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던져진 평범한 남자의 끝 없는 추락과 복수. 이 서사는 수없이 반복돼 왔지만, 지창욱이 연기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의 연기는 평범한 서사를 평범하게 흘러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몸을 자유자재로 쓰며 만들어 낸 민첩하고 타격감 좋은 액션과 눌린 감정을 동시에 끌어올려, 한 장면마다 서사의 온도를 바꿔놓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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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창욱을 향한 신뢰는 그의 커리어 흐름을 보면 자연스럽다. ‘솔약국집 아들들’, ‘웃어라 동해야’로 주연 배우로 자리 잡은 그는 ‘무사 백동수’, ‘기황후’, ‘힐러’를 거치며 사극·액션·로맨스를 모두 자기만의 결로 완성해왔다. 또한 ‘THE K2’에서 신체성이 강조된 액션을, ‘수상한 파트너’에서는 로맨틱 코미디의 리듬을 견고하게 잡으며 스펙트럼을 넓혔다.
전역 후에는 플랫폼에 따라 연기의 톤도 더 세밀하게 변주했다. ‘날 녹여주오’, ‘도시남녀의 사랑법’, ‘안나라수마나라’,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 등에서는 인물의 내면과 감정을 중심으로 한 연기를 이어갔고, ‘최악의 악’에서는 폭력과 생존의 경계에 선 인물을, ‘강남 비사이드’에서는 강남의 이면에서 위험한 세계를 살아가는 인물을 강렬하게 보여줬다.
이처럼 사극·로맨스·액션·누아르·휴먼드라마를 가로지르는 장르의 폭이 지창욱만의 서사를 만들어왔고, 그 축적된 결이 이번 ‘조각도시’에서 한층 더 밀도 높게 드러난다.
그가 맡은 태중은 요한(도경수 분)의 설계로 살인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끌려간 평범한 청년이다. 말라가는 식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어린 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며, 연인에게도 다정했던 남자가 하루아침에 삶 전체를 송두리째 빼앗긴다.
교도소에서의 시간은 태중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만든다. 끝없이 이어지는 구타와 협박, 생존을 위협하는 사건들 속에서 그는 점점 말이 줄어들고, 표정은 굳어간다. 그리고 가장 아끼던 동생의 죽음을 마주한 순간, 태중은 더 이상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억울함과 슬픔이 뒤엉킨 감정의 무게는 그의 각성으로 이어진다.
이에 평범한 선량함을 기반으로 살아가던 인물이 억울한 누명과 상실 앞에서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 과정이 지창욱의 얼굴과 몸으로 정교하게 표현된다.
이후 전개되는 탈출과 복수의 서사는 지창욱의 액션이 정점을 찍는 구간이다. 맨몸 액션부터 속도를 끌어올린 오토바이 추격, 카체이싱까지 고난도의 장면들이 태중의 분노와 겹쳐지며 한층 더 거칠게 발화된다.
‘조각도시’의 지창욱은 감정과 액션을 모두 안정적으로 끌어가는 배우의 힘을 다시 보여주며 작품의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린다. ‘최악의 악’, ‘강남-비사이드’에 이어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작품에서 연타석 성과를 내고 있는 것도 이런 탄탄함에서 비롯된다. 지창욱은 변화하는 콘텐츠 환경 속에서도 자신이 꾸준히 선택받는 이유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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