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마을이 함께 만든 국가생태관광지 장수
멸종위기종과 자작나무숲의 생태명소
수분마을, 교우촌 유산과 자연이 공존하다
전북 장수군 신무산 자락에 자리한 뜬봉샘은 마르지 않는다. 바위와 흙 사이에서 솟는 맑은 물 한 줄기가 멀리 하굿둑까지 흘러가 거대한 강이 된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 배태랑은 ‘배기자와 함께하는 생태사랑 여행’이다. 매달 환경부에서 지정하는 이달의 생태관광지를 직접 방문한다. 환경부는 자연환경의 특별함을 직접 체험해 자연환경보전에 대한 인식을 증진하기 위해 2024년 3월부터 매달 한 곳을 선정해 소개하고 있다. 전국 생태관광 지역 중 해당 월에 맞는 특색 있는 자연환경을 갖추고, 지역 관광자원 연계 및 생태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지역을 선정한다. 배.태.랑은 전국에 있는 생태자원 현장을 직접 찾아가 생태적 가치와 보존, 그리고 관광이 공존하는 ‘이달의 생태관광’을 직접 조명하고자 이 시리즈를 준비했다. 초보여행자, 가족여행자 눈높이에서 바라본 현장감 있는 시리즈로 풀어 나갈 예정이다. <편집자 주>
금강은 바다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 물줄기는 깊은 산 속,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작은 샘에서 흘러나온다. 전북 장수군 신무산 자락에 자리한 뜬봉샘. 바위와 흙 사이에서 솟는 맑은 물 한 줄기가 멀리 하굿둑까지 흘러가 거대한 강이 된다.
이 샘물이 지나가는 길목엔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이 있다. 이름도 정감 가는 ‘수분마을’. 비가 오면 물길이 갈라져 한쪽은 금강이 되고, 다른 한쪽은 섬진강이 되는 땅.
그 경계 위에 천주교 박해를 피해 모여든 사람들이 100년 넘게 한옥 성당을 지키며 살아왔다. 자연과 신앙, 생태와 마을이 공존하는 삶이 이곳에 있다.
장수군 뜬봉샘과 수분마을은 2024년 11월, 국가생태관광지로 지정됐다. 단순한 자연 명소를 넘어, 생명을 품고 역사를 기억하는 살아 있는 공간. 금강의 첫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계곡의 물소리, 자작나무숲의 향기, 제비의 지저귐,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가 조용히 다가온다.
이달의 생태관광지 장수로 떠나는 여행은 우리를 자연 속에 앉히고 마을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그 길의 시작은 아주 작은 물 한 방울에서 시작된다.
이 작은 옹달샘이 금강의 시작점이다. 땀흘려 찾아간 뜬봉샘을 보고 있으면 신비한 자연의 섭리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금강의 첫물, 신들의 샘을 걷다”
전북 장수군 신무산 자락에 자리한 뜬봉샘은 금강의 첫물이 솟는 발원지다. 옹달샘처럼 아담한 이 샘물은 ‘신들이 춤을 추었다’는 전설을 지닌 신무산 부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발원지 답게 연중 마르지 않는다. 이 샘은 태조 이성계가 100일 기도를 올리던 중 무지개와 봉황을 보았다는 유래로도 알려진다.
금강의 하구 기준으로 가장 먼 발원지이자, 물소리를 따라 오르면 고요한 울림을 전하는 이곳은 2011년 생태공원으로 조성된 이후 멸종위기종인 세뿔투구꽃, 수달, 하늘다람쥐 등이 서식하는 생태의 보고로 자리매김했다.
공원 내 생태통로와 탐방로는 무장애 설계로 조성돼 누구나 자연 속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계절별 테마숲과 쉼터도 곳곳에 있어 초심자도 어렵지 않다. 봄에는 진달래와 개나리가, 여름에는 백합과 산딸나무가 탐방객을 맞이한다.
최근 조성된 뜬봉샘에서 자작나무숲까지 이어지는 1.5km 탐방로는 ‘금강 첫물길’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숲 테라피 프로그램이 병행된다.
뜬봉샘 생태관광지의 또 다른 명소인 자작나무 숲은 여름에도 바람이 시원하다. 남부지방 최대 규모의 자작나무 조림지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이 숲은 남부지방 최대 규모의 자작나무 조림지다. 약 2000주가 빽빽하게 뻗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수종이 자라난 배경에는 기후변화대응형 생태조림 정책이 반영돼 있다. 향후 생물 다양성 연구 자원으로도 주목받는 이유다.
숲속에는 하늘다람쥐 비밀정원이 있다. 이곳은 야생동물 서식 환경을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이다. 자연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탐방이 이뤄진다.
탐방객들은 고요한 숲길을 따라 걷다가 종종 다람쥐 울음소리나 나비 군무를 마주하게 된다. 특히 5~6월에는 뻐꾹나리, 세뿔투구꽃 등 지역 깃대종의 개화기가 맞물려 산책길이 생태 교육장으로 바뀐다.
