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중 수출통제 ‘구멍’ 물샐틈없이 틀어막는다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입력 2025.10.05 07:07  수정 2025.10.05 07:07

美, 제재명단 오른 기업 자회사도 자동으로 블랙리스트 포함

美 “반도체 관련 제재 회피하려는 우회전략 막기 위한 조치”

“中 국유기업 계열 포함 수천개 자회사 영향권에 들어갈 것”

中 “이번 조치는 매우 악질적…단호히 반대” 강도 높게 비판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지난 6월10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미·중 2차 고위급 무역협상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두 나라는 협상에서 중국이 희토류 등의 수출통제를 풀고 미국은 중국에 대한 반도체 등 수출제한을 해제하는 내용의 프레임워크(틀)에 합의했다. ⓒ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중국의 첨단 ‘반도체 굴기(崛起·우뚝 섬)’를 저지하기 위해 수출통제 조치를 대폭 강화했다. 미 정부의 ‘블랙리스트’(제재 명단)에 중국 기업이 오르면 그 기업의 자회사들까지 자동으로 제재 대상에 포함되도록 함으로써, 화웨이(華爲)나 중신궈지(中芯國際·SMIC)와 같은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미국의 수출통제 대상 기업명단에 오른 외국 기업 및 단체의 자회사까지 자동적으로 블랙리스트에 포함하는 새 규정을 발표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지난 30일 보도했다. 새 규정은 제재 명단에 오른 기업이 직접 지분 50% 이상을 보유한 자회사에 우선 적용되며 30일부터 발효됐다.


새 규정은 미국의 국가안보 또는 외교정책 이익에 반하는 활동을 하는 기업 명단인 ‘우려거래자 명단’(Entity List)과 기술을 군사용으로 전용(轉用)할 수 있는 ‘군사 최종 사용자 명단’(Military End-User List)에 등재된 기업의 계열사에 적용된다.


이에 따라 미 기업들은 앞으로 블랙리스트 기업의 자회사와 거래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승인 자체가 거부될 공산이 크다. 미 상무부가 “제재를 회피하려는 ‘우회전략’(diversionary schemes)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못박았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의 이 같은 조치는 “미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이 중국 인공지능(AI) 기업에 흘러들어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미 당국자들의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소속 중국 담당 ‘매파’들의 주도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 상무부는 이 조치가 편법적 수법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제프리 케슬러 상무부 산업·안보 담당 차관은 "너무나 오랫동안 (규제) 허점이 미국의 국가안보와 외교정책 이익을 저해하는 수출을 가능하게 해왔다"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 상무부 BIS는 이 허점을 메우고 수출통제 조치가 의도대로 작동하도록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7월26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 인공지능(AI) 대회’(World Artificial Intelligence Conference)에서 관람객들이 화웨이 부스에 몰려들어 참관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기업들이 자회사나 해외 계열사를 통해 미 반도체 장비와 첨단 기술의 수출 통제 조치를 우회해온 관행을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미 NSC 소속 관료로 지냈던 크리스 맥과이어는 “거래 제한 목록에 오른 기업의 자회사를 별도로 목록에 명시하지 않는 한 (미국 첨단 제품·기술의) 수출이 허용됐던 것은 비논리적이었다”며 “미국 수출통제 시스템에 있어 매우 필요한 시정 조치”라고 강조했다.


사실 지금까지는 수출통제 조치를 적용받는 기업의 자회사더라도 제재 명단에만 없으면 수출통제에서 제외됐다. 이 때문에 수출통제 대상인 화웨이 등은 자회사를 만든 뒤 그 자회사를 통해 미국의 기술을 몰래 들여왔다. 기존 제재 체계에서는 모회사가 제재 명단에 올라 있다고 하더라도 자회사가 별도 지정되지 않으면 거래가 가능했으나, 이번 조치로 그 방식이 완전히 차단된 셈이다.


