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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전 원장님, 이제라도 사과하길 바랍니다 [기자수첩-사회]


입력 2023.04.01 07:02 수정 2023.04.01 07:02        이태준 기자 (you1st@dailian.co.kr)

선조들, '용서할 때까지 빌어서라도 문제 해결하라' 후손들에 조언

검찰은 수사기관…혐의 인정된다고 보이는 피의자 한해서만 기소

朴 변호인 "공모할 위치 아니고, 공모한 적도 없다" 궁색한 변론만

국정원 직원, 첩보문서 삭제 명백…朴, 도의적 책임지고 사과해야

2020년 9월 북한군이 피살한 해수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 이대준 씨의 배우자가 지난해 6월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이 씨의 아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대독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9월 북한군이 피살한 해수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 이대준 씨의 배우자가 지난해 6월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이 씨의 아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대독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이른바 '서해 피격 공무원' 공판이 진행됐다. 공개 재판이 원칙이지만,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인사의 진술이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할 우려가 있기에 비공개로 전환됐다. 유의미한 진술이 오가며 탄력 있게 진행될 거라 예상했던 공판은 2시간이 채 안돼서 끝났다. 하루라도 빨리 재판이 진행되길 바라는 유족들은 다음 기일을 또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인생은 타이밍이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선조들도 이런 표현을 일찌감치 알았다. 잘못하면 사과를 하고, 상대방이 용서할 때까지 빌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다. 고두사죄(叩頭謝罪)라는 사자성어의 풀이다. 하지만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이 말을 모르는 모양이다.


지난 2020년 9월 23일 서해상에서 선량한 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해 피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순식간에 단란했던 가정은 풍비박산 났다. 민주당 소속 몇몇 정치인들은 망인을 월북자로 몰아갔다. 망인 유족들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기도 전이었다.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은 기적처럼 2년 뒤 반환점을 맞는다. 2022년 6월 해경과 국방부가 망인의 월북 시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재발표했기 때문이다. 이후 검찰은 문재인 정부의 의도적인 월북 조작 혐의가 있었다며 당시 정부 고위급 관계자들을 상대로 수사를 진행했다. 이에 따라 박 전 원장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서욱 전 국방부장관 등 정관계 인사들이 차례대로 기소됐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2020년 7월 3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권력기관 개혁 당정청 협의에 참석해 마스크를 벗으며 미소를 짓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2020년 7월 3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권력기관 개혁 당정청 협의에 참석해 마스크를 벗으며 미소를 짓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수사기관인 검찰은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되는 피의자에 한해서만 기소를 한다. 박 전 원장으로선 억울할 수도 있겠다. 처음부터 줄곧 '공소장'에 적시된 국정원 직원들로 하여금 관련 첩보 보고서 등을 무단 삭제하게 한 혐의에 대해 부인하는 입장이니 말이다. 그러나 박 전 원장의 마음이 변호인과는 일치하지 않았다. 그의 변호인은 공판에서 "(박 전 원장은) 다른 피고인들과 공모할 위치에 있지 않고 공모한 적도 없다"며 궁색한 변론만 펼쳤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변명거리만 찾다 보니 그릇된 주장을 방어할 근거가 부족했기에 발생한 일이다. 주장이 잘못되면 논리가 꼬인다. 논리가 꼬이기 시작하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말 자체가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박 전 원장에게 유가족이 "한 말씀만 해보라"며 얼굴 코앞까지 가서 말을 건넸으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변호인 뒤에 숨어있기만을 택했다.


아직 기회는 남았다. 1심 결론이 나기 전에 박 전 원장이 마음을 바꿔 유가족에 도의적 용서라도 구하는 것이다. 억울한 망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이다.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하면 된다. "당시 국정원장으로서 국정원 직원들이 첩보 보고서를 삭제하는 동안 관리를 제대로 다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박 전 원장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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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기자 (you1s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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