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기업은 '아이돌'이 아닙니다 [기자수첩-ICT]

이소영 기자 (sy@dailian.co.kr)

입력 2025.06.27 07:00  수정 2025.06.27 07:00

팬덤이 된 주주, 아이돌이 된 바이오 기업

기대감 기댄 바이오 산업 투자 현황

건전한 비판이 기업 가치 상승의 기반

ⓒ게티이미지뱅크


“기자가 공매도 세력이랑 결탁했다.”

“A 기업에 악의적 기사를 쓰는 B 기자를 잊지 않겠다.”


제약·바이오 산업 기사를 보다 보면 심심찮게 눈에 띄는 댓글이다. 제약·바이오 기업의 허점 혹은 리스크를 거론하면 소위 ‘좌표’가 찍힌 듯 이런 류의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최근 한 바이오 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지적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판관비 폭증에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에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댓글 창에서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기자가 무식하다” “얼마 받고 썼냐”는 등의 비난이 가득했다.


이는 한 가지 사실을 대변한다. 제약·바이오 기업에 투자한 일부 주주들에게 기업이 더 이상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믿음’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아이돌 산업의 ‘내 새끼’ 문화와도 닮아 있다.


긍정적인 소식은 열광적으로 반영하며 공유하지만 기업의 잠재적 리스크를 지적하는 분석에는 ‘주가 하락을 노리는 세력’으로 치부하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 낸다. 이 과정에서 합리적 분석은 힘을 잃는다.


K-제약, K-바이오 산업에 자리 잡은 팬덤과도 같은 문화는 기업의 건전한 성장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주주가 기업의 기초 체력이 아닌 오직 신약 성공이라는 일확천금의 꿈만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PER(주가수익비율)은 계속된 적자로 산출조차 되지 않고 PBR(주가순자산비율)은 수십배에 달하는 고평가 상태에도 “신약만 성공하면 모든게 해결된다”는 기대감 앞에서는 위험 신호가 무시된다.


물론, 신약 개발은 본질적으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사업이다. 오랜 적자 속에서도 단 하나의 신약 성공으로 인해 모든 판세가 뒤집히는 것이 바이오 투자의 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리스크에 대한 냉정한 분석 없는 투자는 하이 리턴을 노리는 합리적 ‘베팅’이 아닌 ‘도박’이 된다. 대표 발언 한마디에 열광하고, 홍보 자료를 지침처럼 여기는 것은 건강한 투자가 아닌 우상화에 가깝다.


기업은 아이돌이 아니다. 그렇기에 투자자도 팬클럽 회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의 가치는 냉정한 숫자와 데이터, 실현 가능한 비전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가장 보수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해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닌 건전한 의심과 철저한 분석력이다.


언론 또한 정확한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다. 주주들의 기대와 기업이 제시하는 장밋빛 청사진을 전달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 중 하나지만, 동시에 그 뒤에 숨은 그림자까지 비추는 게 언론의 마침표다.


무조건적인 지지는 기업을 단편적인 호재 뒤에 숨게 만들 뿐이다. 기업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 시그널을 공론화하는 것은 무분별한 공격이 아니라 투자자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도록 돕는 안전장치다.


K-제약, K-바이오의 진정한 성장은 열성적인 팬이 아닌 냉철한 투자자가 만들 수 있다. 객관적인 사실은 묻어 두고 “내 새끼는 무조건 맞다”는 마음으로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거두어질 때, 우리의 제약·바이오 산업은 더욱 성숙해지고, 주주들도 ‘한탕주의’가 아닌 건전한 투자 환경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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