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년 역사’ US스틸 품은 日...한국 철강 ‘진퇴양난’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5.06.16 11:56  수정 2025.06.16 11:56

트럼프, 바이든 ‘인수 불허’ 뒤집고 황금주 조건 승인

일본제철 고비용 감수...세계 3위 中 안강그룹 추격

관세 부담 속 한일경쟁 불가피...“日보다 대응 늦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으로 수입되는 외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인상하기로 한 50% 관세가 발효된 지난 4일 경기도 평택항에 철강 제품이 쌓여 있다.ⓒ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사실상 승인하면서 글로벌 철강시장의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미국 철강업계의 상징인 US스틸이 일본 품에 안긴 가운데 미 시장을 둘러싼 한일 간 주도권 경쟁도 가열되고 있는 양상이다.


16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고율 관세에 더해 US스틸의 일본 매각이 공식화되면서 한국 철강의 수출 전략 역시 복잡한 셈법에 빠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허용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내렸던 인수 불허 결정을 사실상 뒤집은 것이다. 일본제철은 US스틸 지분 100%를 인수해 완전 자회사로 편입할 예정이다.


인수에는 약 141억 달러(약 19조2700억원)가 투입된다. 여기에 2028년까지 현지 철강시설 추가 투자금 110억 달러 등을 포함해 총 소요 비용은 약 140억 달러(약 19조1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인수 절차는 이르면 오는 18일 마무리된다.


이번 거래는 일본제철이 미국 정부와 ‘국가안보협정(NSA)’을 체결하고 핵심 경영 사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를 미 정부에 무상으로 발행하는 조건도 포함됐다. 미국 내 고용 유지와 공장 폐쇄 제한 등도 협정에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제철은 투자비 출혈과 경영 자율성 제약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에서의 입지 확보를 우선순위에 둔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은 자국 시장의 성장 둔화와 중국산 저가 철강의 확산 속에서 비롯됐다. 일본제철은 보호무역 장벽이 높은 미국 내수 시장을 새로운 활로로 보고, 진입 수단으로 US스틸 인수를 택했다. 올해로 설립 124년을 맞은 US스틸은 상징성을 갖춘 매물이기도 했다.


현대제철 제1고로. ⓒ현대제철

지난해 기준 연간 조강 생산량 4364만톤(t)인 일본제철은 US스틸(1418만톤) 인수로, 세계 3위 중국 안강그룹 (5955만톤)의 뒤를 바짝 추격하게 된다. 회사 측은 전기로 기반의 탈탄소 생산 전환과 고급강 수요 대응, 글로벌 생산능력 1억톤 체제로의 확장 등을 인수 배경으로 제시하고 있다.


박현욱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철강 수요 성장성은 제한적이지만 연간 수요 규모가 약 1억5000만 톤으로 단일 국가로는 중국, 인도에 이어 세 번째”라며 “철강 보호무역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수소환원제철 경쟁력을 감안해도 미국은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평가했다.


반면 한국 철강업계는 미국의 보호주의 강화와 일본과의 정면 경쟁이라는 이중 부담에 놓였다. 이번 인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50%로 인상한 지 불과 10일여 만에 발표됐다. 특히 자동차용 강판과 전기강판 등 한국이 노리고 있는 고부가 제품군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미국은 국내 철강업계 최대 수출처로, 지난해 전체 수출의 13.06%가 미국으로 향했다. 이에 한국 철강업계도 미국 내 생산 거점 확보에 나서고 있다. 현대제철은 총 58억 달러(약 8조원)를 투입해 미국 루이지애나에 전기로 기반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할 계획이며 포스코도 지분 투자 방식으로 참여한다.


문제는 대규모 투자에도 국내 업체들의 미국 내 생산능력과 속도가 일본제철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는 점이다. 현대제철 제철소의 연간 조강량은 270만톤, 가동 시점은 2029년으로 예정돼 있다. 실제 생산에 돌입하기까지 약 4년이 소요되는 셈이다.


US스틸을 인수해 관세 부담 없이 즉시 현지 생산이 가능한 일본제철과 비교해 대응 속도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투자 부담에 더해 시기와 효율성 측면에서도 불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동환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중국발 공급과잉과 전방산업 둔화, 관세에 따른 통상 불확실성 등을 고려하면 국내 철강업의 실적 부진이 지속될 전망”이라며 “대형 철강사를 중심으로 투자가 진행되고 있으나, 실적 회복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투자가 지속될 경우 재무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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