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코미디의 수요가 예전만 못하고, 전문 예능인의 입지마저 좁아진 시대다. 게다가 유튜브와 OTT를 중심으로 콘텐츠 소비 구조가 재편되며 코미디언과 연기자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제작진의 사고도 유연해졌다. 다양한 장르물의 확산 속 개성 있는 배우에 대한 수요가 커졌고, 자연스럽게 코미디언도 정극의 중심으로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그동안 코미디언은 작품 속 감초 역할로 등장해 극의 긴장을 풀어주거나 웃음을 유도하는 '에피소드형' 캐릭터였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조진세는 주인공의 조력자로 등장해 능청스러운 연기를 펼쳤고, 이수지는 '눈물의 여왕'에서 남자 주인공의 교회 누나로 등장해 배우 김지원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며 웃음을 유발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흐름은 바뀌었다. 정극 연기자로서의 존재감을 확보하려는 코미디언이 늘고 있으며, 그 스펙트럼도 넓어지고 있다. 최근 장도연은 이옥섭 감독의 영화 '너의 나라'(가제)의 주연을 맡아 구교환과 로맨스 연기를 펼친다. 데뷔 19년 만의 스크린 도전이다. 홍윤화는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24시 헬스클럽'의 주요 인물로 출연해 열연 중이며 김준현은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의 주인공을 맡아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이미 그 전조는 있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김신영은 형사 역을 맡으며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줬고, 그해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넷플릭스 'D.P.시즌 2'에 출연한 문상훈은 시즌 2 스토리의 중심을 차지했음에도 웃음기 하나 없는 연기로 호평 받았다. 이들은 코미디언이 단발적인 특별 출연을 넘어 작품 자체에 잘 스며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정극 배우로서의 잠재력을 입증했다.
코미디언의 연기 진출이 확산된 배경에는 여러 요소가 있다. 우선 스케치 코미디, 콩트 등에서 이미 연기를 통한 웃음을 오랫동안 훈련 받은 이력이 연기력에 대한 신뢰로 이어진다. 짧은 시간 안에 캐릭터를 만들고 감정을 전달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제작진 입장에서도 '현장에 강한 배우'로 평가 받는다. 무엇보다도 코미디언 특유의 타이밍 감각은 극 중 리듬을 조절하는 데 강점으로 작용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콘텐츠 포맷의 다양화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인기를 얻으며 전통적인 미남미녀 중심의 전형적 주인공에 대한 수요 뿐 아니라 개성이 뚜렷한 생활형 배우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작품 속 설정 역시 현실적이고 디테일해지며, 코미디언은 '자연스러운 감정선'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로서 도약했다.
제작진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박찬욱 감독은 김신영의 캐스팅을 두고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고, 'D.P.'의 한준희 감독은 문상훈의 연기력에 대해 "양쪽 트랙을 다 재미있게 한 덕에 촬영장이 즐거웠다"고 전했다. 단순한 '깜짝 카드'가 아닌, 현장의 분위기와 연출의 결을 이해하고 맞춰주는 배우로서 신뢰를 얻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여전히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프레임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프레임을 연기로 돌파하는 시대다. 감정과 이야기의 흐름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코미디언의 연기 도전은 더 이상 ‘파격’이 아닌, 자연스럽게 확장된 하나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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