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산업, 정치권·주주 반발 속 3186억 EB...강행의 끝은?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5.07.01 15:30  수정 2025.07.01 16:40

자사주 활용 막차 논란...“생존 위한 자금 조달” 강조

2대주주 트러스톤 이사회 상대 위법행위 중지 소송

정치권 “주주 무시 경영” 비판...금융당국 발행 ‘제동’

태광산업 본사 전경.ⓒ연합뉴스

정부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와 상법 개정 추진을 앞두고 태광산업이 자사주 전량을 교환사채(EB)로 발행하기로 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회사는 외부 자금 조달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서는 정부 규제를 피하려는 ‘막차 타기’란 비판이 제기된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대규모 투자 계획을 공개하며 정면 돌파에 나섰으나 주주와 정치권, 금융당국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태광산업은 지난달 27일 자사주 24.41% 전량을 기초자산으로 한 3186억원 규모의 EB 발행을 결정했다. EB는 자사주를 담보로 투자자에게 일정 기간 내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채권이다. 시장에선 교환권이 행사되면 3자 배정 유상증자와 유사한 효과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발행 발표 이후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이날 태광산업은 하루 만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놨다. 화장품과 에너지, 부동산 개발 등 신사업에 향후 2년간 1조50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이 중 1조원은 올해 안에 집행할 계획이다.


정부는 현재 상장사 자사주 소각 의무화와 상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을 담은 개정안을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방침이다. 국민의힘도 반대 입장에서 선회해 개정안 검토에 들어갔다. 자사주 소각 조항은 이번 개정안에는 빠졌지만 하반기 별도 논의될 예정이다.


태광산업은 자사주 보유 비중이 높고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대표적인 저평가 종목이다. 이날 기준 PBR은 0.21배로 코스피 평균 1.03배에 크게 못 미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PBR이 0.3배 미만인 기업은 청산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에 자사주 소각 기대감이 커지면서 태광산업 주가는 지난 5일 종가 기준 100만원을 넘기며 약 3년 만에 ‘황제주’ 지위를 회복했다. 하지만 EB 발행 발표에 따른 충격으로 주가는 전날 11.24% 급락했다. 이날 투자 계획 발표와 반발 매수세로 다시 10만원선을 회복했지만 변동성이 커진 상황이다.


태광산업은 생존을 위한 자금 확보가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석유화학과 섬유 업황 침체로 2022년 매출은 2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2조1000억원으로 줄었고 영업손익은 3년 연속 적자다. 5월 말 기준 보유한 현금성 자금은 1조9000억원이지만 기존 사업 유지와 예비운영자금, 인력 재배치 등을 제외하면 실제 투자 여력은 1조원에 못 미친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태광산업 울산공장 전경.ⓒ태광산업

그러나 자금 조달 방식에 대한 비판은 확산되고 있다. 태광산업의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전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EB 발행 결의 효력 정지를 요청하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트러스톤은 거래 상대방과 발행 조건을 확정하지 않은 채 이사회가 결의한 것은 상법 위반이며, 주당 순자산가치의 4분의 1 가격에 자사주를 처분하는 것은 배임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트러스톤은 태광그룹이 2022년 말 발표한 10년간 12조원 투자와 7000명 고용 계획도 거의 실현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해당 발표 이후 2023년 이호진 전 회장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되자 일각에서는 ‘복권 명분 쌓기를 위한 발표 아니었느냐’는 해석도 제기됐다. 이 전 회장은 2011년 횡령과 배임 혐의로 구속된 뒤 경영에 복귀하지 않았지만 이번 신사업 추진이 복귀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치권도 비판에 가세했다. 최은석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태광산업의 EB 발행 결정은 명백한 주주가치 훼손이며, 대주주 지배력 강화를 위한 꼼수”라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 강행 사례와 함께 일부 대기업의 ‘주주 무시 경영’이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융당국도 제동을 걸었다. 금융감독원은 이날 태광산업의 자기주식 처분과 EB 발행 관련 공시에 대해 ‘중요사항 누락’을 이유로 정정명령을 내렸다. 금감원은 두 공시 모두 처분 및 발행 상대방에 대해 정확히 명시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태광산업은 이번 EB를 사모 방식으로 발행했고 아직 인수자를 공개하지 않은 상황이다.


시민단체들도 움직이고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이날 태광산업과 롯데렌탈, 파마리서치를 ‘원스트라이크 아웃’ 적용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 대통령은 주가조작 등 불공정 거래에 대해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 도입을 공언한 바 있다. 경제개혁연대도 태광산업이 자사주를 우호주주 확보 수단으로 활용하려 한다며 EB 발행 철회를 요구했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 차원에서 경영상 판단을 한 것”이라며 “내부적으로 계획된 투자 일정에 맞춰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그 방식으로 EB 발행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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