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만에 산업부 떠나는 ‘에너지’
환경부 편입에 우려와 기대 엇갈려
규제 중심 정책이 경제 발목 잡거나
에너지 카르텔에 환경 정책 흔들릴 수도
쳇GPT로 만든 '기후에너지환경부' 가상 현판 이미지. ⓒ쳇GPT
힘겨루기 끝에 ‘에너지’가 환경부 품에 안겼다. 환경부로서는 기후가 따로 떨어져 나가는 최악의 상황도 예상했는데, 결과는 아니었다. 다만 남은 과제가 적지 않다. 특히 풀어야 할 과제 하나하나가 난제(難題)들이다. 이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환경부 본연의 기능마저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정부는 고위당정협의회를 거쳐 정부 조직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환경부는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에너지 부문을 넘겨받게 됐다. ‘기후에너지환경부’라는 이름 아래 차관 자리가 하나 더 생긴다. 에너지 부문 공공기관도 앞으로 환경부 손아래 두게 됐다.
이번 조직개편에서 환경부는 고유 업무인 ‘기후’ 영역이 떨어져 나갈 위기를 겪었다. 애초 이재명 대통령 대선 공약에서는 환경부의 기후 정책과 산업부 에너지 정책을 각각 떼어내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하려 했기 때문이다. 기후가 환경부에서 빠져나갔다면 환경부는 사실상 중앙부처로서의 역량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환경부는 ‘기후’를 지켰다. 나아가 에너지라는 거대 산업 영역까지 맡게 됐다.
앞으로 기후에너지환경부 업무 조율이 어떤 모습으로 이뤄질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현재 상황에서 예상되는 걱정은 크게 셋이다. 이들 중 하나라도 현실이 되면 환경과 에너지의 공생 관계는 실패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국제 무대에서의 에너지, 환경부 역량 물음표
지금까지 에너지는 경제·산업 가치로만 다뤄왔다. 1993년 상공부와 동력자원부가 합쳐진 이후 32년 동안 에너지 정책은 ‘산업부’ 안에 존재했다. 단순히 존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에너지 정책과 전력시장, 재생에너지까지 포괄하는 산업부의 핵심 조직을 맡아왔다.
이런 에너지가 32년 만에 규제 부서인 환경부로 넘어왔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규제 부서인 환경부가 과연 에너지 산업에 대한 이해와 기술개발 역량이 있는지 의구심을 갖는다. 특히 에너지는 국제 무대에서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전문성과 네트워킹에서 산업부만큼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심한다.
이 대목이 첫 번째 해결해야 할 과제다. 에너지는 최근 보호무역이 강화되는 국가 간 경쟁 흐름에서 국가 안보 산업으로서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 환경부가 ‘온실가스’에만 매몰돼 에너지를 규제 대상으로만 볼 경우 대내외 경제에 직접 타격을 줄 수 있다.
에너지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기후 위기 대응에 정책 힘이 쏠리면 상대적으로 에너지 수급, 국내외 자원 개발 등 ‘에너지 안보’ 고려가 약화할 수 있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게 사실이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환경부 주요 기능은 기후변화 대응, 환경 보존을 위해 기업과 다른 부처 정책을 규제·통제하는 것”이라며 “이런 부처에 에너지 산업 육성 기능을 추가하는 것은 물과 기름을 섞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환경부가 감당해야 할 ‘에너지 파워’
다음 과제는 에너지 산업이 갖는 거대한 힘을 과연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느냐다. 정부는 현재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전국 산업 거점에 공급하기 위한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해당 사업을 직접 개발하면서 동시에 환경 영향성을 평가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개발 사업에 치우치면 환경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지나치게 환경성을 쫓다 보면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이라는 국가 중대 사업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모순된 결정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지막 과제는 에너지 분야(산업)의 거대 경제력에서 환경부가 자유로울 수 있느냐다. 산업부 내 에너지 부문은 공기업만 17개를 가질 만큼 막강한 힘과 규모를 갖고 있다.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이 전체 11개뿐인 것과 비교된다.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이 주로 생물자원 연구나 환경 규제·감시 역할을 하는 것과 달리 에너지 공기업들은 말 그대로 경제를 주무르는 곳들이다. 경제를 주무른다는 것은 에너지 정책이 그만큼 민생과 직결한다는 뜻이다. 달리 설명하면 환경·에너지 정책 수립 과정에 에너지 관련 기관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환경부 산하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환경부 산하 기관들이랑 산업부 에너지 관련 공기업들은 성격 자체가 완전히 다른 곳이라 우리도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만들어질지 예상하기 어렵다”면서도 “지금은 에너지가 환경부 밑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에너지 목소리가 환경 정책을 흔들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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