공원 내 생태교실에서는 어린이 대상 나무세밀화 그리기, 곤충관찰, 쑥개떡 만들기 체험이 이뤄진다. 연간 1000명 이상이 참가한다. 금강사랑물체험관과 연계한 수질정화 이해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고 있다. 교육효과를 높이기 위해 전문가와 지역 주민이 함께 운영 중이다. 지역 초등학교와 협력한 생태리터러시 수업도 시범 도입됐다.
박송자 뜬봉샘 생태관광지 자연환경해설사는 “유아는 느티나무 숲체험, 성인은 강태등골(계곡)에서 물소리를 듣는 사운드스케이프가 인기”라며 “뜬봉샘 생태관광지는 사계절 모두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히 수시프로그램인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해설하는 코스와 마을 생태밥상도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고 소개했다.
이처럼 뜬봉샘 일대는 금강의 발원지라는 상징성을 넘어, 생태관광과 자연 교육의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행정과 민간이 협업하는 지속가능한 생태 시스템의 실험장이기도 하다.
수분마을의 수분공소는 한옥 성당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고즈넉하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물의 분기점, 신앙의 기억을 간직한 수분마을
뜬봉샘 아래 자리한 수분마을은 금강과 섬진강 물줄기가 갈리는 분기점인 수분령에 있다. ‘물뿌랭이 뿌리 마을’이라 불린 이곳은 생태적 의미는 물론, 깊은 역사와 신앙의 흔적을 품고 있다. 이 일대는 충적평야와 아늑한 산자락 사이에 형성된 자연부락이다. 대청댐 건설 당시에도 고지대 일부가 남아 마을의 맥을 이었다.
지난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전국에서 피신한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 정착해 교우촌을 이뤘고, 1913년에 세워진 한옥 성당인 ‘수분공소’는 현재도 미사가 이어지는 살아 있는 종교공간이다.
이 성당은 한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한옥 성당이다. 2005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기와지붕과 한식 창호가 조화를 이루는 고택은 계절마다 주변 풍경과 어우러지며 독특한 정취를 자아낸다.
마을에는 생태와 신앙이 조화롭게 공존한다. 제비가 집을 짓는 처마 아래, 주민들이 돌보는 꽃밭과 밭작물 체험장이 이어져 있다. 마을 주민들은 직접 만든 꿀, 약초차, 사과말랭이 등을 판매한다. 생태관광객들과 소통하는 생태관광지의 롤모델이다.
수분마을은 여느 시골마을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냥 평범한 데이지꽃과 빨간 우체통, 노란 전신주의 조합만으로도 특별하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지로 가꾸고 있다는 것이 마을 전체에서 느껴진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아이들을 위한 자연학습장이 운영되며, 마을 해설사가 동행해 반딧불이, 제비, 야생화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수분마을은 ‘이야기 있는 마을’을 지향하며 계절마다 테마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5월에는 반딧불이 귀환을 주제로 한 탐방로 해설이, 6월에는 자생식물 분류와 자연유산 조사 체험이 운영된다. 마을 공동체는 환경부 지원을 바탕으로 생태관광협의체를 구성해 지속 가능한 관광 모델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지영 장수군 환경과 생태보전팀장은 “2024년 11월에 수분마을과 뜬봉샘 일대가 국가생태관광지로 지정됐다. 이는 금강 상류권역 첫 사례”라며 “자연, 역사, 공동체가 함께 만든 이 성과는 지역이 주도한 보존 정책이 결실을 맺은 상징적 성과로 기록된다”고 말했다.
마을이 지키고 자연이 보답한 생태관광지
장수군은 뜬봉샘과 수분마을을 중심으로 생태관광지역협의체를 운영 중이다. 주민 참여형 관광 프로그램과 생태밥상, 해설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
주민 교육은 환경부 지원으로 이뤄지며, 지역 내 학교, 종교시설, 소규모 사업장이 연계돼 생태 인프라 확장을 돕는다. 매월 1회 이상 모니터링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서식지 변화와 생물종 이동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
장수군 뜬봉샘 생태관광지는 지역 주민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관광을 지향한다. 그래서 더 정감 있고 또 가고 싶은 그런 곳이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또 환경부는 이 지역을 ‘기후변화 대응형 생태관광지’로 발전시키기 위한 중장기 관리계획도 수립 중이다. 생물다양성과 인문 자원을 동시에 품은 복합형 생태여행지로서의 모델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주민과 협치를 기반으로 한 자율운영체계가 구축됐고, 관광 수익 일부는 지역 유지관리기금으로 적립된다.
관광 코스는 ‘금강사랑물체험관 → 뜬봉샘 → 자작나무숲 → 수분마을’ 순서가 좋다. 당일코스 기준 약 3시간 30분~4시간 30분 소요된다. 주차는 금강사랑물체험관에 하면 편리하다. 해당 코스는 장애인 및 고령자 접근성을 고려한 구간과 유모차 가능한 흙길도 포함돼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도 적합하다.
장미선 뜬봉샘 생태관광지 생태관광협의체 사무국장은 “생태관광객 대상 만족도 조사에서 수분마을의 체험 만족도는 92.3%로 나타났다. 이는 전국 평균 대비 높은 수준”이라며 “이처럼 장수군의 뜬봉샘과 수분마을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자연이 주는 혜택을 지역사회가 보전과 환대로 되돌려주는 지속가능한 생태관광지의 모범 사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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