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도, 용량도 못 건드려”…슈링크플레이션 금지령에 외식업계 ‘진퇴양난’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입력 2025.10.21 06:44  수정 2025.10.21 06:44

대통령실, ‘꼼수 인상’ 직접 제동

원가 급등에도 ‘가격 인상 금지’ 압박

“이젠 품질 조정도 막혀”…업계 반발 확산

식품업계로 번지는 긴장감…자율경영 어려워

서울 시내 식당의 가격표 모습.ⓒ뉴시스

정부가 ‘슈링크플레이션 금지령’을 내리면서 외식업계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가격 인상은 물론 용량 조정까지 제약 받게 되면서다. 원가 부담에 허덕이면서도 기업만 ‘꼼수 인상’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는 이유에서 불만이 적지 않은 눈치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6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일부 프랜차이즈 치킨 업체의 꼼수 인상 행태를 문제 삼으며 “공정위, 식약처, 농림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해 슈링크플레이션을 근본적으로 방지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강 실장은 “치킨은 빵·라면 등과 달리 중량 표시 의무 대상이 아니어서 ‘꼼수 인상’이 이어지고 있다”며 “맛과 서비스를 개선하는 노력 없이 가격을 올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지적은 지난 9월 교촌치킨이 순살치킨 중량을 700g에서 500g으로 줄이고 닭다리살 메뉴에 닭가슴살을 섞은 것이 알려지면서 촉발됐다. 업계는 대통령실 차원에서 기업의 가격 인상 이슈를 강도 높게 지적한 만큼 조만간 후속 조치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이란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제품의 크기나 수량을 줄이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일종의 ‘간접 가격 인상’인 셈인데,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손님들의 주머니 사정도 고려해야 하는 외식업계의 고민이 반영됐다.


문제는 슈링크플레이션이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물가 대책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고물가 시대에 소비자의 저항감을 완화시키기 위해 등장했지만 인플레이션이 극성을 부릴 때마다 가격은 그대로 유지한 채 상품 크기나 용량을 줄이면서 논란이 됐다.


이 때문에 정부도 ‘기만적 인상’을 문제로 봤다. 겉으로는 가격을 동결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량을 줄이거나 원재료를 변경해 소비자 체감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물가 통계를 왜곡해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게 대통령실의 판단이다.


서울 시내 음식점 밀집지역의 모습.ⓒ뉴시스

실제로 외식업계는 그간 슈링크플레이션을 일종의 ‘생존 전략’으로 활용해왔다. 원재료비와 인건비, 물류비가 동시에 치솟는 상황에서 가격 인상은 소비자 반발과 정부의 견제를 불러오기 때문에 용량 축소나 원재료 대체를 통해 원가 부담을 완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국제 곡물가와 원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생산비용이 급격히 늘었고, 최저임금 인상과 배달 수수료 상승 등으로 외식업계의 부담도 커졌다. 이에 일부 업체들은 제품 가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중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실질적인 가격 조정을 해왔다.


하지만 업계는 용량 조절마저 쉽지 않게 되면서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원재료비와 인건비가 꾸준히 오르는데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중량 조정이나 원가 절감도 사실상 봉쇄되면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논리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가격을 직접 올리면 ‘폭리’ 논란이 불붙고 소비자 이탈이 커지기 때문에, 최소한의 품질 변동으로 원가를 맞추는 선택을 해온 것”이라며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규제로 막히면 버틸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나명석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장(웰빙푸드회장)은 취임 직후인 지난 17일 첫 기자간담회를 통해서도 “슈링크플레이션은 무리수지만, 그만큼 치킨 업계가 절박한 상황”이라고 항변한 바 있기도 하다.


쉽게 말해,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용량을 줄인 것은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의 녹록지 않은 상황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업계는 현재 피자헛 차액가맹금 관련 부당이익 환수 소송이 대법원 판결과 가맹사업법 개정에 따른 점주단체 등록제 및 협의의무제 시행을 앞두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규제 강화 흐름 속에서 본사도 정상적인 영업활동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최소한의 품질 조정으로 원가를 맞춰온 것인데, 이제는 그마저도 막히면 버틸 여력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외식업계와 마찬가지로 식품기업들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먹거리 가격에 대한 압력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식품업계 역시 언제든 동일한 잣대의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다. 식품업계의 경우 대부분 기업이 영업이익이 5% 안팎인 상황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원재료와 인건비가 계속 오르는데 가격 인상은 눈치 봐야 하고, 이제는 용량 조정까지 제한되면 대응 여지가 없다”며 “정부가 외식업계를 넘어 식품까지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사실상 기업의 자율 경영이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