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없이 광주 찾아 참배한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
노재헌, 노태우 회고록 수정·비자금 실체엔 '침묵'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 언급 없어…5·18단체 "진정성 없다"
▲ 1979년 12·12로 군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는 1980년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 뒤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다. 당시 사망자가 218명, 행방불명자가 363명, 상이자가 5088명 등이었다. 이후 권력 서열 1, 2위를 나눠 가진 이들은 김영삼 정부 들어 '노태우 4000억 비자금'이 폭로되고 12·12와 5·18 관련자 처벌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법적 심판을 받았다.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핵심 16명이 1996년 반란죄와 내란죄, 뇌물수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대법원은 1997년 4월17일 전두환에게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 노태우에게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원을 확정했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대법원판결 확정 8개월 만에 '국민 대화합' 명목으로 이들을 특별사면했다. 결국 전두환·노태우는 12·12 및 5·18 피해자와 유족에게 제대로 된 사과나 용서를 구하지 않은 채 노환으로 숨졌다.
▲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옥숙 여사가 19일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 문화센터 원장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김 여사는 방명록에 '광주 5·18 영령들께 진심으로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과거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나름 노력하였으나 부족한 점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원히 대한민국의 앞날을 굽어살펴 주시길 빕니다'라고 남겼다.
거동이 불편한 김 여사의 방명록은 노 원장이 대필했다. 쿠데타 주역들로 부귀와 권세를 누린 가족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5·18 피해자에게 고개를 숙인 건 잘한 일이다. 하지만 김 여사의 사과엔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대목은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잘못했다고 하지만 그게 무엇이고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도 적시하지 않았다.
실제 노재헌 원장은 이날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언급을 동시에 쏟아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나비센터 관장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불거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오늘은 그런 말씀 드리는 적절한 때가 아닌 것 같다. 여러 가지 오해가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언젠가는 정리가 될 것이라고 희망하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노 원장은 광주 학살의 원인을 '유언비어'라고 쓰며 책임을 광주시민에게 돌린 노태우 회고록 수정에 대해서도 "개정판이 나오면 수정하겠다"며 두루뭉술한 태도를 보였다. 겉으로는 사과했지만, 속으로는 '어쨌든 사과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5·18기념재단이 "노씨 일가는 매번 5·18단체에는 알리지 않고 광주를 방문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다.
▲ 당연히 적지 않은 국민이 이번 사과가 재산분할금으로 2조원가량을 요구하며 이혼 소송 중인 노소영 관장을 위한 꼼수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보내고 있다. 전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노태우 비자금 관련해 "민사상 소멸시효도 배제해 상속재산 범위 내라면 사망한 후 그 상속자들한테까지도 배상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한다"는 경고에 허리를 숙이는 시늉만 했다는 의구심이다.
그래서 '몰래 참배'라는 냉소까지 나온다. 사과는 말로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모호한 사과, 해명성 사과가 아닌 '진짜 사과'다. 사과에는 감정을 담아야 하고 잘못을 소상히 알려야 하며 상대 마음을 헤아려 구체적 대안을 내놔야 한다.
5·18 피해자와 유족에게 진정으로 사죄할 마음이 있다면 먼저 노태우 회고록 수정과 함께 비자금의 실체부터 밝혀야 한다. 그래도 이들이 노 전 대통령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지 않고 용서만 구하는 사과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진정성 없는 사과는 때론 화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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