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홍종선의 배우발견㊼-1] ‘슬픔의 삼각형’ 칼 역의 그 배우


입력 2023.05.30 11:23 수정 2023.06.04 19:37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해리스 딕킨슨 전라연기 “남자배우 노출 정상화, 기쁘다”

‘말레피센트 2’ 필립 왕자, ‘마티아스와 막심’ 변호사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옥스퍼드 가문 외동아들

‘가재가 노래하는 곳’ 로맨티스트에서 악역까지

배우 해리스 딕킨슨 ⓒ 이하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배우 해리스 딕킨슨 ⓒ 이하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볼 때마다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배우가 있다. 정우성, 하정우 같은 톱스타 배우야 아무리 연기 변신해도 헷갈릴 리가 있겠는가마는 신인배우라고 해서 늘 새롭게 보이진 않는다. 그만큼 기본 연기력을 갖추고 있고, 그 이상으로 내면에 상황마다 다르게 꺼낼 수 있는 여러 마스크를 지닌 배우의 경우 ‘이 배우가 그 영화의 그 배우였어?’라는 감탄을 준다. 선구안은 못 돼도 배우를 못 알아볼 때의 낭패감은 관객에게도 기자에게도 때로 즐거움이다.


외국인 배우의 경우, 이목구비의 특성을 뚜렷이 기억하는 게 한국인 배우보다는 쉽지 않은 영향도 있어서 낭패감을 안기는 때가 더 있다. 그래도 바탕은 같다. 인상적 연기를 펼쳤고 그래서 눈에 담아 두었는데, 다른 작품에서 또 다른 인상적 배우를 발견하고 ‘와, 누구지?’ 하며 출연작을 확인해 보니 그때 그 배우일 때 신난다.


최근 즐거운 낭패감을 맛보는 배우, 향후 성장해 나가는 미래를 지켜볼 생각에 미리 기분 좋은 배우는 해리스 딕킨슨이다.


영화 포스터 ⓒ 영화 포스터 ⓒ

연휴를 앞두고 147분에 달하는 영화 ‘슬픔의 삼각형’(수입·배급 그린나래미디어㈜, 제공·공동배급 ㈜플레이그램, 공동배급 메가박스중앙(주)MEGABOX, 공동제공 (주)하이스트레인저)을 보았다. 지난해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이다.


한 남자가 겪는 부조리를 통해 인간 밑바닥의 치졸한 본성과 사회구조의 문제점을 끄집어내는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을 좋아하는 터라 당시 누차 예매를 하고도 밤낮없이 이어지는 일정 속에 ‘예매 취소’ 버튼을 눌려야 했는데. 제70회 칸에서 ‘더 스퀘어’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지 불과 5년 만에 다시 같은 트로피를 거머쥔 결과를 보며 ‘아, 어떻게 해서든 봤어야 했는데!’ 크나큰 아쉬움에 맞닥뜨린 영화다.


칸에서 놓친 영화를 1년 만에 보러 들어갈 때는 일이 아니라 철저히 즐기자는 마음이었다.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더 스퀘어’에 이어 ‘남자 부조리극’ 3부작을 완성하는 ‘슬픔의 삼각형’, 무슨 일이든 마침표가 중요하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기사를 쓰고 있다. 즐거운 발견의 결과다.


모델이 아니라 남모델, 배우가 아니라 여배우, 이제는 사라져야 할 차별 언어 ⓒ 모델이 아니라 남모델, 배우가 아니라 여배우, 이제는 사라져야 할 차별 언어 ⓒ

영화는 남자 모델 오디션 장소에서 시작한다. 여러 남성 모델이 카메라에 포착되는 가운데 유독 한 남자가 도드라진다. 단순 인트로가 아니라 저 배우가 주연인가? 크고 잘생겨서만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이 바로 옆에 선 이들과 대별되게 좋고, 귀공자처럼 생겼으면서도 어딘가 어눌하고 억울한 느낌을 복합적으로 풍기는 게 스치는 단역으로 그치기엔 ‘계속 등장했으면’ 하는 기대를 만들었다. 그 배우가 바로 해리스 딕킨슨이다. 그런데 못 알아보고 계속 나왔으면, 조연 이상은 됐으면 조바심을 냈던 거다.


‘슬픔의 삼각형’은 장소를 옮겨가며 3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되는데, 해리스 딕킨슨이 맡은 인물 칼로 시작해서 칼로 끝난다. 단지 남자 부조리극이어서, 그 남자가 칼이어서만은 아니다. 칼은 영화의 제목은 ‘슬픔의 삼각형’과 여러모로 관련이 깊은 인물이다.


먼저 칼이 모델 오디션을 볼 때, 면접자들이 칼의 양 눈썹 사이 미간 주름을 보고 ‘슬픔의 삼각형’이 있다며 보톡스 맞아야겠다고 자기들끼리 말한다. 미간에 팔자(八) 주름이 있으면 어딘가 슬퍼 보여 모델에게는 적합지 않으니 미용시술로 없애는 게 당연하다는 듯 호응을 주고받는다.


