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의 탐욕이 낳은 기술혁신의 역설
자본의 압박이 기술혁신으로 바뀐 아이러니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10월 31일 경북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 CEO 서밋에서 특별세션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세계적으로 지난 20~30년 사이에 사모펀드 업계가 크게 성장했다. 일반적으로 사모펀드라고 하면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적이지만, 이는 일부 오해와 공부 부족 탓도 있다.
사모펀드 중에도 특히 ‘단기적·절대수익’을 추구 여부를 기준으로, 그런 성향을 가진 펀드를 우리는 ‘헤지펀드’라고 부른다. 해지펀드는 그 고질적 병폐인 부도덕한 투자 사례 때문에 대체로 사회적 신뢰도가 낮다. 단기 수익 창출에 집중하는 탐욕적 구조가 그 고질병인데, 핵심 자산 매각·과도한 비용 절감·대규모 구조조정 등으로 고용 불안과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사례가 더러 있다.
그러나 보통의 사모펀드는 기업 성장과 구조조정을 지원하고, 경영 효율화와 생산성, 수익성 향상에 기여하며, 파산 위기에 몰린 기업의 회생, 이른바 ‘소방수 역할’을 한다. 부실기업을 인수한 후 사모펀드가 보유한 경영 및 법률 전문가가 기업 운영에 참여함으로써 기업이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여 기업 가치를 개선하고, 고용 및 혁신을 촉진하며, 기업이 정상화된 후에 재매각하는 순기능을 한다.
2025년 10월 APEC 기간 중에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이 한국을 방문하여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2025년 기준 엔비디아 1개 회사의 시가총액은 약 5조 6000억 달러, 6300조원이다. 2025년 11월 6일 현재 한국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기업 수는 847개이며, 이들의 시가총액은 약 3000조원이다. 엔비디아 회사 하나의 시가총액이 한국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 전체의 시가총액보다 두 배 이상 크다는 의미다. 2025년 기준, 한국인의 미국 주식 투자 총액은 1317억 달러(약 183조원)이며, 이 중 테슬라가 약 38조원 규모로 1위를 차지하고, 엔비디아가 2위인데 135억 400만 달러(약 22.9조원)이다. 3위는 팔란티어, 4위 아이온큐, 5위 애플이다. 한국인의 앤비디아 사랑이 뜨거운 만큼 젠슨 황에 대한 존경심도 커졌다.
이런 엔비디아에게도 헤지펀드의 악몽이 있었다. <배런스(Barron’s)>의 수석기자 태킴(Tae Kim)이 100명 이상의 엔비디아 임직원들과 그 경쟁사 직원들을 인터뷰하여 쓴 『The Nvidia Way』(김정민 옮김 ‘Nvidia Revolution’)에 보면, 제프리 스미스(Jeffrey Smith)와 마크 미첼(Mark Mitchell)이 창업한 유명 헤지펀드인 스타보드 밸류(Starboard Value)와 엔비디아의 인연 또는 악연(惡緣)이 소개돼 있다.
스타보드와 그 CEO 스미스는 그 공격적인 투자행태 때문에 현재도 미국 기업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스타보드는 “가치(Value), 계획(Plan), 경로(Path)” 전략을 활용한다. 저평가된 기업을 식별해 공격 표적을 가려낸 다음(가치), 공격 전략을 수립하고(계획), 확고하게 승리할 수 있는 공격 루트(경로)를 확보하는 것이다. ‘경로’는 이사회 의석을 요구함으로써 이사회를 장악하는 것이 핵심이다.
