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 디펜더 옥타 시승기
공차중량만 2665kg, 압도적 근육질 몸매
V8 엔진 품은 날쌘 몸놀림… "끝판왕 답네"
귀여운 얼굴에 근육으로 꽉 찬 반전 몸매, 점잖을 땐 점잖다가 필요할 땐 화끈한 성격. 사람이었어도 인기가 많을 수 밖에 없는 이 매력은 랜드로버 디펜더에도 꼭 들어맞는 얘기다. 1억은 우습게 넘기는 몸값에도 불구하고 한국 상륙 5년 만에 국내 판매 5000대를 달성한 비결이겠다.
안 그래도 매력적인 디펜더는 라인업 중 끝판왕 격인 '디펜더 옥타'로 굳히기에 나섰다. 랜드로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오프로드, 오프로드에 최적화된 디펜더, 그런 디펜더 중에서도 최정점에 서있는 모델이다. 벤츠 G클래스가 점령 중인 럭셔리 오프로더 시장에서 선택지에 오를 수 있을까.
그래서 직접 시승해봤다. 거친 시골길부터 고속구간, 급격한 와인딩 코스를 지나 다양하게 마련된 오프로드 코스까지 골고루 달려봤다. 시승 모델은 디펜더 옥타, 가격은 2억2497만원이다.
귀여운데 안 귀엽다. 디펜더 옥타를 마주하면 그동안 디펜더 모델들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지었던 것과는 다른 반응을 하게 된다. 분명히 얼굴은 똑같이 생겼는데, 풍기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울 정도로 위압감을 마구 뿜어내는데, 이유는 몸매에 있었다. 옥타는 디펜더 특유의 아이코닉한 얼굴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온 몸에 근육이란 근육은 죄다 펌핑했다. 기존에도 투박하던 군용차 몸집에 방탄조끼라도 두른 듯 묵직해졌다.
귀여운 얼굴에서 잠시 눈을 돌려 측면과 후면으로 돌아서면 높아진 지상고와 묵직해진 두께감이 단번에 체감된다. 지상고는 28mm 높아졌고, 전폭은 68mm 확장됐다. 바퀴를 감싼 휀더도 퉁퉁하게 부풀어올랐다.
전반적으로 디펜더 특유의 실루엣은 그대로지만, 차량 하부가 더 묵직해진 형상이다. 터질 듯한 몸에 병아리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 기존 디펜더가 가졌던 반전 매력이 한층 극대화된 느낌이다.
작은 변화구에도 크게 느껴지는 차이는 내부로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디펜더 옥타의 도어를 열어 젖히면, 차에 오르는 순간 부터 높아진 지상고가 체감되며 기존 모델과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160cm 여성 기준 발판이 없으면 천장 손잡이를 잡고 점프를 해야하니, 옥타를 구매한다면 발판 옵션을 추가하는 게 보기에도 더 좋겠다.
어렵게 차에 올라 내부를 둘러보니 비싸진 몸값이 곳곳에 녹아있다. 레인지로버, 디스커버리, 디펜더를 아우르는 랜드로버 특유의 깔끔한 내부 디자인은 유지하면서도, '디펜더 중 가장 강력한' 모델임을 암시하는 요소가 숨어있다.
스티어링 휠에 하단부에 자리한 다이아몬드 형상의 버튼은 옥타에 타고 있음을 가장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요소다. 이 버튼을 누르면 옥타모드로 전환되면서 다이내믹한 주행감이 극대화된다. 통상 스포츠모드라 부르는 고성능 주행모드인 셈인데, 일반 디펜더 모델에선 비워둔 부분을 채워놓으니 괜히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시트 모양도 기본 모델들과 다르다. 시트에 착석하면 양쪽 팔꿈치 뒤로 솟아오른 부분이 느껴지는데, 고성능 퍼포먼스에 초점을 맞춘 모델인 만큼 몸을 더욱 단단히 지지해주기 위한 요소다. 디펜더는 옥타를 위해 시트 모양을 아예 새로 설계했다고 한다. 헤드레스트 모양도 일체형으로 바뀌었다.
오프로드에 특화된 디펜더 특유의 센터페시아와 랜드로버 전 라인업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디스플레이는 그대로 살렸다. 2억을 훌쩍 넘기는 가격에 걸맞는 혁신적 새로움을 원했다면 아쉬울 수 있겠으나, 어떤 모델을 타도 랜드로버 특유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장수 브랜드로서의 자신감과 비결을 드러내는 듯 하다.
자세히 살펴봐야 알 수 있는 내외부 디자인에 '디펜더 130 보다 1억이나 비싼데…' 하는 마음이 솟구친다면 서둘러 옥타의 가속페달을 밟아보길 권한다. 시트를 새로 설계하고 몸집을 퉁퉁하게 만든 원인은 옥타의 전례없는 성격에 있기 때문이다.
