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심, 사실관계 명확히 해 법률 판단 근거 제공…핵심 단계
지난해 소송 건수 700만건 육박…과중된 법관 업무량
대법관 증원 시 '주력군' 부장판사 대거 재판연구관 파견 예상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대법관 갑작스럽게 증원 시 사건 처리 지연 불가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데일리안DB
대법관 정원의 증원을 골자로 한 더불어민주당의 사법개혁안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대법관 증원이 사실심이라 불리는 1·2심의 역량 악화로 이어져 국민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대법관 증원이 아닌 사실심 역량 강화가 사법개혁에 있어서 더욱 시급한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22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단계적 증원하고 대법관 추천위원회 구성을 다양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자체 사법개혁안을 지난 20일 발표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사법개혁안에서 1·2심 관련 대책은 하급심 판결문의 열람·등사(복사)를 전면 허용하는 것 이외에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 없다.
법조계에서는 이 때문에 민주당이 앞으로 3년간의 단계적 대법관 증원을 한다고 밝혔지만, 대법관 정원이 대규모로 확대될 경우 사실심 부실화는 피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현재 우리 사법부는 3심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1심과 2심은 사실관계를 주로 심리하는 사실심이고 3심은 주로 법률적 해석 및 적용을 판단하는 법률심이다. 쉽게 말해 사실심은 사건의 사실관계를 명확히 해 법률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는, 이른바 '진실'을 밝히는 과정으로 법적 분쟁에 있어서 핵심적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최근 제기된 소송 건수가 약 700만건을 육박할 정도로 법관들이 감당해야 할 업무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에 반해 법관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대법원 소속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25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2024년 한 해 동안 법원에서 접수한 소송 사건은 총 691만5400건을 기록했다. 이는 666만7442건이 접수됐던 2023년에 비해 약 3.7%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법관 규모로는 업무량이 과중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지적이다. 지난 4월10일을 기준으로 임용 중인 법관 수는 3172명이다. 이중 통상 14년~1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부장판사는 각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을 합쳐 총 1400명이다.
특히 대법관 증원 시 대법관에 전속 또는 비전속으로 파견돼야 하는 재판연구관도 더욱 많아지는 만큼 사실심의 인력 감소는 불가피하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대법관 1명당 재판연구관은 8.4명이다.
재판연구관은 사건의 심리 및 재판에 관한 조사와 연구 업무를 담당하는데 주로 경력 10년 이상의 법관들로 구성돼 있다. 만약 민주당 안대로 대법관이 12명 증원될 경우 산술적으로만 판단해도 재판연구관은 지금보다 약 100명 이상은 더 필요하다.
여기에 승진 후 4년~6년이 지난 부장판사들이 주로 재판연구관으로 파견되는 것이 사법부 관례이기 때문에 대법관이 대폭 늘어갈 경우 일선 법관의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부장판사는 법원의 주력군인데 이들이 빠져나갈 경우 남아 있는 부장판사들이 사건을 나눠 받게 되다 보니 사건에 대한 부담이 커질 것이고 당연히 처리 속도도 느려지게 될 것"이라며 "갑작스럽게 대법관을 늘릴 경우 피해 보는 것은 국민"이라고 비판했다.
김태규 변호사(법무법인 강남)는 "지금도 일부 지방법원의 경우 불구속 상태 피고인에 대한 항소심 공판 기일을 잡을 때 3개월~4개월이 걸린다"며 "부장판사들이 대거 재판연구관으로 차출된다면 재판 지연 문제가 더 심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대법관 증원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하급심 역량 강화 대책도 함께 나왔어야 한다"며 "두 가지는 별개로 추진돼서는 안 되고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대법관 증원만 서두르면 부작용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사법부는 순환근무 형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럴 경우 전문성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독일의 경우 민사나 형사 중 한 분야를 전문화하는데 우리도 하급심부터 전문화된 법관을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사법개혁안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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