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플랫폼과 손잡는 OTT, 생존 위한 '락인 전략' 본격화
가입자 수 늘면 투자 여력도 커져…넷플릭스式 선순환 구조 노려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생활밀착형 플랫폼과 잇따라 손잡고 있다. 넷플릭스에 밀려 주춤한 구독자 수를 회복하고,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수천만 가입자를 보유한 플랫폼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티빙은 배달앱 '배달의민족'과의 제휴를 통해 내달 2일부터 멤버십 상품을 출시한다. 제휴 멤버십에 가입하면 티빙 '광고형 스탠다드' 이용권과 '배민클럽'의 무제한 무료배달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티빙은 국내외 영화와 해외시리즈, 실시간 뉴스채널을 비롯해 티빙 오리지널, 프로야구·프로농구 라이브 스포츠 중계 등 다양한 콘텐츠를 스트리밍하고 있다.
결합상품 가격은 월 5490원이다. 배민클럽 프로모션가 1990원에 3500원을 추가로 내면 티빙 광고형 요금제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구조다. 배달의민족은 티빙과의 결합 상품 이용 시 6월 2일부터 8월까지 첫 달 추가 구독료 100원 이벤트를 제공한다.
이번 제휴를 통해 배달의민족은 쿠팡을, 티빙은 쿠팡플레이 견제를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티빙은 넷플릭스에 이어 쿠팡플레이마저 밀리며 가입자 회복이 시급한 상황이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3월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넷플릭스 1409만명, 쿠팡플레이 748만명, 티빙 705만명, 웨이브 426만명, 디즈니플러스 267만명, 왓챠 49만명을 기록했다.
넷플릭스는 해외 거대 자본을, 쿠팡플레이는 1400만명의 유료 가입자를 거느린 모기업 쿠팡을 등에 업고 지배력을 확대하고 있다. 티빙, 웨이브로서는 각각의 가입자 규모만으로 OTT 시장에서 글로벌 사업자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준의 규모의 경제 실현이 어렵다.
이대로 가다가는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티빙은 웨이브와 합병을 시도하고 있다. 티빙 최대주주는 CJ ENM(48.9%), 웨이브의 최대주주는 SK스퀘어(36.7%)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의 '임원 겸임 기업결합'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으로, 승인 시 양사는 경영진을 상호 파견해 실질적인 통합 작업을 준비할 수 있다.
다만 단순 합병만으로는 시너지를 도모하기 힘들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티빙 2대 주주인 KT(KT스튜디오지니)는 주주가치 측면에서 양사 합병 시너지가 크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달 ‘KT그룹 미디어토크’에서 김채희 KT 미디어부문장(전무)은 "웨이브의 지상파 콘텐츠 독점력이 상당히 많이 떨어져가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합병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성장 방향, 가능성이 티빙 주주가치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웨이브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작년 12월 437만명에서 올해 2월 418만명까지 줄었다가 3월 소폭 반등한 426만명을 기록했다. 이런 지지부진한 성장세 속에서, OTT간 합병이 주주가치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합병 추진과는 별개로, 티빙과 웨이브는 정체된 구독자 수를 회복할 묘책이 시급해졌다. 그 방안으로 배달앱, 이커머스, 통신사 등 거대 고객을 거느린 플랫폼과의 협력이 주목받고 있다.
이미 네이버는 넷플릭스와의 협력으로 시너지 효과를 증명했다. 지난 반년 간 네이버플러스 멤버십의 신규 가입자 수는 이전 보다 1.5배 증가했다. 넷플릭스도 네이버와의 협업 이후 연령∙지역∙성별 면에서 이용자층이 더욱 풍성해졌다고 밝혔다.
티빙도 배달의 민족과의 제휴로 OTT에 익숙하지 않은 잠재 고객을 끌어들이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배달앱과 OTT를 한 번에 묶으면 구독 해지율이 낮아지고, OTT 서비스에 대한 이용자 락인(고착) 효과가 커질 것이라는 기대다.
여기에 마케팅 등 중복 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브랜드 인지도 상승, 크로스 프로모션 등 다양한 시너지 효과도 노릴 수 있다. 티빙-배민 제휴 멤버십은 광고형 구독 상품으로, 이용자는 콘텐츠 중간에 삽입된 광고를 시청해야 한다. 이때 배민 주문 연동형 광고가 들어가면, 양사는 신규 고객 유입과 광고 수익 증대라는 직접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가입자가 늘고 매출이 증가하면 오리지널·독점 콘텐츠에 투자할 여력도 커진다. 넷플릭스와 달리 매출 규모가 작은 국내 OTT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시장 파이 확대, K-콘텐츠 투자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가시화되는 것이다.
티빙의 영업손실률은 2021년 58.0%, 2022년 48.1%, 2023년 43.5%, 웨이브의 영업손실률은 2021년 24.3%, 2022년 44.4%, 2023년 31.9%이다. 이들 OTT의 적자는 매출 대비 과도한 콘텐츠 수급 비용으로 추정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티빙-웨이브 합병 논의의 배경, 예상 효과 및 관련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콘텐츠 경쟁 심화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등을 위해서 상당한 규모의 제작비를 지출하고 있으나, 매출액 규모는 해당 비용을 회수하기에 역부족"이라며 "콘텐츠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제작비 감축은 경쟁력 저하로 이어져, 가입자 확보 경쟁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넷플릭스의 경우 전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가입자를 확보해 이를 기반으로 국내 사업자 대비 월등한 수준의 제작비 투입하고 있다. 티빙이 외부와 연합전선을 구축해 가입자 수를 늘리고 이를 바탕으로 투자 여력을 키울 수 있다면 토종 OTT로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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