중국 기업 데이터를 분석하는 와이어스크린은 이번 수출통제 조치 개정으로 중국 국유기업 계열을 포함해 수천 개의 자회사가 그 영향권 안에 들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화웨이와 중신궈지 등의 자회사들이 이날 수출금지 대상기업에 추가되는 등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새 조치에도 허점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특정 기업이 직접 지분을 보유하지 않고도 계열 구조나 우회 법인, 심지어 파티 인맥을 통해 사실상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까닭이다. 화웨이나 중신궈지처럼 이미 구조조정을 통해 미국 제재를 피할 방안을 모색해 온 중국 기업들에 새로운 우회 전략이 동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레고리 앨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적절하게 집행이 이뤄지면 이는 엄청난 변화”라면서도 “실사 기준이 지나치게 느슨해 기업들이 사실상 면책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기업들의 행동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엄격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번 수출통제 조치로 현재 진행 중인 미·중 간 무역협상에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앞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4차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을 하루 앞둔 지난 12일 미 상무부가 수출통제 명단에 지무시(吉姆西·GMC) 반도체·지춘(吉存) 반도체 등 중국 기업 23곳을 추가했을 때 중국은 미국의 무역협상에 대한 진정성에 의문이 든다며 미국산 아날로그 반도체의 반덤핑 조사로 즉각 반격한 바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6월2일 타이베이 국립대만대 종합체육관에서 ‘컴퓨텍스(COMPUTEX) 2024’ 기조연설 도중 자사의 인공지능(AI) 가속기인 ‘블랙웰’(Blackwell)을 선보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다만 중국이 이번에는 특별히 보복에 나서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미 정부 관계자는 블룸버그통신에 "이번 조치는 이미 수출통제를 받고 있는 기업들이 자회사를 우회책으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며 "무역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언급했다.


블룸버그는 미국이 지난 수년간 화웨이와 창장춘추(長江存儲·YMTC) 등과 같은 중국 기술 기업들을 제재하기 위해 이 명단을 활용해 왔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 강화 조치에 대해 악질적인 행동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지난달 1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전화통화를 계기로 ‘해빙 무드’에 접어든 미·중관계가 다시 악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는 이날 미 상무부의 새로운 수출 통제 규정 발표 직후 “이번 조치의 성격은 매우 악질적”이라며 “중국은 이에 대해 단호히 반대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이번 규정은 미국이 국가안보 개념을 무분별하게 확대하고 수출 통제를 남용하는 또 하나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비판했다.


특히 “미국의 이번 조치는 관련 기업들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권익을 심각하게 훼손할 뿐 아니라 국제경제 무역질서를 뒤흔들고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중국은 미국이 잘못된 행위를 즉시 시정하고 중국 기업에 대한 부당한 압박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필요한 조치를 취해 중국 기업의 합법적인 권익을 단호히 수호할 계획”이라며 보복 조치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런 가운데 생산계획 등에 대해 철저한 비밀주의를 고수해 왔던 화웨이는 미국에 보란 듯이 내년에 첨단 인공지능(AI) 칩 생산을 올해의 2배 수준으로 늘리기로 한 계획을 흘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복수의 익명 소식통들은 30일 “화웨이가 주력인 ‘910C 어센드’ 칩을 내년에 약 60만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의 제재로 생산에 어려움을 겪었던 올해의 2배 수준이다.



ⓒ 자료: 중국 해관총서/중국 첸잔(前瞻)산업연구원

또 내년에 출시될 910C 후속작과 950DT 등 어센드 제품 라인을 위한 다이(die) 생산량을 올해 최대 100만개에서 내년 160만개 수준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다이는 칩 회로를 담는 기본적인 실리콘 부품을 의미한다. 이런 전망은 화웨이의 재고, 내부적 수율 추정치 등을 반영한 것이다.


더군다나 화웨이는 이례적으로 엔비디아의 아성에 도전하기 위한 3개년 비전을 공개하기도 했다.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어센드 계열 950·960·970 등의 제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화웨이가 이 목표를 달성할 경우 이는 기술적 돌파를 의미한다”며 “화웨이 등이 중국의 반도체 자립 목표를 막아온 병목현상 일부를 완화할 방안을 찾았다는 뜻이 된다”고 분석했다.


알리바바(阿里巴巴)·선두추숴(深度求索·DeepSeek) 등 중국 업체들은 AI 서비스 개발·운영을 위해 AI 칩 수백만개를 필요로 하며, 지난해 미 반도체기업 엔비디아의 H20 칩 판매량만 100만개가량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중국과의 기술패권 경쟁 속에 올들어 엔비디아 H20 칩의 대중 수출을 막았다가 다시 풀어줬다. 그런데 중국 당국은 반도체 산업 발전에 속도를 내는 한편 중국 기업에 엔비디아 칩 사용을 제한하도록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중국 기업들이 전체적인 반도체 생산을 내년까지 3배로 늘리려 한다는 일각의 관측에 대해서는 수율 등을 이유로 비현실적"이며 "반도체 성능을 놓고 보면 화웨이 950의 성능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VR200 슈퍼 칩의 6%에 불과하다는 미국 시장조사업체 번스타인의 추정도 있다"고 블룸버그는 덧붙였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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