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무렵 처음 VR이라는 매체에 접한 김경국 감독은 곧장 이 세계에 몰입했다. 기술이 막 태동하던 시기였던 만큼 어떤 콘텐츠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매일같이 고민하며 미국의 여러 VR 스타트업을 거치며 경험을 쌓았다. 현장에서 제작을 배우고 실험적인 콘텐츠를 직접 만들던 그는 2019년 어메이즈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음악 분야 VR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VR 콘서트 첫 작업은 미국 아티스트 메간 디 스탤리온(Megan Thee Stallion)이었고, 예상보다 큰 호응을 얻으며 ‘이 장르에서 진짜 킬러 콘텐츠는 K-POP’이라는 확신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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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하이퍼포커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VR 콘서트에 이어 최근 ‘엔하이픈 VR 콘서트: 이머전’의 메가폰을 잡으며 자신만의 연출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엔하이픈 VR 콘서트 : 이머전’(ENHYPEN VR CONCERT : IMMERSION)은 거대한 사무실, 폐공장, 루프탑 등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무대를 배경으로, 눈앞에서 멤버들과 마주하는 신개념 공연이다.
‘바이트 미’(Bite Me), ‘XO’(Only If You Say Yes)’, ‘하이웨이 1009’(Highway 1009) 등 총 8곡의 무대가 준비됐다.
어메이즈의 12K 실사 촬영과 언리얼 엔진 기반 VFX, AI 슈퍼 레졸루션 기술은 무대 위 멤버의 시선과 호흡까지 또렷하게 구현하며 현장의 생생함을 살렸다. 이 기술적 완성도는 결국 팬들이 직접 체감하는 ‘거리감’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 나아가 단순한 관람에서 팬과 아티스트가 교감하는 장으로 진화했다.
“저희가 제일 메인으로 내세우는 강점은 일반 콘서트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압도적인 가까운 거리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몇몇 분들은 거의 음악방송 무대에 카메라 감독이 된 기분이라고도 말씀하시더라고요. 영상이나 뮤직비디오에서도 카메라를 보면서 나를 본다는 느낌이 있지만, 실제로 VR을 끼고 입체감 속에서 보는 건 전혀 다릅니다. 실제로 내 앞에서 아이컨택을 해주는 것 같은 순간을 주는 게 가장 큰 강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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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VR 콘서트는 단순한 무대 전환을 넘어, 엔하이픈의 뱀파이어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곡의 분위기와 서사를 시각적으로 풀어냈다. 현실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VR 특유의 연출은 세계관과 결합해 더욱 극적인 장면을 완성했고, 이러한 시도는 무대 전반에 깊게 스며들었다.
“엔하이픈 세계관 자체가 뱀파이어가 있다 보니 초반부터 약간 미스터리한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시작해 파괴되는 효과와 함께 폐공장으로 넘어가고, 루프탑에서는 팬들이 익숙한 달의 오브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어요. ‘XO’ 같은 사랑스러운 곡에서는 핑크 문을, ‘바이트 미’에서는 밤하늘 레드 문을 띄워 상징성을 담았습니다.”
엔하이픈 VR 콘서트는 각 곡의 무대가 단절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이어지도록 다양한 연결 장면을 배치했다. 단순히 배경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직접 이동하거나 공간을 통과하는 듯한 체험을 주는 장치들이 곳곳에 담겼다.
“하늘을 나는 장면은 팬들이 멤버를 보고 있으면 하늘나라 가는 기분이라고 말씀하시는 데서 착안했습니다. VR에서는 실제로 내가 직접 날아가는 듯한 체험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꼭 넣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서비스 컷이 아니라 VR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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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VR 콘서트에서 퍼포먼스만이 아니라 멤버들의 표정과 시선을 어떻게 담아낼지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대 위의 완벽한 동작보다 카메라와 교감하며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야말로 팬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에는 멤버들에게 완벽한 퍼포먼스보다 카메라와의 교감을 더 중시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래서 멋있는 순간뿐 아니라 사랑스럽거나 장난스러운 모습도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팬들 입장에서는 멤버가 나만 바라보는 듯한 경험을 주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김 감독은 멤버들 역시 완성본을 보고 가까움의 강도를 실감했다고 했다.
“완성본을 본 멤버들은 생각보다 너무 가까워서 놀랐다고 하더군요. (양)정원 씨는 헤드셋을 벗기도 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눈앞에 있으니까 기분이 오묘하다고 표현하더라고요. 멤버들 역시 가까움이 제일 임팩트 있다고 느낀 것 같습니다.”
그는 전작인 VR 콘서트 영화와 비교했을 때, 이번 작품에서는 더 실험적인 시도를 담았다고 말했다. 단순 퍼포먼스를 넘어 이미지 컷과 스토리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연출의 폭을 넓힌 것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VR 콘서트와 비교했을 때, 엔하이픈에서는 이미지 컷을 더 많이 넣으려 했습니다. 복도나 벽을 파괴하고 걸어 나오는 장면 같은 건 이전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입니다. 앞으로는 퍼포먼스뿐 아니라 VR 콘서트의 스토리라인을 더 강하게 담아내고 싶어요.”
일반 영화 제작에 비하면 짧지만, VR 콘서트 특성상 촬영부터 후반 작업까지 완벽한 준비가 필요했다.
“촬영은 이틀 동안 진행했고 후반 작업은 두 달 반 정도 걸렸습니다. VR 카메라는 줌이 안 되기 때문에 모든 동선을 미리 계획해야 했습니다. 컷을 최소화하고 원테이크처럼 연결해 영상이 아닌 체험처럼 느끼게 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그는 VR 콘서트의 다음 단계를 고민하고 있다. 완성도를 높이는 수준을 넘어, 앞으로는 관객이 무대와 더 깊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앞으로는 하드웨어 성능이 발전하면 더 적극적인 실시간 상호작용을 넣고 싶어요. 멤버가 날린 하트 풍선을 팬이 실제로 받아칠 수 있는 순간 같은 것들이죠. 아이디어는 이미 많이 쌓아두고 있습니다.”
김 감독은 VR 콘서트가 극장에서 즐기는 새로운 공연 문화로 자리 잡기를 기대했다.
“극장에서 즐기는 VR 콘서트는 온라인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큰 화면과 서라운드 사운드 속에서 다른 팬들과 함께 보면 몰입감이 배가됩니다. 엔하이픈 팬이 아니더라도 한 번 보면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여섯 편 이상을 준비 중이예요. 엔하이픈은 세계관과 곡이 풍부한 만큼 속편이 나올 수 있도록 소속사와 협의해 나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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