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프리미엄' 유혹…'텅장' 만드는 카드 한 장 [기자수첩-금융증권]

이세미 기자 (lsmm12@dailian.co.kr)

입력 2024.03.04 07:00  수정 2024.03.04 07:00

VIP 모으고 '혜자' 카드는 단종

연회비 비싸져도 혜택은 '글쎄'

소비 패턴 맞는 카드 선택해야

신용카드 이미지. ⓒ뉴시스

어느 날 자신의 이름 앞에 VIP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고 가정해보자. 어딜 가든, 누굴 만나든 극진히 대접받았던 특별한 경험을 쉽사리 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카드사들이 이런 심리를 이용해 VIP 고객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실제 이 전략은 성과를 내고 있다. 적게는 10만원부터 200만원이 훌쩍 넘는 고액의 연회비가 필요하지만 VIP, 프리미엄이라는 고급 단어에 소비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쯤되면 프리미엄 카드 혜택을 세세하게 비교·분석해봐야 한다. 정말 프리미엄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뜻이다. 카드사별 프리미엄 카드 혜택은 비슷비슷하다. 해외 여행 수요가 늘어난 영향으로 포커스는 여행에 맞춰져 있다. 공항 라운지 이용, 동반 1인 항공권 무료 제공, 해외 럭셔리 호텔 숙박권 등이 해당된다. 여기에 골프 등 인기 스포츠 관련 혜택은 덤이다.


이런 혜택을 받기 위해 소비자가 지불해야 되는 돈은 기본 200만원이다. 실제 A카드사에서 VIP 카드를 발급받으려면 연회비 250만원을 내야한다. 누가 이 카드를 발급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갑 사정이 여유로운 소비자들일테니 말이다.


물론 VIP 카드, 고액의 연회비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 프리미엄 카드 범위는 넓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10만원대의 연회비 카드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카드사들의 이런 마케팅이 소비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라는 건 분명하다.


최근 취업에 성공한 20대 소비자인 B씨는 연회비 10만원대의 프리미엄 카드를 발급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일반 카드의 혜택에 대한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래서 연회비가 비싸더라도 자신의 소비패턴은 물론, 받고 싶은 혜택을 생각해볼 때 발급받은 프리미엄 카드가 합리적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누군가는 B씨를 똑똑한 소비자라고 평가할 것이고, 누군가는 사치라고 혀를 찰 수도 있다. 그러나 B씨가 10만원을 주고서 발급받은 카드 혜택은 이른바 알짜배기, 혜자카드로 정평 나있던 카드들의 과거 모습과 흡사하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그동안 당연히 받았던 혜택이 이제는 ‘특별함’으로 포장돼 두 배, 세 배의 값이 매겨지고 있다는 의미다. 1990년대에는 500원이면 과자 한 봉지를 살 수 있었다면 이제는 최소 2000원은 들고 있어야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신용카드에도 물가 오름세가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다소 순진한 생각이다. 고액의 연회비를 내세우는 것은 카드사들도 그만큼 돈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실제 카드사들은 업황 악화가 본격화 되던 시점부터 프리미엄 전략을 내세워 왔다.


지난해 3분기까지 신한·KB국민·삼성·롯데·현대·하나·우리·BC카드 등 국내 8개 카드사의 연회비 수익은 985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52%(689억원) 늘었다.


카드사들의 연회비 수익은 매년 증가세다. 연회비 총 수익은 지난 2019년 9894억원에서 2020년 1조685억원으로 연간 1조원을 돌파한 뒤 1조1347억원(2021년)과 1조2259억원(2022년)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누적 3분기 기준으로만 보면 지난해 수치가 금융통계가 작성된 2018년 말 이후 최근 4년 내 역대 최대치다.


이는 소비자들이 고액의 연회비 카드를 많이 발급했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뒤집으면, 카드사들이 그만큼 프리미엄 카드를 많이 만들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좁히면서 수익을 창출했다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8개 전업 카드사의 카드 458종이 단종됐다. 2022년(116종)과 비교하면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카드사들의 프리미엄 마케팅이 언제까지 시장에 통할지는 미지수다. 이는 금융 소비자들의 판단이 좌우할 것이다. 카드사들이 좁혀놓은 선택지에 속지 말고 자신의 형편에 맞는 카드를 부지런히 찾아야 하는 이유다.


카드사들은 서민경제의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요즘 같은 때는 이 조차 사치로 느껴진다. 평범한 소비자들에겐 해외 고급 호텔 숙박권을 받을수 있는 금테 두른 카드보다, 마트 계산대에서 내밀수 있는 할인 많이 해주는 내 카드 한 장이 더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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