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에 있는 별마당도서관을 찾았다. 천정에 닿을 듯한 높은 서가에 책이 꽂혀있는 풍경은 가슴을 들뜨게 한다. 2년 동안 집에만 있으면서 쓴 황동규 시인의 시를 감상하며 코로나로 인한 아픔을 함께 나누었다.
별마당도서관의 높은 서가와 책ⓒ
십여 년 전에 매일 출근하던 코엑스였지만 오랜만에 들렀더니 많은 변화로 어리둥절하다. 삼성역과 지하로 연결된 코엑스몰 중심에는 별마당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 시설은 신세계프라퍼티에서 운영하고 도서관은 영풍문고에서 관리한다. 중앙홀에 들어오면 천정이 트여 체육관처럼 넓은 광장이 확 펼쳐져 압도된다. 사방에 설치된 13미터나 되는 아파트 3~4층 높이의 서가에는 7만 권 이상의 책이 빼곡히 꽂혀있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입이 쩍 벌어진다. 2층에는 책을 볼 수 있는 다양한 테이블이 빙 돌아가며 놓여 있다. 노트북을 펼쳐놓고 작업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다. 바닥에 주저앉아 책을 보는 사람들도 군데군데 보인다. 굳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커피를 마시며 머물러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다. 별마당도서관이 개관 6주년을 맞았다는데 이제야 알았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별마당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는 '전국자동차여행' 작가 책ⓒ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한다. 몇 년 전에 출간한 책 제목을 넣고 검색해 본다. C8(국내 여행) 구역에 ‘부부가 함께 떠나는 전국 자동차 여행’이라는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이 많은 책 중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니 감격스럽다. 출간된 지 7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독자들에게 달라지거나 새로운 곳을 보완하여 개정판으로 인사를 드려야 할 텐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코로나 기간에도 소액의 인세가 들어오는 것 보니 자동차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
기업이 영리 목적으로 운영한다면 850평이나 되는 넓은 공간 중에 카페에서 판매하는 빵과 음료수 수익이 고작일 테니 수지가 맞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지 않을까?. 국민의 문화 수준 향상을 위해 책으로 소통하는 열린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사회공헌 차원에서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365일 연중무휴로 개방되어있다. 손님들이 보고 난 책을 제자리에 정리하고 넓은 서가에 꽂혀있는 책을 관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별마당도서관 서가와 한석현 작가의 ‘다시 나무’
별마당도서관 중앙광장에는 ‘제5회 열린 아트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한석현 작가의 ‘다시, 나무’가 거대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가구에 사용됐던 폐목재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인 고목으로 새롭게 태어난 모습을 표현했다고 한다. 멋진 고목처럼 보이는데 자세해 살펴보니 식탁의 다리, 책상의 위판, 갈라진 널빤지 등 오래되어 쓸모없어진 나무 소재들로 만들어져있다. ‘다시 나무’라는 이름과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아이디어가 기발하지 않은가?. 대상을 받기에, 충분한 것 같다.
높은 서가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하는 관광객ⓒ
이곳의 방문객들은 기념촬영 하느라 여념이 없다. 서울 관광의 명소로 자리매김한 것인지 히잡을 두른 아랍인들을 비롯한 외국 관광객들도 단체로 들어와 서가와 고목을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이곳저곳 다녀서 피곤했던지 나이 드신 분들은 의자에 앉아 쉬고 있다. 금싸라기처럼 비싼 코엑스 센트럴플라자 중심에서 마음대로 책을 읽으며 머물 수 있는 복합문화 공간을 보면 외국 관광객들은 얼마나 부러워할까? 세계 어디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설이 아닐 것 같다.
별마당도서관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7시에 시인, 교수, 사진작가, 아나운서 등 문화, 예술 분야의 명사들을 초청하여 강연과 공연을 통해 삶의 행복을 교감한다. 오늘은 고교 교과서에 실린 ‘소나기’ 작가로 잘 알려진 황순원 시인의 아들인 서울대 명예교수 황동규 시인의 ‘코로나를 넘어서’라는 주제의 특강이다. 6시쯤 중앙홀 강연장의 50여 석 되는 좌석은 빈틈이 없고 주변에는 서서 듣는 사람들로 꽉 메워진다.
강연중인 서울대 명예교수인 황동규 시인과 청중들ⓒ
코로나가 한창 심한 지난 2년 동안 작성한 시에 관해 배경설명을 곁들이며 팔순 중반의 나이에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낭송한다. 이번 코로나는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 긴 터널이었다면서, 해방 이후 6.25사변 빼고 장기간 삶을 뒤흔든 사태는 없었다고 회고한다. 모든 약속과 강연과 모임이 줄줄이 다 뜯겨나갔는데 노년에 접어드는 시기와 겹쳐서 더욱 고통스러웠단다. 하루 확진자 16만 명 쓰나미를 뚫고 후배 문사들이 몰고 온 밴을 이용하여 태안 꽃지해변 카페 테라스에서 구수한 얼그레이를 마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어 고맙다고 하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픔이나 위기가 없는 평안한 삶보다 이런 고난을 겪는 삶이 더 매력적이고 의미가 있어 시로 산문으로 썼다고 한다. ‘평안한 일상보다 고단한 삶이 더 매력적’이라니?.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강연 후 이벤트를 통해 운 좋게도 황 교수의 ‘오늘 하루만이라도’라는 제목의 시집 한 권을 선물로 받았다. 책을 소지한 사람들에게 간단히 대화도 하며 일일이 붓 펜으로 사인해 주신다. 내 차례가 되자 익숙한 이름 같다며 인자한 웃음으로 악수를 청한다. 격려 차원에서 하신 말씀이겠지만 기분이 좋다. 수필가라고 소개하자 더욱 반가워하시면서 열심히 하라고 다독여 주시는 모습에서 여유와 인생의 연륜이 묻어난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이런 기품이 서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멋진 노익장이 부럽다.
황동규 시인으로부터 시집 사인을 받은 후 악수하는 작가ⓒ
별마당도서관을 뒤늦게 안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첫 방문에 좋은 강연까지 듣게 된 것은 행운이다. 기업이 수익을 떠나 국민에게 사색의 공간으로서뿐 아니라, 강연과 공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 같다. 가장 상업적인 도심 한가운데에 가장 비상업적인 문화적 공간으로 자리 잡은 별마당도서관은 많은 사람의 일상에서 찬란히 빛났다. 앞으로 이런 공간이 더욱 퍼져 국민의 문화 수준을 높여주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완화되어 나들이가 자유롭게 됨에 따라 다양한 문화행사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 열심히 찾아다니며 견문을 넓혀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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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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