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의 생존 카드, 팬덤 비즈니스로 떠오른 VR 영화 [몰입의 시대, VR 속으로③]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09.19 13:53  수정 2025.09.19 13:53

극장은 지금 OTT 확산과 관객 감소라는 현실 앞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5년 상반기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올해 1~6월 극장 매출은 4079억 원, 관객 수는 4250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3.2%, 32.5% 감소했다. 상반기 기준으로는 2005년(3404억 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여름 성수기 들어 ‘좀비딸’이 557만 관객을 모으며 활기를 불어넣었지만, 극장가는 여전히 장기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업계는 영화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투자자금 유입이 줄고 제작 편수가 감소하면서 콘텐츠 공급이 부족해지자, 극장은 영화 자리를 메꿀 대안 콘텐츠를 발굴해야 했다.


재개봉작 상영이나 공연·스포츠 중계의 영화화가 잇따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돌파구로 삼은 것이 특수상영관이다. 스크린·영사기·사운드 시스템 등 특수 설비를 기반으로 한 체험형 상영관이 늘어나면서 극장의 차별성을 강화했다. 2019년 304개에 불과하던 특별관은 2024년 1152개로 늘었다. 4DX, 아이맥스, 스크린X 같은 체험형 포맷은 꾸준히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돌비시네마는 2020년 연간 관객 수 3만 명 수준에서 2023년 60만 명까지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30만 명이 찾으며 누적 220만 명을 돌파했다. 전반적 하강 국면 속에서도 특수상영관은 극장 산업의 동아줄 중 하나가 됐다.


CJ CGV, 롯데컬처웍스, 메가박스중앙 등 3대 멀티플렉스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팬덤을 겨냥한 신사업을 적극 추진하면서, VR(Virtual Reality) 영화는 그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진 사례로 부상했다. 극장이 내세운 새로운 카드 속에서 VR 영화는 팬덤 소비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는, 적합한 콘텐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성과도 만족스러웠다. 2024년 12월 4일부터 4주간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상영된 ‘하이퍼포커스 : 투모로우바이투게더 VR 콘서트’는 개봉 첫날 좌석 판매율 75%를 기록했다. 지난 8월 8일 개봉한 ‘엔하이픈 VR 콘서트: 이머전’은 단일관 상영임에도 개봉 첫날 좌석점유율 61%를 기록했고, 누적 관객 수는 2만 3552명에 달했다.


흥행 요인은 케이팝 팬덤의 소비 패턴과 맞닿아 있다. 일반 영화에 비해 두 배 이상 비싼 3만 3000원의 티켓 가격은 부담일 수 있으나, 아이돌 콘서트 현장 티켓이 10만~20만 원을 훌쩍 넘고도 구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면 VR 영화는 오히려 합리적인 대안으로 인식된다.


팬덤은 멤버와 함께 서사의 주체자로 참여하는 듯한 몰입감을 경험하며 N차 관람으로 이어진다.


‘엔하이픈: 이머전’을 본 한 20대 관객은 “3만 3000원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코앞에서 실제로 너무나 생생하게 와닿았기 때문에 러닝타임 내내 행복했고,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몇 번이고 또 보러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팬덤만의 영역은 아니다. 같은 작품을 친구 권유로 관람한 한 일반 관객은 “팬은 아니었지만 눈앞에서 멤버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실감나고 정교해서 놀랐고, 일반 영화보다 훨씬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관객들과 함께 환호하며 본다는 경험도 색다르고, 직접 콘서트에 간 것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멤버들의 얼굴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극장 업계는 이러한 특성을 전략적 기회로 본다. 한 극장 관계자는 “저희가 주목하고 있는 건 팬덤 콘텐츠다. VR 콘서트나 뮤지컬 같은 장르가 대표적다. 팬덤 콘텐츠의 가장 큰 미덕은 자연스럽게 N차 관람을 불러온다. 실제로 현장에서 팬들에게 물어보면 ‘한 번만 봤다’는 관객은 거의 없다. 오히려 여러 번 찾아오면서 매번 다른 몰입을 경험한다. 이런 특성이 극장 입장에선 안정적인 수익 구조로 이어진다. 규모가 아주 크진 않아도 꾸준히 매출이 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일반 관객이 우연히 팬과 함께 VR 영화를 보고 나서 새로운 팬덤으로 유입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단순히 팬들만을 위한 소비에 그치지 않고, 가요계와 공연계, 극장 산업이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좋은 IP는 음악에서도, 공연에서도, 스크린에서도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는 걸 확인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CJ CGV 서지명 커뮤니케이션팀장은 “극장의 역할은 모바일이나 집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체험을 제공하는 데 있다. 특별관 등을 통해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선사해온 것처럼, VR은 이러한 체험적 요소를 극대화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최근 상영된 작품들은 사운드와 현장감이 상당히 실감 나게 구현돼 관객 몰입을 이끌고 있다. 팬덤 기반 콘텐츠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만큼, VR은 그 흐름과 맞물려 극장에서 더 큰 가능성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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