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 또다시 충격을 주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07.12 07:07  수정 2025.07.12 07:07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컷. ⓒ /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신드롬이 우리에게 또다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그동안 한국 보이그룹이 세계 최고 스타가 되고, 한국 걸그룹이 세계 최고 걸그룹이 되고, 한국 작품이 미국 대중문화 시상식을 휩쓰는 등 대형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많은 이들이 놀랐다.


한국 콘텐츠 인기와 더불어 한국을 뜻하는 ‘케이’ 자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한국어, 한국 음식 등 한국 문화 전반이 인기를 끈다는 소식도 놀라움을 안겨줬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이젠 ‘케이’의 위력을 거의 다 인식했다고 느꼈었는데 그게 오산이었다는 것을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알려줬다. 알고 보니 케이 신드롬은 우리가 알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폭풍이었다.


이렇게 한류의 현주소를 새삼 일깨워준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 작품이 아니다. 소니픽쳐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하고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애니메이션이다. 소니픽쳐스 애니메이션은 일본 자본이 소유했지만 미국에서 활동하는 헐리우드 제작사다.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으로 아카데미상도 받은 곳이다. 넷플릭스도 미국 플랫폼이니 이 작품은 완전한 헐리웃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제목에 ‘케이팝’이 들어간다. 작정하고 한국을, 케이팝을 내세웠다는 이야기다. 한국계 캐나다인인 메기 강 공동감독이 한국문화를 알리고 싶어서 구상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 ‘기생충’ 같은 영화에서 나타나는 어두운 분위기를 살려서 악령 퇴치물로 방향을 잡았는데 거기에 케이팝을 접목해 케이팝 걸그룹이 악령을 퇴치한다는 내용으로 완성됐다.


그 과정에서 한국적인 요소들이 양념 정도로 들어간 것이 아닌, 작품의 모든 부분을 관통하는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극중 헌터 걸그룹 헌트릭스가 공연 직전에 라면을 먹는데 그 라면엔 ‘신’자가 써있고 제조사는 ‘동심’이다. 새우깡처럼 생긴 과자도 등장하고, 그밖에 온갖 한국적 요소들이 나온다. 심지어 미국 작품인데 한글이나 한국어가 군데군데 번역 없이 등장할 정도다.


캐릭터 디자인 때부터 한국의 민화, 한복, 아이돌 복장을 모두 참고했고 영어를 말하는 입모양 묘사도 한국식 발음을 신경 썼다고 한다. 극중 삽입곡도 전형적인 헐리우드 뮤지컬곡 같은 느낌으로 제시하면 감독이 퇴짜를 놓으면서 철저히 케이팝 스타일로 만들도록 했다. 메기 강 감독은 “이 영화는 케이팝과 한국 문화에 바치는 러브레터다”라고 말했다.


이 작품에서 놀라운 대목은 바론 그런 ‘케이팝과 한국 문화에 바치는 러브레터’가 헐리우드 스튜디오의 기획안으로 통과됐다는 점이다. 헐리우드 대형 스튜디오는 고도로 조직화된 곳이다. 대형 스타도 아닌 어느 개인의 감으로 제작 결정을 하지 않는다. 기획안 검토 단계에서 철저히 시장 조사를 하고 흥행성이 확인된 아이템만 제작투자를 결정한다.


바로 그래서 사람들이 뻔하게 느끼는 온갖 시리즈물, 각색물들이 범람하는 것이다. 그런 작품들은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흥행가능성도 높다고 봐서 스튜디오가 쉽게 제작에 들어간다. 반면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처럼 오리지널 창작 시나리오에 스타 감독도 없고, 스타 목소리 배우 캐스팅도 없는 기획안은 통과되기 어렵다. 심지어 내용도 보편적인 미국 팝문화가 아닌 한국 가요 이야기여서 더더욱 제작투자 결정이 어려운 작품이다.


이런 기획이 통과됐다는 것은 헐리우드 스튜디오가 보기에 한류와 한국 문화의 인기가 충분히 보편적이라고 판단됐다는 뜻이다. 그렇게 판단해서 제작은 했지만 소니픽쳐스 측에선 막상 시장에 공개하려니 불안했던 것 같다. 넷플릭스가 판권을 인수하겠다고 하자 그대로 팔아버렸다. 스튜디오 입장에선 생소한 시도에 불안한 게 당연하다.


결국 ‘케이’의 힘을 믿은 넷플릭스가 대박을 맞았다.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속편을 내놓으라는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이 영화와 주제곡이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받을 가능성도 매우 높아졌다.


앞에서 이 작품이 한류의 현주소에 대해 새삼 일깨워줬다고 했다. 케이팝 등 완전히 한국적인 요소들만 내세워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도 세계적 히트가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시켜줬기 때문이다. 한류는 우리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해외 진출용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는 보통 한국적인 요소를 배제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좀 더 보편적인 코드나 서구적인 코드를 표현하려 애썼다. 하지만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그 반대 방향으로 가 국제적 성공을 이뤄냈다. 우리가 참고할 대목이다. 이 작품이 조선 민화를 모티브로 호랑이 캐릭터를 만들어 사랑 받는데, 왜 우리가 그런 걸 먼저 하지 못했는지 원통하기만 하다. 앞으론 좀 더 자신감을 갖고 한국적 특성을 드러내도 좋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은 우리가 미국, 일본에 비해 많이 뒤쳐지는 게 현실이다. 아무리 한류라는 좋은 소재가 있어도 우리에게 제작능력이 없으면 그 소재를 활용할 방법이 없다. 이번처럼 한류 소재로 해외 제작사가 대박 맞는 모습을 구경만 해야 한다. 우리 제작역량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도록 애니메이션 산업에 지원이 필요하다.


이미 드라마, 웹툰, 노래 등을 모두 잘 만드는 한국인이 특별히 애니메이션에만 소질이 없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애니메이션 부문도 지원만 있다면 충분히 국제적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제2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작품이 ‘케이’ 자본과 ‘케이’ 제작시스템에 의해 나오면 좋겠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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