2025년 상법 개정으로 도입된 집중투표는 헤지펀드에게는 ‘반지의 제왕’에서 아라곤이 사용하는 보검 ‘안두릴(Andúril)’과 같다. 안두릴은 ‘서쪽 나라의 불꽃’이라는 뜻으로 원래 명검 ‘나르실’의 부러진 조각들을 다시 벼려서 만든 검이다. ‘서쪽 나라의 불꽃 안두릴’로 동방의 한국 기업을 후려치면, 그 기업 이사회에 확실하게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아무튼 스타보드는 2024년 3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운용했고, 연간 15.5퍼센트라는 인상적인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펀드는 30개 이상의 기업 이사회에서 80명 이상의 이사를 교체했던 전력이 있다. 2024년 9월에는 미국 최대 정통 체인 레스토랑들을 소유한 기업인 ‘다든 레스토랑(Darden Restaurants)’의 지분 5.6%를 확보한 다음, 다든 이사회의 12인 이사 전원을 교체하는 성과를 올려 기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Office Depot/OfficeMax 합병을 주도했고, Yahoo에서는 위임장 대결(Proxy Battle)을 펼쳤다. 2025년 현재에도 BILL Holdings, Tripadvisor, Inc., Salesforce, Inc., Pfizer Inc., Kenvue Inc. 등을 공략 중이라고 보도되고 있다.
다시 엔비디아로 돌아가서, 2013년 스타보드는 엔비디아 주식 440만주를 확보하여 당시 수 년간 성장률이 침체에 빠진 엔비디아에 자사주 매입과 이사회 의석을 요구했다. 이사회는 스타보드 인원의 이사회 진입을 거부했지만, 결국 총 20억 달러 상당의 자사주를 매입할 수밖에 없었다. 스타보드와 엔비디아와의 관계는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다음 이야기가 이어진다.
몇 명의 이스라엘 기술 전문가들이 함께 설립한 회사로서 인피니밴드(InfiniBand: 초저지연 고속 인터커넥트) 표준에 따라 데이터 센터와 슈퍼컴퓨터를 위한 고속 네트워킹 제품을 제공하는 기업이 있다. 멜라녹스(Mellanox Technologies)라는 기업이다. 멜라녹스는 연구개발 비용이 높은 탓에 수익률이 매우 낮았다. 2017년 스타보드는 ‘가치’면에서 저평가된 이 기업을 공략했다. 운영자금 부족에 사면초가에 몰린 멜라녹스는 2018년 자산 매각을 요구하는 스타보드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으며, 멜라녹스는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멜라녹스 인수 전에는 인텔, 자일링스, 엔비디아가 참여했다. 젠슨 황은 멜라녹스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인수전에서 반드시 승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멜라녹스를 성공적으로 인수한 후 젠슨 황은 멜라녹스 인수가 왜 엔비디아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는지, 이번 인수의 성공을 그가 왜 그다지도 기뻐하는지를 컨퍼런스 콜을 통해 설명했다. 고속 네트워킹 기술 없이는 AI, 과학분야 컴퓨팅, 데이터 분석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쉽게 말하면 엔비디아가 독보적인 기술을 가진 GPU와 멜라녹스의 인터커넥트(네트워킹)를 결합하면 ‘데이터센터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처럼 작동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멜라녹스는 행동주의자들이 엔비디아에게 무심코 던져 준 엄청난 선물이었던 것이다.
최고의 기술을 헐값에 팔 수밖에 없었던 멜라녹스에겐 통탄스러운 일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막대한 연구개발비 때문에 큰 수익을 내지는 못했지만 회사가 망할 지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투자자 어느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한 멜라녹스로서는 헤지펀드의 압력에 버틸 재간이 없었다. “기업은 장사를 못해서가 아니라 돈을 빌리지 못하여 망한다”는 사례가 바로 이것이다.
젠슨의 말대로 엔비디아의 도약에는 멜라녹스의 기술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이 기술을 이전받음으로써 엔비디아는 수년의 시간을 앞당겨 AI시장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멜라녹스가 개발한 이 기술로 인하여 데이터 센터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가 된다. 데이터 센터가 단순한 서버 보관 시설을 넘어 강력하게 통합된 하나의 대규모 컴퓨팅 시스템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SK그룹과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인 아마존웹서비스(AWS)가 공동으로 약 7조 원을 투자하여 GPU 6만 개, 축구장 11개 크기로 울산에 짓게 되는 데이터 센터도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다. 엔비디아에게 엄청난 선물을 안겨 준 헤지펀드 스타보드 밸류는 엔비디아는 물론 한국과 전 인류에게 행운을 안겨준 뜻밖의 천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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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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