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령 9년, 중국 내 케이팝 지형도 [中대륙 속 케이팝②]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06.01 05:04  수정 2025.06.01 05:04

비공식 굿즈 시장 등 활성화...중국 내 케이팝 잠정 수요 높아

한한령 이후 중국 음반 수출액 비중 12%까지 급감

올해 들어 회복 조짐...1~3월 음반 수출액 1위

한한령(限韓令·한류제한령) 이후 공식적인 활동이 봉쇄되었던 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중국 내에서 케이팝(K-POP)의 위상은 역설적으로 끈질기게 유지되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확장했다. 한국 아이돌 그룹의 활발한 공연이나 방송 출연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디지털 플랫폼의 발전과 열정적인 팬덤 문화를 중심으로 한 독자적 생태계를 구축해 온 셈이다.


중국 자체 동영상 사이트 빌리빌리 'BTS' 검색 결과ⓒ빌리빌리

먼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케이팝 콘텐츠 소비 방식의 다변화와 폭발적인 증가세가 눈에 띈다. 유튜브는 물론 빌리빌리, 웨이보, QQ뮤직, 넷이즈뮤직 등 중국 현지 플랫폼을 통해 케이팝 음원과 뮤직비디오가 꾸준히 스트리밍되고, 공유됐다. 특히 중국 팬들은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자발적으로 한국어 가사를 번역하거나 뮤직비디오에 다국어 자막을 제작하여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하는 등 적극적인 참여형 소비 행태를 보였다.


한 예로, 중국의 자체 동영상 사이트인 빌리빌리에선 방탄소년단 관련, 조회수 100만 이상의 영상이 수두룩하다. 정식 홍보 활동도, 공연도 없음에도 중국인들이 이들의 음악을 소비하는 식이다. 특히 WNS(We need BTS) 웨이보 계정은 방탄소년단의 음악과 뮤직비디오 자막 등을 번역해 공개하는데, 하루 평균 페이지뷰가 500만뷰가 넘는다.


음반 시장 역시 오프라인 판매가 사실상 중단된 이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새로운 유통 경로가 형성됐다. 과거에는 음반 수입 및 판매가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이루어졌으나, 한한령 이후에는 해외 직구나 구매대행 서비스를 통해 케이팝 음반을 구매하는 팬들이 꾸준히 증가했다. 당시 업계에선 케이팝 음반을 중국에 내다 파는 현지 업체가 국내에 들어왔다는 보도도 심심찮게 나왔다. 이는 공식적인 통계에 정확히 반영되지 않는 시장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다만, 한국음반산업협회의 수출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중국으로의 음반 수출액은 한한령 이전과 비교하여 분명히 감소했다. 우리나라의 음반 수출액이 처음으로 4000만달러를 넘겼던 2017년 중국의 음반 수출액은 1594만8000달러였다. 이 당시 전체 음반 수출액은 4418만2000달러로, 일본이 1717만3000달러로 1위, 중국이 2위였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은 전체 수출액 기준 36%에 육박하는 큰 시장이었다.


그러나 5년 후인 2022년 중국의 음반 수출액은 5132만6000달러로 일본(8574만9000달러)에 이어 2위를 차지했지만, 전체 음반 수출액(2억3311만3000달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로 떨어졌다. 2023년엔 전체 음반 수출액에서 전년의 절반 수준인 12%(3390만 달러)까지 급감하며 일본과 미국에 이어 3위로 밀려났다.


특히 주목할 시기는 2023년 8월이다. 당시 케이팝 음반 판매량이 사상 최고치에 달했던 때였는데, 중국 케이팝 음반 수출액은 9만6000달러로 사실상 바닥에 가까웠다. 케이팝의 세계적 호황과 반대로 움직이는 중국 상황을 두고 당시 케이팝을 향한 보이지 않는 규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그나마 한한령 해제 기대감이 높아진 최근에서야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기준, 중국 수출액이 5978만9000달러로 크게 뛰었다. 여전히 일본, 미국에 뒤처지긴 하지만, 일본 수출액이 8978만5000달러로 크게 감소한 가운데 보인 기록으로 가요계에서는 중국시장 재개척의 기대감을 보일만 한 수치다. 이 기세를 이어받아 중국은 일본·대만·미국을 넘고 올해 1~3월 한국 음반 수출액 1296만2000달러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공식적인 중국 내 케이팝 그룹 활동의 부재는 역설적으로 비공식 굿즈 시장의 활성화를 촉진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온라인 쇼핑몰, 소셜 미디어 플랫폼, 심지어 개인 간 거래를 통해 팬들이 직접 제작하거나 해외에서 구매한 다양한 케이팝 관련 굿즈들이 활발하게 거래됐다. 중국인 케이팝 팬 A씨는 “중국 내에서는 케이팝 콘서트나 거기서 파생되는 굿즈 등을 구매하기 어렵기 때문에 팬들 내에서 자생적으로 소비하는 분위기”라며 “만약 공식적인 활동이 재개될 경우 잠재되어 있던 시장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 케이팝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한한령이라는 환경 속에서도 케이팝은 중국 팬들의 뜨거운 열정과 진화하는 온라인 플랫폼의 강력한 힘에 힘입어 지난 9년간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고 끊임없이 성장해왔다”면서 “다만 중국 내에서의 케이팝 시장의 성장은 콘서트 개최로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국에서 개최한 지드래곤, 제니 등의 콘서트에서 중국인 관람객이 대거 모였던 것만 봐도 케이팝 공연에 대한 중국인들의 수요가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때문에 공식적인 활동 재개가 이뤄진다면 잠재된 거대한 수요를 폭발적으로 분출시키고, 케이팝의 중국 시장 내 위상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내다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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