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후 간호사가 집으로 찾아가는 ‘돌봄스테이션’
농업 기반 치유공간 ‘케어팜’에서 일상 회복 지원
의료·요양·주거 아우른 지역 밀착형 통합돌봄 구축
퇴원은 치료의 끝이지만, 일상의 회복은 이제부터다. 병원을 나선 뒤부터 이어지는 의료·돌봄의 공백을 지역사회가 메우기 시작했다. 충북 진천에서는 간호사가 집으로 찾아가노인과 장애인이 텃밭에서 땀을 흘리며 회복하는 ‘생활 밀착형 통합돌봄’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병원 치료 이후의 돌봄 공백은 갈수록 구조화되고 있다. 퇴원한 노인은 건강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데도 다시 혼자가 되고 돌봄·요양·의료 서비스는 각기 다른 제도와 기관에 흩어져 있다. 그 사이에서 환자는 복지에서 밀려나고 가족의 부담만 커진다. 지역에서 이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구조는 여전히 미비한 경우가 많다.
이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진천군은 의료와 요양, 일상돌봄, 재활, 주거를 아우르는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을 운영 중이다. 중심에는 ‘우리동네 돌봄스테이션’과 ‘생거진천 케어팜’이라는 두 거점이 있다. 하나는 병원 밖에서 간호사가 찾아가는 통합의료의 현장이고, 다른 하나는 농업과 복지가 만나는 회복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진천군은 지역 중심의 돌봄 시스템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퇴원 후에도 간호사가 곁에…‘우리동네 돌봄스테이션’
우리동네 돌봄스테이션은 병원 간호서비스를 지역으로 확장한 모델이다. 간호사가 퇴원환자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 건강 상태를 살피고 필요한 진료·재활·영양·약료 서비스를 연결한다. 핵심은 간호사 중심의 다학제 전담팀 운영이다.
진천군은 수행기관인 중앙제일병원과 협력해 간호사 4명, 공중보건의사, 사회복지사, 약사, 영양사, 물리치료사 등 10명으로 구성된 팀을 꾸렸다. 이들은 환자 개개인의 건강 상태와 사회적 여건을 고려해 통합간호계획을 수립하고, 맞춤형 방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비스는 6개월간 이뤄진다. 방문간호는 5회, 전화간호 4회, 방문진료는 최대 12회까지 가능하다. 방문 영양지도와 재활·약료서비스도 대상자 상태에 따라 탄력적으로 지원된다. 간호사는 이 모든 과정을 설계하고 조율하며, 필요할 경우 복지서비스나 주거지원도 연계한다.
진천군은 이 사업에 3억5000만원(군비 전액)을 투입해 전담 인력과 운영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돌봄이 텃밭으로 이어질 때…‘생거진천 케어팜’
돌봄의 방식은 꼭 의료적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진천군이 운영 중인 ‘생거진천 케어팜’은 농업 활동을 통해 정서적·신체적 회복을 지원하는 공간이다. 노인, 장애인, 정신질환자 등 돌봄 대상자가 직접 작물을 기르고 수확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하고, 일상을 다시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케어팜은 진천읍 옛 농업개발센터 부지에 조성됐다. 총 8014㎡ 규모에 실습텃밭, 하우스 6동, 유리온실, 프로그램실, 가공창고 등을 갖췄다. 단순한 체험농장이 아닌, 사회복지와 보건기관이 연계된 ‘복합형 치유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충청사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민간위탁 방식으로 관리한다. 진천군은 연간 1억3000만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올해 4월에는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사회적 농장’으로도 공식 지정됐다.
여기서는 농작물 재배 외에도 농산물 가공·판매, 돌봄 체험 프로그램, 지역사회서비스 투자사업이 함께 이뤄진다. 돌봄 대상자는 단순히 이용자가 아니라 농업의 주체로 참여하며 자연스럽게 공동체에 다시 연결된다.
의료·복지·주거를 하나로 묶는 진천형 통합지원 체계
진천군은 2019년 보건복지부의 통합돌봄 선도사업으로 선정된 이후 의료-요양-돌봄-주거-일상생활 서비스를 하나의 체계로 엮는 통합시스템을 단계적으로 구축해왔다. 보건소, 복지과, 민간 의료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계되고 주민복지과 내 전담팀이 이를 통합 운영하는 구조다.
기존 제도에서 제공되는 장기요양, 방문건강관리, 치매센터, 식사배달, 행복택시 등은 통합플랫폼에 연계되고 필요한 경우 추가 서비스가 지원된다. 주거환경 개선이나 케어안심주택 같은 주거서비스도 포함돼 있어, 집에서의 삶이 실질적으로 유지되도록 돕는다.
이 사업은 2025년까지 진행되는 복지부 시범사업이다. 올해 총예산은 18억3400만원 규모다. 국비·도비·군비가 함께 투입되며, 진천군은 현장 중심 사업에 예산을 적극 배분하고 있다.
2023년에는 복지부 지역복지평가 통합돌봄 분야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성과를 인정받기도 했다.
“살던 곳에서 건강하게”…지역이 돌보는 시대의 시작
이러한 시도는 결국 한 가지 방향을 향하고 있다. 병원이 아닌, 지역이 사람을 돌보는 구조를 정착시키는 것. ‘살던 곳에서 건강하게’라는 복지의 이상을 제도와 현장 모두에서 구현해보겠다는 목표다.
진천군도 케어안심주택 확대, 스마트돌봄기기 도입 등 후속 정책을 이어가며 통합지원 모델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진정한 의미의 지역복지가 실현되는 첫 단계를 현장에서 밟아가고 있다.
송기섭 진천군수는 “국가나 지방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도를 넓히는 것”이라며 “노인들이 병원이나 요양시설에 가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진천형 통합돌봄 모델을 계속 정착시켜 전국으로 확산하겠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진천의 모델이 향후 다른 지자체로도 확산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호원 복지부 대변인은 “고령화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 상황에서 통합돌봄 시범사업을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해나갈지가 앞으로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며 “진천군이 퇴원환자 연계 지원과 케어팜 같은 구체적 모델을 보여준 만큼, 시범사업 과정에서 나타난 애로사항을 면밀히 파악해 제도화 준비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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