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제작 서비스 오롯플래닛 최인혜 대표 인터뷰
"누구나 당연하게 문화 경험할 수 있는 세상 만들고 싶어"
오롯플래닛 최인혜 대표 ⓒ오롯플래닛
“누군가 공연을 보며 ‘이 공연은 자막 있어요?’라고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오늘의 자막이 내일의 문화를 만듭니다.”
오롯플래닛 최인혜 대표의 말에서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 문화의 포용성을 향한 깊은 열정이 느껴진다. 고등학교 시절, 뮤지컬 매거진 더뮤지컬을 통해 청각 장애인 뮤지컬 극단 ‘Deaf West Broadway’를 접하며 문화 접근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최 대표는, 사회복지 전공과 인액터스 활동을 거쳐 2020년 오롯플래닛을 설립했다.
“누구나 당연하게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비전 아래, 영화나 드라마 등 온라인 콘텐츠를 넘어 공연장이라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실질적인 자막 시스템을 구축하며 문화 인프라를 확장하고 있다.
오롯플래닛의 주력 사업은 문화 접근성 향상을 위한 자막 기반 솔루션에 집중되어 있다. 핵심은 공연장 다국어 자막 서비스 ‘유니스텝’(UNISTEP)이다. 번역·편집부터 기기 제공, 송출 오퍼레이션까지 통합 제공되는 원스톱 솔루션이다.
여기에 연간 800편 이상의 영화 및 OTT 영상물에 효과음, 음악, 화자 정보를 포함한 배리어프리 자막 제작 서비스가 오롯플래닛의 전문성을 더한다. 자체 아카이브와 전문 제작 매뉴얼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고품질 자막을 제공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업 임직원이 참여하는 사회공헌형 자막 봉사 프로젝트는 누적 7400시간 이상의 봉사 시간과 약 900명의 참여자를 기록하며 문화 접근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
특히 ‘유니스텝’은 지금까지 약 15편 이상의 창작 뮤지컬과 대학로 공연에 도입되며 그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사의찬미’ ‘랭보’ ‘천 개의 파랑’ ‘금란방’ ‘여신님이 보고 계셔’ ‘더 픽션’ 등 대사와 감정 전달이 중요한 작품에서 관객의 깊은 몰입을 도왔다. 최 대표는 “공연마다 대본 스타일, 배우, 애드리브가 다르기 때문에 현장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연출과 자막 편집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롯플래닛
최 대표는 공연 업계 관계자와 관객들에게, 자막의 필요성에 대해 “자막은 단순한 정보 전달 도구가 아니라, 감정선과 맥락을 따라가며 공연의 리듬을 읽게 해주는 감상 장치”라며 “지금까지 자막이 없었던 이유는 필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없던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역설한다.
그는 공연 역시 콘텐츠이며, 콘텐츠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청각 장애인, 외국인, 난청을 겪는 노인뿐 아니라 대사를 온전히 이해하고 싶어 하는 관객에게도 자막은 기본값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막이 특정 단체의 선의나 배려로 제공되는 구조를 넘어, 공연의 표준 서비스로 자리 잡아야 비로소 개인의 배경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모두가 공연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최근엔 젊은 층에서 OTT 등 영상 콘텐츠 시청 시 자막을 필수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공연 자막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최 대표는 “자막은 이미 선택이 아닌 기본 서비스”라고 단언한다. 또 “불과 몇 년 사이에 자막의 필요성과 인식이 급변하는 것을 직접 경험했고, 이제는 자막 없는 콘텐츠가 더 낯설게 여겨지곤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뮤지컬처럼 발성, 라이브 마이크, 합창이 많은 장르에서는 자막이 감상을 돕는 필수 도구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공연 자막 서비스에는 난관도 존재한다. 최 대표는 물리적인 문제와 함께 심리적인 장벽이 더 큰 어려움이라고 토로한다. 그는 “공연장마다 좌석 구조가 달라 기기 설치나 자막 송출 장치를 배치하기 어렵고, 지하 공연장은 네트워크 환경이 불안정해 송출 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도전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 큰 과제는 자막이 다른 관객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걱정, 자막이 꼭 필요한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 등 인식의 한계를 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서비스를 실제로 도입해보면 관객들의 반응은 매우 협조적이고 긍정적이었다. 최 대표는 “처음 서비스를 도입할 때는 많은 이해관계자를 설득해야 하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는 긴장감이 있지만, 이 과정을 함께 해주는 공연사와 산업 관계자들이 있기에 계속 시도하고 도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자막 서비스 확산을 위한 정책과 지원체계 마련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현재는 낯선 서비스이다 보니 영세 기획사나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자막을 제공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최 대표는 “저 역시 투자라고 생각하고 우선 뛰어들고 있는 시장”이라며 “영상 콘텐츠 자막이 국고 보조를 통해 확산된 것처럼 공연계의 접근성 개선에도 정부와 사회의 논의와 지원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롯플래닛
최 대표는 자막을 통해 내용의 깊이를 이해하고 감정을 따라갈 수 있다면 관객의 만족도는 오히려 높아진다고 강조한다. 유니스텝 자막을 통해 수십 번 본 공연을 다시 보고 “처음으로 모든 대사를 이해했다”고 말한 관객도 있었다. 궁극적으로 자막은 공연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관람 경험을 풍부하게 만드는 순기능이 훨씬 크다는 방증이다.
자막이 무대의 시야 방해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현재 후방 좌석을 중심으로 서비스하고 있어 큰 문제가 없다”며 “스마트폰, 태블릿, 전용 기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유연하게 제공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장치의 종류가 아니라, 서비스를 시스템화하여 관객 모두를 위한 공연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지”라고 강조했다.
자막을 만들고 서비스할 때 최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타이밍과 문맥이다. 공연의 감정선, 캐릭터의 말투, 장면 간의 리듬을 고려하고, 다국어 자막은 언어마다 다른 표현 뉘앙스와 텍스트량을 섬세하게 조정하여 호흡을 맞춘다. 현장에서 애드리브까지 실시간으로 송출하기는 어렵지만, 마니아 관객들의 의견을 모아 자주 등장하는 애드리브나 대사 표현들을 수집하며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무엇보다도 10년 넘게 뮤지컬을 관람해온 마니아로서, 공연의 특성과 배우의 호흡을 고려하며 자막을 디자인한다. 최 대표는 “장애인 관객은 지금껏 관객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 같다”며 “자막이 모두가 동등한 관객이 될 수 있도록 초청하는 최소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며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니스텝은 현재 중소규모 창작 공연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실시간 송출 안정성, 관객 피드백, 자막 디자인 등 주요 기능들이 충분히 검증됐다. 약 15편 이상의 공연에서 사용되며 반복 관람률, 외국인 관객 비율, 사용자 만족도 측면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향후에는 콘솔 연동 자동 자막 송출 시스템, 공연장 내 설치형 자막 장치 등으로 기술 범위를 확장하고, 공연 산업 내에서 유니스텝이 표준 인프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준비 중입니다. 또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공연 자막에 대한 니즈가 존재하며, 7년 넘게 쌓아온 영상 콘텐츠 자막 제작 노하우를 기반으로 해외 시장에서도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최인혜 대표가 자막 서비스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명확하다. 자막이 공연장에서 특별한 배려가 아닌, 기본 제공되는 시대를 만드는 것이다.
“오롯플래닛은 자막이라는 작은 장치를 통해 내일의 문화 시스템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자막이 내일의 문화를 만든다’는 저희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자막이 문화의 기본값이 되는 세상을 현실로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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