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분담계약제 발전 방향 국회 토론회 개최
국내 단일가 빅파마 진출 꺼리는 요소로 작용
고가 항암제, 희귀 질환 넘어 영역 확대 필요
“현재 항암제와 희귀 질환 치료제에 한정된 위험분담제를 재정 영향이 큰 고가 의약품 전반으로 확대, 글로벌 환경 변화에 대응해야 합니다.”
미국의 의약품 가격 정책 변화 속에서 고가 신약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위험분담계약제(RSA)가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제약 업계와 전문가들은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이중약가제 형태의 ‘위험분담제’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안정훈 이화여대 융합보건학과 교수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김윤 의원 주최로 열린 ‘의약품 통상 압박 대응과 치료 접근성 확보 위한 위험분담계약제 발전 방향’ 토론회에서 “대외 환경의 변화 속에서 위험분담제 확대를 검토할 때가 됐다”며 “이를 항암제, 희귀 질환 등으로 제한하는 것은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너무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위험분담제란 신약의 효과나 보험 재정 영향 등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정부와 제약사가 사전에 환급 조건을 합의하는 제도다. 주로 대체 치료제가 없는 항암제나 희귀 질환 치료제와 같은 고가의 신약에 적용된다. 국내에서는 2013년 도입돼 환자들의 부담을 줄이고 있다. 안 교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RSA 계약 약제는 81개, 환급액 규모만 약 5000억원에 달한다.
안 교수는 위험분담제 확대에 앞서 한국의 약가가 이미 글로벌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약품 국제참조가격제(IRP) 체계에서 한국이 2013년 사우디아라비아, 2019년 캐나다 등의 공식 참조국으로 편입됐고, 중국 역시 한국 약가를 최저가 기준으로 삼았다”며 “문제는 이들 국가가 참조하는 한국의 약가가 실제 거래가가 아닌 ‘명목가’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명목가와 실제 거래가가 따로 존재하는 ‘이중약가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한국은 단일가에 가깝다. 명목가란 의약품에 공식적으로 고시된 약가다. 반면 실제 거래가는 병원이나 약국이 제약사와 실제로 체결해 지불하는 가격을 말한다. 실제 거래가는 대부분 각종 할인, 환급, 리베이트 등이 반영돼 명목가보다 낮게 책정된다.
한국에서 이 이중약가제를 구현하는 핵심 제도가 바로 위험분담제다. RSA 계약을 통해 공식 약가는 높게 유지하면서, 제약사가 약 값의 일부를 환급해 정부의 실제 부담(실제 거래가)은 낮출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위험분담제가 일부 고가 신약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돼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의 한국 의약품 가격을 단일가 그대로 참조하게 된다. 이는 높은 가격을 받고 싶은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 신약의 국내 도입을 꺼리게 만드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안 교수는 “우리가 참조하는 선진국들의 약가 역시 실제 거래가가 아닌 명목가”라며 “우리만 단일가를 고집하면 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하고, 결국 환자의 신약 접근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안 교수는 최혜국 대우 약가제(MFN)와 같은 통상 압박을 언급하며 “RSA 확대로 국내 수출 의약품도 이중약가 체계로 운영된다면 미국 진출시 불리한 조건을 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업계와 정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최인하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전무는 “경직된 약가 제도로는 글로벌 신약의 90% 이상을 의존하는 국내 상황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단기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해법으로 RSA 확대를 꼽았다.
강희성 대웅제약 실장도 “수출 전략을 위해 이중약가제는 국내 제약사에게도 필수적”이라며 “혁신형 제약 기업에 한정된 환급형 제도의 대상을 넓혀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제도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김현숙 보건복지부 보험약제 과장은 “환자 접근성 강화라는 대원칙에 공감하며, 너무 투명해서 불리해진 현행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투명성, 행정 부담, 사후 관리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계, 환자, 산업계와 긴밀한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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