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넘어 한일 합작, 동아시아 콘텐츠 지형 다시 짠다 [J무비 전성시대③]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12.11 11:18  수정 2025.12.11 11:18

2000년대 일본 드라마의 활발한 수입과 2010년 중후반부터 한국 드라마의 일본 리메이크를 통해 양국 콘텐츠의 로컬화 흐름이 이어져왔다. 최근에는 이 현상이 단순한 라이선스 거래를 넘어 본격적인 합작 흐름으로 진화하며 동아시아 콘텐츠 주도권을 둘러싼 한·일 양국의 전략적 교차점을 형성 중이다. 이러한 협업의 배경에는 OTT 플랫폼의 등장이 있으며, 이는 지리적·문화적 장벽을 낮추고 양국의 강점을 결합할 수 있는 거대한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은 방대한 원작·만화·소설·드라마 IP를 보유한 ‘원천 스토리의 나라’이고, 한국은 그 원작을 영상화하고 글로벌 기준으로 리패키징해내는 ‘제작력의 나라’라는 점에서 양국은 상호 보완적 구조를 지닌다. 글로벌 OTT는 이 두 축이 만날 수 있는 산업적 인프라가 되고, 이는 기존의 ‘수입–리메이크’ 단계를 넘어 ‘시스템 공동 제작’ 단계로 이동하는 계기가 됐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최근 등장한 합작 사례만 살펴봐도 흐름은 더욱 선명하다. 쿠팡플레이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한국 블라드스튜디오·에이피브이가 일본 제작사와 함께 만든 공동 프로젝트로, 한국의 이세영과 일본 배우 사카구치 켄타로가 각각 주연을 맡았다. 넷플릭스에서는 일본 감독 쓰키카와 쇼와 한국 작가 김지현, 한국 제작사 용필름이 결합한 ‘로맨틱 어나니머스’, 일본의 하시즈메 슌키 감독과 지티스트가 함께한 ‘소울메이트’, 손석구와 나가야마 에이타가 이끄는 ‘로드’가 제작되며 양국 협업 구조가 제작 전반으로 확장됐다. 디즈니플러스는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하고 일본의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연출한 ‘커넥트’를 선보인 바 있으며 지창욱·이마다 미오가 주연을 맡은 ‘메리 베리 러브’까지 한일 합작 라인업을 확정했다.


리메이크 영역에서도 협업은 점점 다층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OTT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합작 흐름이 먼저 본격화됐는데, 아마존 프라임비디오에서 전 세계로 서비스된 일본판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한국 원작을 일본 정서에 맞게 재해석한 10부작으로, 한국의 안길호 감독이 직접 연출을 맡고 일본 극본가 오오시마 사토미가 각색을 담당해 양국 제작 시스템의 결합을 실질적으로 구현한 사례로 꼽힌다.


스튜디오드래곤과 일본 TBS가 협력한 ‘하츠코이 도그즈’, SLL과 TV아사히가 공동 제작한 ‘마물’은 지상파·민방 네트워크를 통해 제작·편성되는 형태로, 양국 방송사가 자사 드라마 공급망을 확장하기 위해 선택한 협업 모델에 가깝다. 일본 현지에서 방송한 후 OTT를 통해 스트리밍 됐으며 한국 JTBC2에 편성돼 한국 시청자들도 만났다.


SLL 박준서 제작부문대표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제작한 콘텐츠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를 만나는 것은 아시아 콘텐츠의 경쟁력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최근 제작비 상승과 아이디어 고갈 등으로 한 국가, 한 제작사가 단독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국가 간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제로 부상했다는 진단도 이어진다.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합작이 가속화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과 일본은 이미 서사 역량과 제작 인프라가 검증된 국가들로, 할리우드 대비 30~40% 수준의 제작비로 글로벌 시청자가 납득할 품질을 구현해낸다는 점에서 투자 효율이 매우 높다.


한국 드라마와 일본 애니메이션이 북미·유럽에서 팬층을 확고히 형성한 몇 안 되는 비영어권 콘텐츠라는 점 또한 한·일 합작 프로젝트의 확장 가능성을 더욱 강하게 뒷받침한다. 차원에서 머물지 않는다. 글로벌 OTT의 안정적 투자 구조와 양국이 쌓아온 신뢰가 기반이 되면서, 제작 시스템과 인력 교류가 일상화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향후 합작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제작사가 일본 현지의 제작 방식과 파트너십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그 구조 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메이저 스튜디오들과의 안정적인 협업 라인을 구축하고, 기획·개발·촬영·후반으로 이어지는 제작 전 과정을 하나의 체계로 엮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다음 단계의 한·일 공동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프로젝트 단위 협업을 넘어서, 제작 과정이 양국 시스템 사이에서 원활히 이어질 때 한일 합작이 산업 생태계의 돌파구이자 새로운 축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