고정된 성관념을 벗어난 '평등'을 외치는 칼 ⓒ 고정된 성관념을 벗어난 '평등'을 외치는 칼 ⓒ

사실 칼에게 ‘슬픔의 삼각형’ 미간 주름이 있어 슬퍼 보이는 게 아니다. 영화를 보면, 남자 모델로 살아간다는 게 여러모로 억울하고 슬픈 측면들이 있다. 면접 대기자들을 영상 카메라로 촬영하며 선배 모델로 보이는 루이스(토비아스 소위드 분)가 질문한다.


‘모델이 되겠다는데 부모가 찬성하셨나요? 같은 일을 해도 여자 모델의 3분의 1밖에 못 받고, 모델이 아니라 남자모델로 불리는 데도요? 게이인 동료 모델들의 추근댐을 당해야 하는데도요?’.


남자 배우를 배우라 하고 여자 배우는 굳이 ‘여배우’라 부르는 세상, 여자 선생님이 훨씬 많은데도 굳이 ‘여선생’이라 부르고 남자 선생은 그냥 선생님인 사회. 여교수, 여학생, 여류소설가…차별적 호칭을 여자들이 당하는 줄 알았더니 모델계에서는 역전돼 있다.


식사를 끝낸 후의 미묘한 타임, 누가 계산할 것인가.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가 현재의 아내와 벌였던 설전을 극화한 장면 ⓒ 식사를 끝낸 후의 미묘한 타임, 누가 계산할 것인가.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가 현재의 아내와 벌였던 설전을 극화한 장면 ⓒ

칼의 억울함과 슬픔은 연인 야야(찰비 딘 크릭 분)와의 관계에서도 적용된다. 야야는 여자 모델이다. 야야가 박수갈채를 받으며 선 런웨이 전광판에 주제 의식을 담은 문구가 떠오른다. ‘인류는 평등하다. 지금 행동하라, 사랑하라’. 첫 번째 이야기에서 영화는 인류 이전에 연인 사이에서조차 남녀가 평등한가, 우리에게 묻는다.


패션쇼가 끝난 후 두 청춘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했다. 웨이터가 청구서를 식탁 위에 올려두고 가는데 야야는 딴청이고, 칼이 카드를 올려놓자 야야가 ‘고맙다’고 말한다. 칼은 문제를 제기한다. 어제 식사 때 내일은 네가 산다고 해놓고 왜 계산하지 않느냐, 계산서 갖다 놓는 걸 못 봤다, 진짜 못 본 거 맞느냐,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 야야가 카드를 내지만 사용 불가이고, 현금으로 계산하겠다며 50유로를 꺼내는데 식사비는 그 이상이다. 칼은 부족한 만큼은 내 카드로 계산하라고 다시 카드를 내는데, 야야가 50유로를 가져간다. 결국 저녁 식사는 칼에게 독박이다.


패션쇼 측에서 제공한 호텔 룸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칼은 폭발하고 야야도 응수한다. 야야는 돈으로 치사하게 군다고 하고, 칼은 돈이 아니라 성역할에 대한 고정이 싫은 거라고 울부짖는다. 벌이도 네가 좋으면서 식사비는 당연히 남자가 내라는 식, 나를 이용하는 태도가 싫다며 ‘평등’하고 싶다고 말한다. 당연히 오늘 식사비 갚으려 했는데 이렇게 재촉할 줄은 몰랐다며 야야가 50유로를 ‘옜다’ 건네자 칼은 돈이 핵심이 아니라는 듯 지폐를 엘리베이터와 건물 틈 사이로 버린다. 칼만 내리고 야야는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간다.


연인 사이에도 권력의 피라미드는 작용한다. 상대적으로 피라미드의 하층에 존재하는 칼의 분노와 투쟁을 실감 나게 연기한 배우 해리스 딕킨슨 ⓒ 연인 사이에도 권력의 피라미드는 작용한다. 상대적으로 피라미드의 하층에 존재하는 칼의 분노와 투쟁을 실감 나게 연기한 배우 해리스 딕킨슨 ⓒ

첫 번째 에피소드를 상세히 얘기한 이유가 있다. 영화가 말하는 ‘슬픔의 삼각형’의 진짜 의미, 성별에 의해서든 부에 의해서든 권력에 의해서든 위와 아래가 존재하는 ‘피라미드’ 삼각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평등’한 관계와 사회를 탐색하는 영화의 주제 의식이 단적으로 또 쉽게 드러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등과 같이 여자가 공평을 말할 때보다 남자가 평등을 외치니 상황의 본질이 한눈에 보이고 심지어 코믹하기까지 하다. 남자 상사의 여자 부하 직원에 대한 갑질과 같은 익숙한 상황을 여자 상사에 남자 부하로, 상대적으로 덜 익숙한 상황으로 역전시켜 보여줄 때 문제점들이 또렷이 떠오르는 것과 같은 식이다.


배우 해리스 딕킨슨은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영국 왕실의 프린스처럼 생긴 외모와 자태로, 잘나가는 여자친구를 상대로 평등을 쟁취하려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결코 지질해 보이지 않게, 그러나 제법 쪼잔해 보이게 잘 소화했다.


[홍종선의 배우발견㊼-2] ‘슬픔의 삼각형’ 해리스 딕킨슨…으로 이어서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