자를 받으면서 그 담보로 커피를 사 마실 수 있다. 소비하는 순간에도 '내 돈이 일하고 있구나'를 느끼게 해주는 유동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잡은 모델"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강국' 韓, 왜 한 박자 느릴까
글로벌 흐름에 비해 한국 시장의 대응은 더디다는 평가다. 기술 수용 속도나 디지털 금융 인프라 수준은 세계 최고지만, 제도와 대중 인식이 글로벌 기준보다 뒤처져 있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뱅킹·증권·소비자 보호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에도 이러한 안정성이 오히려 혁신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동시에 한국처럼 무역 의존도가 높은 경제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국제 결제와 환율 안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이 디렉터는 한국이 디지털 친화적인 소비자층과 강력한 빅테크 기업, 인터넷 기반 결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스테이블코인이 여전히 '가상자산'이라는 틀에 갇혀 있다는 점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결제 인프라로 보기보다 위험 자산으로만 규제하는 시각이 여전하다는 뜻이다. 그는 "기술 수용은 빠르지만 규제나 인식은 느려서 실제 상용화는 더디다"고 지적했다.
압도적 '달러 패권' 속 원화의 생존법… "K-콘텐츠·실사용이 무기"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도입 가능성과 생존 전략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진단이 오갔다. 두 저자는 해외 여행이나 송금 수수료 절감 같은 소비자 편의성도 중요하지만, 논의의 본질은 압도적인 달러(USD) 스테이블코인 점유율 속에서 원화가 독자적 생태계를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대표는 특히 달러 지배력 속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생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관점의 전환'을 주문했다.
그는 "USDT나 USDC 사이에서 경쟁력이 있겠냐는 질문은 마치 '달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원화가 경쟁력이 있냐'고 묻는 것과 같다"며 "핵심은 한국 내에서의 결제와 정산 주도권을 우리가 계속 지킬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영향력이 아무리 커지더라도 국내 원화 결제 시장의 점유율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결국 실질적인 사용처를 확보해 우리만의 경쟁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디렉터 역시 구체적인 효용성이 받쳐준다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승산이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급여, 정산 등 실생활 영역과 밀접하게 결합될 경우 달러 기반 가상자산이 대체할 수 없는 경쟁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해외 플랫폼 사용이 빈번한 한국 소비자들에게 즉각적인 효용을 줄 수 있고, K-콘텐츠나 이커머스 산업과 연계된다면 글로벌 확장성도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해외 성공 사례를 근거로 제시하며 "실제로 XRP 레저 기반의 브라질 헤알화 스테이블코인(BBRL)은 지난 3분기에만 약 10억 달러 규모의 결제가 처리됐다. 이는 달러 기반이 아니어도 실질적 사용성과 수요가 있다면 충분히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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