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튬 가격 급락과 공급망 리스크에 ‘포스트 리튬’ 본격 부상
中 CATL·BYD, 나트륨이온 배터리 상용화 착수…국내 3사도 대응 나서
에코프로비엠은 정부과제 주관사…파일럿 라인 구축, 국내 완성차와 협의 중
리튬. ⓒLG에너지솔루션배터리인사이드
리튬 가격 급락과 공급망 리스크가 겹치며 전기차 배터리 양극재 기술이 중대한 분기점에 직면하고 있다. 기존 리튬 기반 양극재가 구조적으로 흔들리면서 소재업계는 리튬 대체형 양극재 개발과 상용화를 서두르고 있다. 그중 나트륨이온배터리가 가장 앞선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가격 폭락과 지정학 리스크…리튬의 이중 위협
‘21세기 석유’로 불리는 리튬은 리튬이온배터리의 핵심 소재다.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수요가 급증했고, 양극재 원가의 60~70%를 차지할 만큼 핵심 비중이 크다. 양극재는 다시 배터리 원가의 절반 이상을 구성한다. 이 때문에 리튬 가격은 배터리와 전기차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주요 기업들이 리튬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이유다.
그러나 수요 확대와 달리, 리튬의 불안정한 공급 구조와 가격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 변동성이다. 리튬 가격은 2022년 t당 8만 달러를 넘긴 뒤 2024년 들어 1만 달러 안팎까지 급락했다. 중국 내 현물가도 같은 흐름이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리튬 가격은 지난 18일 기준 kg당 58.50위안으로 고점(2022년 11월 581.50위안)대비 약 90% 하락했다.
리튬 가격이 싸지면 전기차가 더 저렴해질 것 같지만,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가격이 너무 떨어지면 리튬 생산업체가 손해를 보고 투자를 줄이게 된다. 그러면 몇 년 뒤 공급이 부족해질 수 있다. 또 가격이 불안정하면 배터리사와 완성차 업체도 원가 예측이 어려워진다. 기술 개발이나 장기 계약에도 차질이 생긴다. 결국 값이 싸도 산업 전체는 더 불안해지고, 공급망 리스크는 커진다.
매장량과 정제 공정의 지역 편중도 치명적이다. 주요 리튬 생산국으로는 호주 칠레 중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이 있으며 전체 리튬 매장량의 60%가 남미권에 위치하고 있다. 정제 공정의 60~70%는 중국에 몰려 있다. 채굴부터 리튬 화합물로 생산되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돼 수요를 즉각적으로 반영하기 어렵다.
이 구조는 지정학적 규제에 따른 리스크도 키우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중국산 리튬이 포함된 배터리에 세제 혜택을 제한하고 있어 공급망 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2035년 리튬 수요 대비 공급 전망. ⓒ국제에너지기구(IEA)
리튬 공급 고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보고서에서 단기적으로는 리튬 공급이 수요를 상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2030년대에는 공급 부족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내놨다. 특히, 2035년까지는 전체 수요의 60% 수준만 공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리튬 기반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는 높지만, 안정성 확보가 어렵다는 문제도 안고 있다. 고에너지화가 진행될수록 화재나 폭발 등 안전 리스크가 커진다.
리튬보다 '싸고 안전하다'…나트륨이온배터리
이에 따라 배터리업계는 리튬 대체 구조로의 전환을 선택지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리튬을 대체할 수 있는 전지 기술로는 나트륨(Na), 아연(Zn), 마그네슘(Mg), 알루미늄(Al) 기반 배터리가 연구되고 있으나 이 중 나트륨이온배터리만이 실질적인 상용화 국면에 진입한 상태다.
IEA는 나트륨이온배터리를 리튬이 포함되지 않은 유일한 상용 전기차 배터리 기술로 언급하며, 리튬 공급망을 대체할 수 있는 후보 기술로 평가했다. 나트륨은 지각과 바닷물에 풍부하게 존재해 공급 리스크가 낮고, 소재 가격도 리튬 대비 수 배 저렴하다. 리튬이온배터리와 동일한 생산 설비를 활용할 수 있어 전환 비용도 적으며, 완전 방전 상태에서도 운송이 가능해 화재 위험 역시 낮다.
영국 매체 BBC와 시장조사업체 아이디테크엑스(IDTechEx)도 “나트륨은 가격 안정성과 공급망 다변화 측면에서 전략적 가치가 크다”고 분석했다. 다만 에너지 밀도가 낮고 수명 주기가 짧다는 기술적 한계는 여전히 개선 과제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저가형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을 중심으로 상용화 가능성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CATL 나트륨이온배터리. ⓒ블룸버그
상용화는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KDB미래전략연구소 산업기술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중국은 1970년대부터 나트륨이온 배터리를 연구해 왔으며 최근 리튬 가격 급등과 공급 불안정성에 따라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주요 업체들은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우선 적용한 뒤 저사양 전기차 시장에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대체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BYD는 ESS와 저가형 전기차 시장을 겨냥해 나트륨이온 배터리 상용화에 나섰다. 특히 지난달에는 고성능 나트륨이온 배터리 시스템을 출시하며 그리드(대규모) 규모 ESS에서도 리튬을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BYD는 연간 3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세계 최대 나트륨이온 배터리 공장도 건설 중이다. 이는 단기 기술 공개를 넘어 리튬 대체 체제로의 전환 의지를 보여주는 조치로 해석된다.
CATL도 지난 4월 나트륨이온 배터리 ‘Naxtra’ 시리즈를 공개하며 상용화에 본격 착수했다. 승용차용 제품은 올해 12월, 상용차용은 6월 양산 예정이다. 트럭용은 영하 40도에서도 작동하며, 1만 회 이상 충방전이 가능하다. CATL은 발표 당시 “나트륨이온 배터리가 실험 단계를 넘어 상용화에 들어섰다”며 “리튬 공급 불안정에 대응할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트륨이온배터리. ⓒ시장소자업체 아이디테크엑스
국내 배터리 3사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나트륨 이온 배터리 분야에서도 LG에너지솔루션이 가장 앞서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30년 이전 조기 상용화를 목표로 설정하고 고용량 양극재를 활용해 에너지밀도를 끌어올리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삼성SDI 역시 사내 연구소에서 관련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SK온은 아직 본격적인 연구개발 단계에는 진입하지 않았지만 시장성과 사업화를 두고 내부 검토를 이어가고 있다.
소재사들도 발맞춰 나서고 있다. 에코프로비엠이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에코프로비엠은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하는 나트륨이온전지 양극재 개발 프로젝트에 주관사로 선정됐다. 에코프로비엠은 이미 충북 오창 사업장에 나트륨이온전지 양극재 전용 파일럿 생산라인을 갖추고 관련 기술 연구개발(R&D)을 진행 중이다.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 수준까지 도달했으며 국내 완성차 업체와 나트륨이온 배터리 전기차 출시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경케미칼도 하드카본계 음극재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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