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하는 지역, 실행하는 지방정부
중앙-지방 함께 가는 실행과 협력의 시대
‘삶이 바뀌는 정책’ 위한 새로운 대안과 비전 나와야
지방자치는 30년간 순기능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인구감소, 사회구조 변화라는 큰 파고를 만나며 위기를 맞았다. 미래의 지방자치는 이런 변화를 극복하고 실행과 협력이 공존해야 한다. 사진은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5년 모습. ⓒ국가기록원
지난 30년간 한국의 지방자치는 뚜렷한 제도적 기반과 각종 권한 확대라는 성취를 이뤄냈다. 지방선거 8회와 자치법 제·개정, 각 분야에서 자치단체가 보다 넓은 역할을 맡으면서 주민의 지역 소속감과 생활 만족도를 높여온 것도 분명한 변화다.
실제로 행정서비스 만족도, 시민의 정주의식은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일부 지역에선 지역 자부심도 수도권보다 더 크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그러나 제도의 성숙과 달리 주민 개개인이 체감하는 변화는 여전히 제자리라는 평가가 많다. 2025년 발표된 조사에서도 주민의 62%는 ‘지방자치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러나 실제 성과를 느끼는 비율은 36%에 그쳤다.
전문가와 공무원 역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현실은 실질적 체감, 참여 경험에서 각각 50%, 53% 수준에 머물렀다.
법적 분권이 확대된 것과 별개로 재정자립도, 정책 집행의 자율성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로 나타났다. 실제 재정자립도는 1990년대 63%에서 최근 48%로 오히려 하락했다. 분권과 자치의 실질은 더 보완돼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주민참여도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크다. ‘참여기회가 10년 전보다 늘었다’는 응답이 절반에 달하는 상황에도 실제 정책제안, 자치회 경험자는 14%에 불과하다.
주민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인식도 높았다. 전문가들은 공무원-주민-지역리더가 소통과 협력의 구조를 더 적극적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 정책 결정과 집행이 현장에 맞게 작동하기 힘들다고 조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의 긍정적 변화도 분명히 존재한다. 스마트복지, 청년정책, 공동체 거버넌스 등 새로운 사회구조적 흐름에 맞춰 자치단체가 정책 실험과 혁신 모델을 더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현장이 늘고 있다.
각종 데이터 행정, 기업-주민-행정이 협력하는 플랫폼 구축, 지역별 특화산업과 돌봄 활성화 등의 성공사례는 분권시대 새로운 길잡이가 되고 있다.
정해웅 충남세종농협본부장이 올해 초 세종 농협대회의실에서 농가주부모임 회원들과 고향사랑기부제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홍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충남세종농협
전문가들은 “지방분권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전략”이라고 강조한다. 단순 예산지원과 제도만이 아니라 현장 실행력, 주민 공동체의 직접적 참여, 지역 맞춤형 비전의 지속적 확대만이 미래 지방자치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경수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은 “재정분권이야말로 지역 혁신의 출발점이다. 지방정부가 스스로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예산과 정책의 실질적 자율성을 확보해야만 지역이 성장할 길이 열린다”며 “우리 정부의 사명은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통해 모든 국민이 어디서나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있다. 지방정부가 자율권과 책임을 바탕으로 각자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지방정부가 일할 권한을 갖지 못하면 지역경제 활성화든, 소멸 위기 극복이든 단기 지원·공모사업에 머물 수밖에 없다”며 “지방분권은 단순한 권한 이전이 아니라, 중앙의 불신 구조를 하나하나 넘어서 실질적 역량과 책임성을 동시에 키우는 혁신 과정이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한 팀이 돼 치밀한 전략을 만들어 갈 때, 대한민국 전체가 살아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독일의 연방식 거버넌스는 도시·주정부가 각기 다른 산업정책, 주거·복지모델 등을 직접 설계하고 실행한다. 실질적 예산권 외에도, 정책기획전문가를 양성하고 마을 단위 성공 사례를 전국적으로 공유하는 구조가 강점이다.
일본의 성공 지자체들은 지역 맞춤형 전략과 민·관 파트너십을 통해 IT·예술·청년귀촌 등 혁신모델을 만들었다. 이 결과가 곧 인구 반등, 지역산업 부활 등으로 이어졌다.
반대로 실패·위기의 지역들은 외형적 분권만 강조하거나, 예산 집행이 단기 행정사업에 그쳤다. 실질적 주민 참여와 기획력이 약한 곳이 대부분이다.
이탈리아 남부처럼 중앙 의존형 행정의 한계를 넘지 못한 지역, 일본의 하위마을·한국의 재정 취약 지자체, 일부 스페인·캐나다 농촌 등은 정책설계·집행력·현장 역량이 취약했던 것이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공통된 위기의 원인은 ‘실질적 실행역량’ 결여, 정책 설계-집행의 현장 불일치, 단기 예산 소진, 행정 중심 위기관리의 한계, ‘주민 참여·지역역량’ 미비 등이 꼽힌다.
김경수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장이 지난 24일 경북 포항시 포스코 체인지업그라운드에서 강연하고 있다. ⓒ지방시대위원회
대한민국 지방자치는 30년의 길 위에서 국민의 삶과 현장, 도시와 마을이 진짜 변화할 수 있도록 실질적 분권, 지역의 책임과 권한, 주민 참여의 확장을 중심에 둬야 한다.
앞으로의 과제는 ‘형식적 분권’이 아닌 ‘실행력 있는 자치’, ‘정책과 공동체가 맞닿는 현장 변화’다. 오히려 최근 각 계 전문가와 기초·광역 단체들 사이에서 “지역 혁신의 주인공은 주민과 현장”이라는 합의가 확산되고 있다.
홍준현 중앙대 교수는 “지방자치는 주민이 직접 자신의 삶과 지역 발전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도구다”라며 “결국 행정적·재정적 분권이 제대로 실현될 때 비로소 민주성과 효율성, 생활의 변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이어 “우리의 지방자치는 아직 완전체가 아니다”라며 “지방정부가 제대로 독립성을 가질 수 있게 조직·인사·예산권 보완과 더불어 주민 참여의 데이터와 실질적 경험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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