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 달러 투자 방안 놓고 이견 조율 중
교착 국면 속 기업 총수들 마러라고 회동
대미 자동차 수출 감소…관세부담 현실화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펀드를 둘러싼 한미 관세협상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코앞에 두고 분수령을 맞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미국과의 후속 협상을 마치고 전날 귀국하면서 대부분 쟁점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있으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것이 타결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29일 정상회의 참석차 경주를 찾을 예정으로 알려지면서, 이번 협상이 정상 간 관세 담판의 향배를 가를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김용범 실장이 '진전'을 언급하면서도 "조율이 필요한 남은 쟁점이 있다"고 밝히면서, 외형상 진전에도 불구하고 최종 매듭까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29일 도착해 30일까지 국내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 기간 한미 정상회담이 추진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결국 이번 협상의 최종 결론은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어떤 최종 조율이 이뤄지느냐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다.
한미 양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전액 현금 투자'로 할지, 혹은 대출·보증 등 '비현금성 자금 운용을 병행'할지를 놓고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양국은 지난 7월 말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구두 합의했다. 이후 우리 정부는 외환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무제한 통화스와프 등 안전장치를 요구해왔다.
김 실장은 이번 방미 기간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 등을 만 2시간 이상 회동을 하고,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과 50여 분간 면담을 갖기도 했다. 김 실장은 우리 취재진에게 3500억 달러 대미 투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와 직접 투자 비율이나 통화스와프 등을 둘러싼 '실질적 진전'의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협상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개별 프로그램, 개별 숫자 이런 것까지 말씀드리기는 어렵다" 밝혔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이 감내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그리고 상호 호혜적인 프로그램이어야 한다는 내용에 대해선 상당히 의견이 근접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협상 분위기에 대해 긍정적 기류가 형성되고 있음을 내비쳤지만, 세부 조율 사항이 남아 있는 만큼 최종 결론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김 실장의 귀국으로 협상 경과가 공유된 만큼, 대통령실은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정상회담 준비에 본격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시간) EU와 한국, 일본에 대해 공정한 대우를 바란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 중 무역 협상 관련 질문에 답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어리석지 않다. 그것은 유럽연합(EU)도 포함되고, 일본과 한국도 포함된다. 이들 나라에서 우리나라가 바라는 것은 공정하게 대우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 '공정하게'라는 것은 미국으로 수천억, 심지어 조 단위 달러가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우리 국가 안보는 관세 덕분에 굳건하다. 관세가 없었다면 국가 안보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APEC 계기로 한미 관세협상 관련 일부 쟁점을 남겨둔 채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으나, 대통령실은 이를 사실이 아니라고 공지하기도 했다.
한편 난항을 겪고 있는 한미 무역 협상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마러라고 회동에 우리 기업 총수들이 직접 나서기도 했다. 교착된 협상 국면에서 민간 차원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또 다른 외교 채널'로 작용했을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마침 정부의 경제·통상 라인도 미국으로 총출동해 막판 무역협상을 벌였던 만큼, 이 자리에서 반도체·자동차·배터리·조선 등 주요 산업 분야의 대미 투자와 관세 문제를 두고 의견이 오갔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은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 인근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의 골프 회동을 마치고 속속 귀국한 상태다. 총수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골프를 치는 조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경기 후 그를 만나 현지 투자와 조선 협력에 관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행사는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주최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대미 수출 지표에서도 여파가 감지되고 있다. 이날 산업통상부가 공개한 '9월 자동차산업 동향'에 따르면 지역별로는 한국의 최대 자동차 수출 시장인 미국으로의 수출이 지난해 9월보다 7.5% 감소한 23억8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대미 자동차 수출은 트럼프 행정부가 우리 자동차 기업 수입차에 25% 품목 관세를 부과한 영향 등으로 7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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