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은 아파트 값에 다시 눈 돌리는 실수요자
거래 회복세에도 임차수요 위축…공급도 급감
“수급 불균형 해소 시급…획기적 규제 완화 필요”
빌라 등 비아파트 시장이 무주택 서민의 ‘주거사다리’ 역할을 한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단 목소리가 나온다. 전세사기 여파로 월세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아파트 쏠림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임차수요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어서다.
최근 들어 거래량이 소폭 늘었지만 공급이 줄어 전반적인 시장 규모 자체가 쪼그라든 만큼 수급 불균형 해소가 시급하단 진단이 나온다.
22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3월 서울의 빌라(연립·다세대) 매매 거래량은 3219건으로 1년 전(2429건) 대비 32.5% 증가했다. 빌라 거래량이 3000건을 넘은 건 지난 2022년 6월(3249건) 이후 처음이다.
올 들어 거래량은 1월 1651건, 2월 2216건에 이어 3월까지 점차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정부의 각종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 방안에도 꿈쩍 않던 수요가 살아난 모습이다.
이는 강남3구와 용산구 등 주요 지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되면서 아파트 진입장벽이 높아지자 비교적 저렴한 빌라시장으로 눈을 돌린 실수요가 영향을 미쳤단 분석이다.
여기에 서울시가 신속통합기획과 모아타운 등 노후 저층 주거지 정비사업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개발 기대감이 높은 노후 빌라 지역을 중심으로 매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일각에선 빌라시장 반등을 점치지만 업계에선 온전한 시장 회복세로 돌아서긴 힘들단 진단이 지배적이다.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 기피가 여전하고 월세화가 빠르게 이뤄지면서 임차 수요의 주거비 부담은 점점 가중되고 있다. 올 1분기 비아파트 전·월세 신규 거래 가운데 월세(보증부·반전세 포함) 비중은 75.6%에 이른다.
월세 가격이 치솟으면서 100만원 이상 고액 월세 비중도 커지고 있다. 지난 2020년 약 29.3% 수준이던 고액 월세 비중은 지난해 39.3%까지 치솟았다. 10명 중 4명 정도는 고액 월세를 부담하는 셈이다.
이에 빌라 매매를 택하기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아파트 전세시장이나 공공임대주택 등으로 눈을 돌리는 수요가 더 늘었다.
수요가 줄면서 공급도 위축되고 있다. 올 1분기 수도권 비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다세대 1893가구, 연립 831가구 등 총 2724가구로 조사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665가구)과 비교하면 물량이 소폭 늘었지만, 국토부가 2007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세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임차수요와 공급이 동반 감소하고 있어 매매 거래량이 소폭 증가한 것으로 시장 정상화를 판단하긴 이르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를 위해 주거사다리 회복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민간 공급 주체격인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완화 등 더 획기적인 규제 지원책이 나와야 한단 견해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일정 요건을 갖춘 빌라의 경우 한 채를 매입하더라도 청약 시 무주택자로 인정해주기로 했으나 이렇다 할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며 “실질적인 세금 문제에서 주택 수 제외 혜택이 없기 때문에 청약 기회를 주는 걸로는 매수심리를 살리기 역부족”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빌라는 특히나 투자 목적으로 들어오는 수요가 많기 때문에 다주택자 규제를 묶어놓고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를 논하긴 힘들다”며 “공급이 줄면 전·월세 가격이 올라 세입자 주거비 부담도 커지기 마련이어서 무주택 서민의 주거 불안정성만 가중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빌라시장에 머물던 수요가 아파트로 발길을 옮기게 되면 이미 공급 대비 수요가 초과를 나타내는 아파트 가격 불안도 부추길 수 있다”며 “공공에서 비아파트를 모두 사들이거나 빌라를 지어 공급할 게 아니라면 민간에서 투자 수요가 유입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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