옥타는 가속페달을 밟은 순간부터 기존의 디펜더를 지워버리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무섭게 튀어나간다. 그간 모든 디펜더가 육중한 몸에 맞지 않는 뛰어난 가속력을 선보여왔건만, 옥타는 아예 다른 차라고 봐야할 정도다.
옥타는 디펜더 라인업 중 유일하게 4.4리터 트윈터보 V8 가솔린 엔진과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결합한 모델이다. 최고 출력은 무려 635PS(7000rpm), 최대 토크는 76.5kg·m에 달하며, 다이내믹 런치 모드 사용 시 81.6kg·m까지 상승한다. 이렇게 육중한 몸집을 하고 있으면서 제로백(시속 0에서 100km까지 도달하는 속도)은 단 4초다.
2665kg라는 몸무게를 감당해주는 브렘보 브레이크는 V8 엔진과 함께 주행의 짜릿함을 더해주는 핵심 무기다. 급격한 내리막 와인딩 코스에 다다라 브레이크를 밟고 스티어링휠을 꺾었더니, 몸무게가 더해진 빠른 속도에도 지체없이 감속해내면서 더욱 스릴있는 코너링을 만들어냈다. 성능이 버텨주지 못했다면 브레이크를 미리 밟고 최대한 부드럽게 돌아냈어야하는 구간이다.
2억이라는 몸값은 옥타모드(다이내믹 모드)로 주행모드를 전환하면 더욱 납득하기 쉬워진다. 주행 모드를 바꾸자마자 옥타는 마치 이름을 불린 아이처럼 신나게 날뛰기 시작했다. 묵직한 엔진 소리가 내부를 울려주고, 밟는 족족 거침없이 달려나가며 순식간에 고속도로를 서킷 위로 만든다.
프레임바디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주행감은 옥타의 ‘몸값‘을 단번에 이해시키는 요소 중 하나다. 원래 럭셔리 오프로더를 표방하는 모델들은 어쩔 수 없이 살짝 시끄럽고, 살짝 불편한 온로드 주행감을 감내해야하는것 아니었나.
옥타는 온갖 차들이 수년에 걸쳐 깎아낸 울퉁불퉁한 노면부터 일반 차였다면 하부가 걱정될 정도의 높은 방지턱까지 아주 신사적으로 지나갈 줄 아는 아량을 가졌다. 평소 타던 차였다면 끔찍한 소리가 들려올 것을 직감하고 미리 속도를 최대치로 줄였을, 무자비한 방지턱은 옥타의 앞에선 작은 돌멩이에 불과한 듯 했다. 렉서스 LX700h, 벤츠 G클래스 등 동급 럭셔리 오프로더와 비교해도 최정상급의 서스펜션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프로더로서의 실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옥타는 ‘가장 강력한 디펜더‘라는 이름값에 걸맞는 포악한 오프로드 실력을 갖췄다. 사실상 사람으로 치면 모든 부분이 완벽한, 모든 기업에서 찾는 육각형 인재인 셈이다.
옥타는 이날 마련된 극악 수준의 오프로드 코스를 눈하나 깜짝 않고 코웃음 치며 주파해냈다. 특히 옥타의 매력이 극대화된 코스는 사람이 올라가도 쉽지 않을 높은 경사에 비가 오지 않아 미끄럽기까지 한 구간에서였다.
코스를 지나기전 앞서서 시범을 보인 인스트럭터의 디펜더 90 모델이 힘을 받지 못해 두어번 시도한 끝에 간신히 오른 것과 달리, 옥타는 가속 페달을 힘주어 밟지 않았음에도 마치 동네 마실을 나온 듯 여유롭게 주파해냈다. 앞 차의 힘겨운 몸짓에 잠시 고민했던 시간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도강 성능은 무려 수심 1m에 달한다. 디펜더 라인업은 물론 동급 오프로더 중에서도 전례없는 수치인데, 이정도면 거의 수륙양용이라고 봐야하는 것 아닐까. 디펜더의 모든 모델이 ‘못 가는 길은 없다’고 말한다면, 옥타는 ‘편하게 못가는 길 따위는 없다’고 말하는 거만함이 갖춰진 듯 하다.
시승을 마치고 나니, 극강의 오프로드 성능을 얻은 대가로 온로드 주행감은 살짝 눈감아줘야했던 몇몇 모델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디펜더 옥타는 ‘비싼 차를 샀으면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말라’고 경고라도 하는 듯 했다. 2억을 훌쩍 넘기는 차로 산을 오를 일이 거의 없단 점을 생각하면, 일상 속에서의 편안함을 챙기는 건 적어도 옥타에서는 욕심이 아니라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다.
▲타깃
-"다 똑같은 차는 싫어!" 개성 중요한 당신
-스타일도 성능도 희소성도 챙기고픈 욕심쟁이
▲주의할 점
-2억2000만원 짜리 차로 오프로드를?
-같은 가격대에 살 수 있는 차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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