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하다면 수사·재판에 당당해야
“이보다 더 위선적인 장면 또 있을까”
3류 내각으로 전락 안 되게 하려면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신임 5급 공무원들을 상대로 한 특강에서 ‘돈은 마귀’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절대 마귀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가장 아름다운 천사, 친구, 친척, 애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라고 말을 이었다. 부정한 돈에 대한 욕심을 경계한 말이겠으나 돈을 악마화한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돈이라는 마귀가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말도 어색하다. 돈이 마귀라면 ‘나’를 유혹할 때도 마귀의 모습을 한다. 다만 욕심이 두려움을 눌러버리기 때문에 부정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마귀인 줄을 알지만, 감시의 눈이 자기만은 피해 갈 것이라는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 버린다. 그래서 생겨나는 게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다.
떳떳하다면 수사·재판에 당당해야
자신의 청렴성을 역설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꺼냈으리라 짐작이 된다. 최영 장군의 부친이 아들에게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하라”는 유훈을 남겼을 때의 그 심정이었을까? 아마도 동기가 전혀 달랐을 것이다. 자신의 억울함을 국민이 알아주길 바라서가 아니었을까?
자신이 ‘온갖 음해와 공격’을 받았다거나 ‘치열하게 삶을 관리’했다는 말은 좀 낯간지럽다. 그런 말을 한 바람에 ‘대통령의 특강’이 아니라 수하 사람들을 모아놓고 주입한 ‘변명’이라는 느낌을 주고 말았다. 만만한 사람들을 상대로 혐의를 전적으로 부인했을 뿐 아니라 수사 및 기소 검사들,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사람들과 비판자 모두를 악마화한 셈이 됐다.
치열하게 삶을 관리해왔는데도 그렇게 많은 혐의를 받았다는 것은 정말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검찰은 한 사람의 정직하고 청렴한 공직자에게 죄를 덮어씌워 몰락시키려는 따위의 무도한 짓이나 일삼는 검사들과 수사관들로 구성된 국가기관이라는 뜻인가? 그런 기관이 1949년(동 12월 20일 검찰청법 제정)부터 지금까지 민주 법치주의 수호의 책무와 역할을 맡아왔다는 것인가?
‘치열한 자기관리’를 스스로 확신했다면 자신에 대한 수사에 왜 그처럼 회피적이고 대결적인 자세로 일관했을까? 대통령에 당선되기 무섭게, 계획됐던 재판 일정이 줄줄이 무기한 연기된 까닭에 대해서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이 따라야 옳다. 형사 범죄 혐의는 자신의 주장만으로 지워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일방적인 자기 결백 선언으로 대중의 인식 전환을 요구할 수는 없다. 자기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자신이다.
‘돈=마귀’론은 이때 처음 한 게 아니다. 지난 2021년 9월 30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토론에서도 당시 이 후보가 했던 말이다.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과 관련해서 “나는 돈이 마귀라고 했는데”라며 민관합작사업의 특성을 설명했다.
“이보다 더 위선적인 장면 또 있을까”
사업 허가권자인 성남시장이 투기 세력·마귀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민간사업자와 합작했다는 것이 도무지 무슨 말인지 그때나 지금이나 의아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어쨌든 이런 의혹도, 다른 혐의들과 함께,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에는 봉인(封印)된다. 그 후에는? 그 대책도 정권 차원에서 세울 것이라고 보는 게 무난한 예상이겠다.
이러니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보다 더 위선적인 장면이 또 있을까. 기가 막힐 일”이라고 비판하고 나서지 않았겠는가. 그는 같은 날 페이스북에 이런 글도 올렸다.
지금 진행 중인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에 대해서도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지난 정부 때 인사청문회나 대정부 질문을 통해 모질고 험한 말을 쏟아내던 민주당 의원들이 이번에는 후보자들을 감싸기에 바쁜 모습을 보인다. “(후보자) 전원 낙마 없다”라는 이들의 큰소리는 “어떤 경우에도 다 임명될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이 대통령이 청문회 내용 여하간에 후보자 모두를 임명할 것이라는 예고나 마찬가지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보좌진에 대한 심한 갑질 의혹을 받고 있다. 14일 청문회에서는 △사직(辭職) 보좌관의 다른 의원실 취업을 방해했다, △보좌진에게 쓰레기를 버리게 했다, △보좌진에게 변기 수리를 시켰다, △임금 체불로 두 차례 진정을 받은 적이 있다는 등의 의혹에 대한 국민의힘 측 청문위원들의 추궁이 있었다. 민주당 측은 ‘비교적 충분히’(표현의 궁색함이라니!) 해명됐다는 입장이라고 알려졌다.
그런데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15일 ‘공사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강 후보의 사퇴를 촉구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한국여성단체연합’도 이날 ‘강 후보자는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직장갑질119’ 역시 임명을 반대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3류 내각으로 전락 안 되게 하려면
특히 보좌진 등 1450여 명이 속한 SNS 익명 단체 대화방에서 강 후보자 거취와 관련, 11일부터 사흘간 투표를 벌인 결과, 518명(투표자의 92.7%)이 낙마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41명(7.3%)이 반대 의견을 냈고, 나머지 881명은 투표하지 않았다고 언론들이 보도했다.
강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에게 “존경하는 위원님”이라고 했다가 “저를 존경하지 말고 보좌관을 존중하라”라는 핀잔을 들었다. 그는 지난 2022년 11월 15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당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이태원 참사와 관련) 법적인 책임을 어떻게든 회피하고자 발악을 하고 있다”라고 몰아세웠다가 결국 유감을 표한 바가 있었다. 말이나 행동이나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마련이다.
이진숙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청문회는 오늘 열린다. 그는 △제자 논문 표절, △논문 중복 게재, △자녀 조기 미국 유학 등의 문제로 야당뿐만 아니라 학계로부터도 지탄을 받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까지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을 정도다. 그 전날에는 전국 교수단체와 학술단체 11곳 연합체인 ‘범학계 국민검증단’이, 이 후보자 논문 150개를 검증한 결과 16개에서 연구 윤리 위반 문제가 발견됐고, “김건희 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논문 표절이 심각하다”며 지명 철회나 본인의 사퇴를 촉구했다.
다른 많은 후보도 이런저런 의혹 또는 하자를 주렁주렁 달고 청문회를 거쳤거나 대기하고 있다. 보수정권의 ‘인사 난맥상’을 모질고 기세 좋게 질타하던 민주당 아닌가. 새 정부 각료 후보들의 청렴성·도덕성·정직성 결여 논란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이 대통령이 자신의 입장 때문에라도 자질·자격 미달의 후보자들을 감싸 안으려 할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첫인사부터 기준을 분명히 하지 못하면 정부는 부적격자들의 전비(前非) 세탁소, 경력 충전소가 되고 만다. 3류 내각으로 전락시키지 않을 책임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진다. 자신이 넘쳐 세평을 귓등으로 흘려버릴 수도 있지만 훗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자신의 몫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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