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운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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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자신은 바렝카슈 왕국의 공주며 언젠간 바렝카슈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고 있다. 아침에 일어난 공주가 가장 먼저 하는 건 자신의 규칙을 노래하는 일이다. 첫째 나는 평범한 도시 사람이다. 둘째 나는 종종 울적함을 느끼고 무기력하다, 셋째 나는 친구가 적어 조금은 외롭다, 넷째 나는 늘 무언가에 쫓기며 바쁘게 살아간다. 다섯 나는 소극적이지만 모두에게 친절하다. 여섯 열심히만 하면 나는 잘 될 거란 희망을 갖고 산다. 공주는 지구에서 평범한 시민들과 섞여 살기 위함이다.
공주는 월세방에서 과일 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고, 이들을 불러 파티를 연다. 밀린 월세를 받으러 온 집 주인 할아버지, 과일이 썩어 따지러 온 아주머니, 신비한 이웃 관찰일지를 쓰기 위해 연구차 온 학생, 그리고 동네 꼬마가 공주의 집 테이블에 둘러앉아있다.
공주는 이들에게 맛있는 파스타를 대접하기 위해 요리에 도전한다. 맛은 없지만 공주가 너무 신나 있어 솔직히 말은 할 수 없다. 자신의 체통을 지키기 위해 만든 요리를 대접한 공주는 만족스러운 하루를 마무리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고백할 것이 있다며 뜸을 들이고, 공주는 아빠로부터 자신이 사실은 바렝카슈의 공주가 아닌, 오류동에 사는 엄마 아빠의 소중한 딸이라는 말에 뛸 듯이 기뻐한다. 사실 공주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부러웠다. 드디어 공주는 공주란 테두리에서 나와 자유를 만끽한다.
'난 공주, 이건 취미'는 아기자기한 뮤지컬 영화다. 선명한 색감과 미장센, 그리고 밝고 발랄한 뮤지컬 넘버가 조화롭게 연출됐다. 공주 역의 배우 조혜림의 사랑스러운 연기가 무엇보다 돋보인다.
'난 공주, 이건 취미'는 한 때 온라인에서 밈처럼 유행하던 말이다. 각박한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직장인이 '난 공주고 이건 취미'라고 주문을 외우며 스스로를 다독일 때 쓰이곤 했다. 이 영화는 맘을 센스있게 활용해 역으로 일상 속 자유의 소중함을 제시했다. 메시지를 영화의 톤 앤 매너에 맞게 무겁지 않게 전달해 한 편의 동화로 만들어내는 마법을 지켜보는 시간이 즐겁다. 정지운 감독과 배우 조해림의 미래를 기대케 하는 한 방이다. 러닝타임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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