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도시에서...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이 관객과 영화를 잇는 방법 [공간을 기억하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11.01 09:32  수정 2025.11.01 09:32

[작은영화관 탐방기㉘]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전주영화제작소 4층에 자리한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은 국내외 독립영화와 예술·고전영화를 상영하며 관객과 교류하는 문화 거점이다. 상영 외에도 세미나, 포럼,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복합문화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은 전주국제영화제의 성장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2000년 전주국제영화제가 출범한 이후, 지역 내에 다양한 영화를 안정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상설 공간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이어졌고, 그 결과 영화제작소 내 20009년 지금 이 공간이 탄생했다.


ⓒ전주영화제작소 제공

개관 이후 국내외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고전영화를 상영하며 전북권에서 유일한 전용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는 공식 상영관으로 활용된다.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은 전주영화제와 연계성을 가진 영화관이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는 것이 김선중 전주영화제작소 운영팀장의 설명이다.


“매년 4월 말에서 5월 초에는 전주국제영화제 상영관으로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특히 필름 상영이 가능한 곳이라, 영화제 기간 중 필름 상영을 진행할 수 있는 유일한 상영관입니다. 이 특성을 좀 더 소규모로 확장하고자 2015년부터는 ‘폴링 인 전주’(Falling in Jeonju)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그해 상영작 중 일부를 다시 추려 특별 상영을 하고 있습니다. ‘폴링 인 전주’는 보통 9월에 진행하고 있습니다. ‘Falling’이 ‘빠지다’이자 ‘가을’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계절과도 맞물리는 시기죠. 다만 자발적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향후 방향에 따라 일정은 변동될 수 있습니다.”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은 단순히 전주국제영화제의 연계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축제가 끝난 뒤에도 필름은 계속 돌아간다. 영화제 기간에만 머물던 예술·독립영화의 상영 기회를 일상으로 확장하며, 지역 관객들이 새로운 작품과 꾸준히 만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왔다.


“전주국제영화제와의 연결은 큰 장점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예술·독립영화를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게 된 점입니다. 이전에는 전주에 이런 공간이 없었거든요. 멀티플렉스에서도 가끔 예술영화를 상영하긴 하지만, 소외되는 작품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저희는 그런 영화들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전주영화제작소 제공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의 운영 방향은 명확하다. 상영작의 규모나 흥행보다는, 지금 이 시기에 극장에서 다뤄져야 할 영화에 집중한다. 화제성보다는 작품의 다양성과 예술적 가치에 무게를 두며, 극장이 단순한 소비 공간이 아닌 ‘영화의 본질을 지키는 공간’으로 기능하도록 유지 중이다.


“저희는 기본적으로 예술·독립영화 전용관이라는 설립 취지를 지키는 것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동시대에 개봉하는 다양한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려고 노력합니다. 멀티플렉스에서는 특정 영화가 대부분의 상영관을 차지하기 때문에, 저희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의미 있는 작품들을 프로그래밍하려 합니다. 그래야 이 공간의 가치가 더 살아나기 때문이죠. 또 하나는 ‘극장’이라는 공간의 본질을 지키는 겁니다. 요즘은 대체로 화려하거나 자본이 많이 투입된 영화들을 강조하며 극장의 필요성을 대변하지만, 침묵과 어둠을 필요로 하는 영화들도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그런 작품들은 집에서는 제대로 감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영화들이 상영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극장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운영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으로 그는 6~7년 전 진행한 지역 문화예술인 초청 토크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는 6~7년 전쯤 지역 문화예술인과 함께한 토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날은 관객이 많지 않았는데, 한 관객분이 게스트에게 담담하게 감상과 응원의 말을 전해주셨어요. 그 말을 들은 게스트분이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는데, 그때 ‘극장은 여전히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이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극장을 운영하는 일은 언제나 선택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상영의 폭을 넓히면서도 본래의 색을 잃지 않기 위해,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은 매일 균형점을 고민한다.


“예술·독립영화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대중성이 있는 작품들이 있죠. 그런 영화들은 운영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국가의 독특한 작품이나 고전영화도 함께 가져가려 합니다. 또 지역 내 공동체 행사나 사회적 의제를 영화로 풀어내는 시도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이런 요청이 들어오면 최대한 수용하려고 해요.”


균형의 문제는 결국 존재의 이유로 이어진다. OTT와 개인화된 플랫폼이 보편화된 시대에도,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은 ‘왜 극장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매일 던진다.


“좋은 것은 언제나 좋은 것이고, 가치 있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극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시장의 영향력은 줄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극장의 본질적 가치를 더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전에는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지’라는 명제가 통했지만, 이제는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게 좋다’라는 수준으로 바뀌었어요.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OTT는 개인의 알고리즘 선택 중심이지만, 예술·독립영화관은 프로그래머가 큐레이션한 타인의 선택으로 구성됩니다. 이게 바로 문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OTT는 결국 자기 생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선택이 반복될 위험이 있지만, 극장은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세계를 만나게 해주는 곳입니다. 그게 바로 극장의 확장성이자 존재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은 현실의 변화와 관객의 감수성에 반응하며, 공간이 시대와 함께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려 한다.


“앞으로는 지역의 현실과 이슈를 민감하게 반영하는 노력이 더 필요해요. 영화는 결국 현실의 후일담이기 때문입니다. 극장 내부와 외부를 연결할 수 있는 공간 확장형 프로그램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멀티플렉스에서는 콘서트나 응원 문화로 확장하지만, 독립예술영화관은 전시나 커뮤니티 기반의 실험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아직 정답은 없지만, 결국은 극장의 강점을 중심에 두면서 시대와 사회의 변화를 꾸준히 바라보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김선중 전주영화제작소 운영팀장은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이 관객에게 “친숙하면서도 낯선 공간”으로 남길 바란다고 말했다.


“‘친숙하다’는 건 예술·독립영화에 대한 막연한 편견, 어렵고 낯설다는 인식을 내려놓게 하는 의미고, ‘낯설다’는 건 익숙한 틀을 깨뜨릴 수 있는 새로운 자극을 주는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극장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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