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더 괜찮아지는 경험”…윤가은 감독이 곱씹은 ‘극장의 시간들’ [30th BIFF]

데일리안(부산)=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입력 2025.09.21 11:44  수정 2025.09.22 00:06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 초청

극장·관객이 함께 완성하는 영화의 의미

‘우리들’에서는 ‘관계’를, ‘우리집’에서는 ‘집’의 의미를 아이들의 시선으로 풀어낸 윤가은 감독이 이번에는 영화와 극장의 의미를 고민했다. 아역 배우 출신 고아성이 감독 역, 아이들이 아역 배우 역을 맡아 함께 영화 만드는 과정을 포착한 ‘극장의 시간들’을 통해 영화와 극장, 그리고 관객이 함께 완성하는 예술의 가치를 입증한 것이다.


‘극장의 시간’들은 국내 대표 예술영화관 씨네큐브가 개관 25주년을 맞아 제작한 영화로, 이종필 감독의 ‘침팬지’, 윤 감독의 ‘자연스럽게’를 엮어 완성한 작품이다.


ⓒ티캐스트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돼 부산 관객들을 만났다. 이종필, 윤가은 감독은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영화팬들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고 영화제를 찾은 이재명 대통령은 20일 이 영화를 관람한 뒤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 “영화는 일종의 종합 예술이자 하나의 산업”이라며 “한국 영화 제작 생태계가 나빠지고 있다고 하는데, 정부에서도 영화 산업이 근본부터 튼튼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었다.


예술영화, 극장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윤 감독은 ‘관객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 영화를 완성할 수 있어 더욱 감사했다. 19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극장의 시간들’이 첫 상영되고, 이후 행사를 통해 관객들과 소통한 윤 감독은 그들이 영화에 보내준 애정, 그리고 해석이 이 영화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줬다며 감사를 표했다.


“처음엔 제목이 ‘극장의 시간들’이 아니었다. 영화, 극장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 것으로 알고 작업에 임했다. 그래서 영화에 더 초점을 맞췄다. 다만 관객으로서의 영화도 있지만, 어느 순간 저는 만드는 사람으로서 영화를 보지 않나.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용 안에) 극장이 들어오게 되더라. 저도 ‘내 영화가 어떻게 극장과 만나게 될까’를 각하게 된다. 한때는 만드는 순간 끝난다고 생각했는데, 극장에 가서 관객들을 만나야 완성이 되는 것이더라. 만든 사람 입장에서도 그 시간이 없으면 완성됐다는 느낌이 안 든다. 만든 사람이 극장에서 내 영화를 볼 때는 천차만별의 감정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스럽게’는 ‘우리는 (영화를) 이렇게 경험하고 있어요’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윤 감독이 연출한 ‘자연스럽게’는 아역 배우들이 영화 찍는 과정을 담아낸다. 극 중 아역 배우들은 주어진 상황 안에서 자유롭게 대화하며 작품을 완성하는데 이때 배우 고아성이 감독 역할로 아이들을 이끄는 모습이 포착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과 고아성이 즉흥 연기로 ‘자연스럽게’를 완성하는 독특한 촬영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를 통해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짚고 영화의 의미를 곱씹는다.


윤 감독 또한 극 중 설정처럼, 배우들의 즉흥 연기를 통해 작품을 완성했다. ‘우리들’, ‘우리집’에 이어 아이들이 주인공이 된다는 점에서 고아성이 윤 감독을 연기한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들도 많지만, 윤 감독은 ‘자연스럽게 완성이 된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고아성이 만든 부분이 크다. 이번에 해보고 싶었던 것이 현장에서 배우들과 함께 아주 간략한 설정만 가지고, ‘만들면서’ 발견하는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 그런 장면들이 나올 때 반갑지 않나. 그런데 제작비가 많이 투입될수록 정교해야 하기에 그동안엔 해보지 못했다. 시나리오에 정말 뭐가 없었다. ‘감독이 아이들과 어떤 장면을 만든다’는 줄글만 가지고 현장에서 발견을 해나가는 작업을 했다. 감독 캐릭터 자체도 마찬가지다. 고아성이 해보고 싶다고 해주셔서 함께하게 됐다. 고아성이 많은 것을 만들어 줬다. 내게서 가지고 간 것은 땀이 나면 닦고, 햇볕을 가려주는 넥스카프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처음 의도와는 다른 전개가 나오기도 했다. 아역 배우 출신인 고아성이 자연스럽게 아역 배우들에게 ‘그만이 던질 수 있는’ 대사를 던지며 의미를 확장했다. 윤 감독이 꿈꾼 ‘반가운’ 순간들이 이번 작품에 ‘자연스럽게’ 담기게 됐다.


“‘자연스러운 연기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인데, 고아성은 극 중 감독 역할을 하지만, 배우라는 건 아역 배우들도 알고 있지 않나. 가이드로 세운 질문이 있었고, 더 들어가는 질문은 고아성이 해줬다. ‘현장에 엄마가 있는 것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그랬다. 배우 입장에서 아이들과 통하는 지점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반응도 더욱 적극적이었다. 삭제된 장면 중에서 ‘대사를 연습할 때 어떻게 하는지’ 묻기도 했었다. ‘혼자 하냐’, ‘가족 앞에서 하냐’ 이런 대화들을 하기도 했다. 재밌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아쉽게 덜어내야 했다.”


이렇듯 영화, 그리고 극장에 대해 함께 고민 중이지만 아직도 답을 찾아 나가는 중이다. 윤 감독은 평소 ‘나 영화 왜 만들지’라는 고민을 많이 한다고 털어놨다. 영화를 좋아하고, 또 영화 만드는 과정도 사랑하지만 손익분기점을 비롯해 ‘현실’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었다. 그럼에도 영화가, 특히 예술영화가 줄 수 있는 가치를 믿고 나아가는 중이다.


“‘영화가 무엇이냐’고 하면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가 한 말이 있다. ‘어린이 문학, 동화가 왜 존재하냐’는 질문에 교훈을 주고 인생 가이드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더라. ‘아이들도 예술을 감상할 권리가 있다’고. 우리는 살면서 엄청나게 많은 일을 겪게 된다. 좋은 일도 있겠지만, 아이들도 큰 상실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이해 불가능한 일을 받아들일 때 예술이 그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런 감정도 있다고 알려주고, 충분히 느끼게끔 하는 것이다. 저도 그런 것 같다. 충격부터 기쁨까지, 영화를 통해 그런 경험들을 쌓으면 삶이 좀 더 괜찮아지는 것 같다. 아주 다양한 종류의 영화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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