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당국과 사교육 업자 사이 이권 카르텔 지적
대통령의 수능시험 문제 우려와 지적 일리 있어
출제하는 사람도 모르고 가르치는 사람도 모르는 문제 출제
현재 공교육의 낙후한 관성과 제도 혁파해야
ⓒ데일리안 DB
수능 시험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이 수능 시험을 공교육 정상화에 맞춰 출제하라고 지시했는데 6월 모의고사 평가에서 지시가 반영되지 않자 교육부 담당 국장을 전격 해임하면서 사태가 불거졌다. 대통령은 연이어 그렇게 된 이유로 교육 당국과 사교육 업자 사이의 이권 카르텔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수능 논란은 윤석열 정부의 교육개혁에 시동을 거는 신호탄처럼 보인다. 아마도 교육·연금·노동 개혁이라는 3대 개혁도 순차적으로 일정에 오를 것이다.
필자는 10년 차 수학 학원 강사이다. 수능은 2010년대 중반부터 매우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몇 해 전부터는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발전했다. 필자는 기형적인 수능 시험문제 출제를 지적하는 1인시위를 한 바도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i8KNXfmDHI&t=335s)
필자의 경험을 살려 수능 시험 논란에 대한 의견을 말해 보고자 한다.
수능시험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우려와 지적은 일리가 있다. 현재의 수능 시험 문제는 도를 한참 넘어섰다. 국어 시험에는 비문학 지문이라는 게 있다. 철학·경제학·과학 등 전문 영역의 지문을 주고 문제를 풀라는 것이다. 최근 비문학 지문은 양자역학, 뉴턴 물리, 경제학에서 트리핀 딜레마 등이 출제된 바 있는데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수준이다.
아마도 문제를 출제한 출제위원도 잘 모를 것이다. 국어 시험지 한 장에는 문학·비문학뿐만 아니라 비문학 지문에 철학·법학·과학 등의 다양한 영역의 지식이 필요한데 한 사람이 그 모든 것들을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의사이면서 법률가인 것은 어렵거나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학교 교사들이나 학원 강사들도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출제하는 사람도 모르고 가르치는 사람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문제를 출제하고 풀고 채점하고 있다.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다. 간혹 현지인이 수능 영어 시험문제를 놓고 난감해하는 영상을 볼 수 있다. 한국의 수능 영어시험은 본토인도 이해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문제를 위한 문제에 해당한다. 현지인도 이해하기 어려운 영어는 도대체 어디에 쓰는 걸까? 출제자는 그런 문제를 왜 내는 것일까? 나는 수능이 끝날 때마다 자문하곤 했다.
수학도 다르지 않다. 수학은 23*37을 계산할 줄 아는 학생들에게 235*329를 계산하라는 수준의 시험문제로 가득하다. 235*329 수준의 계산은 대학에서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계산하더라도 그건 계산기가 하지 인간이 할 일이 아니다.
한국의 수능은 그야말로 거대한 바보들의 잔치처럼 느껴진다.
수능 시험 문제가 비정상적이 된 결정적인 이유는 변별력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공정성과 변별력이 필요한데 현행 교과로는 그걸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학교 교과를 기준으로 시험문제를 낸다면 서울대와 연고대를 희망하는 학생을 변별할 수 없다. 그들 모두는 그저 공부 잘하는 학생이다. 당연히 서울대와 연고대는 학생들을 변별하기 위해 별도의 시험, 가령 대학 고사를 희망할 것이고 이는 수능 붕괴로 이어진다. 결국 학교 교과만으로는 변별할 수 없으니 학교 밖에서 기형적인 문제를 끌어다 변별을 하려 한 것이다.
그런 진단이 맞는다면 여러 가지 해결방안이 가능하다. 첫째는 교과의 수준을 높여 교과에서 출제하더라도 변별할 수 있도록 하거나 둘째 전국 단위 시험을 없애고 학교별로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과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이미 학교는 시대·과학기술 발전 추세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있다. 또한 유튜브 등 온라인의 확산은 교과 콘텐츠를 넘어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발전한 학교라는 정체성을 뿌리로부터 흔들고 있다. 따라서 시대와 과학기술의 발전 추세에 맞게 교과·학교의 콘텐츠를 대대적으로 혁신하고 그 연장선에서 시험문제와 형식 또한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 맥락에서 중요한 것은 공교육의 혁신이고 공교육을 안온한 공간에 머물게 하는 낙후한 관성과 제도를 혁파하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보면 국가와 정부의 적극적인 리더십을 통해 공교육의 능동적인 혁신을 유도하고 그에 맞춰 자연스럽게 사교육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 옳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사교육을 이권 카르텔로 규정하고 과도하게 속죄양을 만드는 방식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고 교육개혁에 필요한 에너지를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미래를 위한 과제로 교육·노동·연금 개혁을 제시한 바 있다. 작금의 수능 논란도 그 일환인 듯하다. 대중의 지지에 연연하지 않고 할 일을 하겠다는 취지에 공감하고 응당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일단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이권 카르텔 수준의 사회정치적인 접근이 아니라 AI나 디지털 문명과 같은 문명사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그와 별도로 작금의 수능 논란은 당장 몇 개월 남은 수능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관련이 있다. 필자는 매년 수능을 치르는 학생들을 보아 왔다. 현 상황이라면 당장 9월 모의평가부터 문제가 된다. 수십만의 학생들이 문제 하나하나를 놓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만약 문제 몇 개라도 문제가 되어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면 거의 대책이 없다.
외과 수술해야 하는데 마취약이 없다면 아마도 수술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는 11월 수능을 앞두고 시험문제 출제를 논하는 것은 그런 문제이다. 조금이라도 입시에 관련을 둔 사람들은 당장 6월부터 시험문제를 개선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그러나 치명적인 제도의 안정성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대담하게 사고하되 당면해서는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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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민경우 시민단체 대안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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