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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발견㊶] 누구를 빚어도 차지다, ‘신성한, 이혼’ 강말금


입력 2023.03.14 16:18 수정 2023.03.14 16:18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배우 강말금 ⓒ연합뉴스 제공 배우 강말금 ⓒ연합뉴스 제공

“귀한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전부터 어떤 사람의 꿈을 영화로 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찬실이는 복도 많지’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3년 전 시나리오 받아서 촬영, 개봉까지 행복했습니다. 먼저 글을 쓰고 영화 만들어주신 김초희 감독님 감사하고, 큰 힘이 돼 주신 윤여정 선생님 감사합니다. (함께 작업한) 김영민, 윤승아, 배유람 배우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영화 만들어주신 감독님, 스태프에 감사드립니다. 코로나에도 마스크 쓰고 찾아주신 관객분들 감사합니다.”


지난 2021년 2월 제41회 청룡영화상에서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로 신인여우상을 받은 배우 강말금의 수상 소감이다. 마흔두 살의 나이에 신인상을 받는 쾌거를 이룬 강말금이 길고 긴 소감을 말해도 누구 하나 눈 흘기지 않았을 텐데, ‘행복했다’ ‘감사하다’를 키워드로 깔끔하고도 짤막하게 말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강말금의 트로피에 머리를 끄덕였을 것이고, 수상 이후엔 그의 연기 내공에 걸맞은 다양한 색깔의 배역과 한층 높아질 비중을 기대했을 것이다.


제41회 청룡영화상 신인상 수상자로서 핸드프린팅 행사에 참여한 배우 강말금 ⓒ연합뉴스 제공 제41회 청룡영화상 신인상 수상자로서 핸드프린팅 행사에 참여한 배우 강말금 ⓒ연합뉴스 제공

솔직히. 아쉽다. 분명 수상 이전보다 자주 안방극장에서 만날 수 있었고, 이전보다 배역이 커진 것도 사실이지만 기대했던 것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배우 강말금의 태도는 달랐다. 수상 9개월 뒤, 제42회 청룡영화상을 앞두고 열린 41회 수상 배우들의 핸드프린팅 행사에서 강말금은 다시 ‘감사’의 마음을 꺼냈다.


“좋은 영화로 상을 받고 나서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드라마와 영화에 초대받아서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아주 놀라운 문이 열렸다’는 느낌 속에서 지난 1년을 보냈는데…. 상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저를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 캐스팅해주셨던 김초희 감독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팬심에 아쉬움이 클 수 있다. 더불어 배우 강말금의 연기를 차근히 지켜보다 보면 좀 더 주요한 역할로, 더 빈도 높게 만나고 싶은 시청자이자 관객의 욕심이 절로 인다는 걸 말하고 싶다. 일테면, 현재 4회까지 방송된 드라마 ‘신성한, 이혼’에서의 연기를 얘기해 볼까.

라면집 주인 할머니 막내딸, 강말금의 미소 ⓒ이하 JTBC 드라마 홈페이지 '현장스케치' 영상 화면 갈무리 라면집 주인 할머니 막내딸, 강말금의 미소 ⓒ이하 JTBC 드라마 홈페이지 '현장스케치' 영상 화면 갈무리

아직 이름도 없다. 변호사 신성한(조승우 분)과 그의 절친들인 장형근(신성한 법률사무소 사무장, 김성균 분)과 조정식(신성한의 건물에 세 들어있는 조정식부동산 사장, 정문성 분)의 단골 라면집 주인 할머니의 딸이다.


‘세 친구’는 라면집에서 해장도 하고 힐링도 한다. 그런데 라면집이 문을 닫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에 버금가는 사건이다. 하늘이 모자란 세 남자를 버리지 않고 다시 문이 열렸다. 할머니는 보이지 않고 젊은 여성이 있다. 주인이 바뀌었나, 다행히 그건 아니다. 할머니가 허리를 삐끗하셨고 병원에 입원 중이셔서 딸이 대신 문을 열었단다. 딸이면 다인가, 성한과 형근은 의심의 눈초리를 드러내지만, 라면 한입에 녹아내린다. 두 눈도, 입술도 ‘하트’가 된다.


이 대목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아, 신성한 무리의 ‘힐링 장소’가 없어지지 않겠구나…에서 머리가 멈추지 않는다. 할머니 딸에게 자꾸 눈이 간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뭘 하다가 아픈 엄마를 대신해 급한 대로 라면집을 맡았는지, 하다못해 이름이 뭔지도 알려주지 않는데 ‘어쩐지 알 것만 같다’.


필자의 추리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배우 강말금은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정보를 알릴 기회를 아직 얻지 못했음에도, 아직은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난 위치에 놓여 있음에도 그에 대해 상상하게, 추론하게 만드는 연기를 한다. 결코 튀게 연기하지 않고, 뾰족 나서지 않는데도 보는 이를 주목시키는 힘이 강말금에게 있다.


두건 하나도 신중하게 고른 배우 강말금 ⓒ 두건 하나도 신중하게 고른 배우 강말금 ⓒ

기본 힘만으로 이뤄진 결과도 아니다. 말할 수 없이 상세한 연기, 그냥 그 인물이 되어 그 공간에서 움직이니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만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라면 끓이는 한 장면만 봐도 그렇다. ‘라면 장인’ 어머니의 고유 영역을 침범할 만큼 현란한 손놀림을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임시로 대충 떠맡은 양 엉터리 손짓도 아니다. 분명 요리에 일가견이 있고 진심인 자의 정성스럽고 신중한 손길로 면을 집어 들고 살피고 내려놓으며 음식을 완성해 간다. ‘엄마와 분야는 달라도 전문가겠구나’라는 믿음을 주는 솜씨다.


인물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으니, 얼마 되지 않는 대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마카롱 가게를 낼 예정이구나, 와인을 즐기고 가격과 상관없이 괜찮은 와인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을 지녔고, 어, 프랑스에서 파티셰(빵, 케이크, 과자 따위를 만드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공부를 했나? 그래서 단골인 성한네들도 딸을 라면집에서 본 적이 없었나?


정보를 모으다 상상으로 이어지는 일, 강말금은 시청 경험을 풍부하게 하는 배우다. 단언컨대, 누가 연기하든 이런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건 아니다. 심지어 강말금은 시청자 혼자 대본도 쓰게 한다. 마카롱 가게 열지 말고, 형근에게 팔았듯 ‘라면에 와인’의 마리아주(어울림)에 도전하기로 해요. 계속 나와야지, 딴 데 가면 싫어! 마카롱을 후식으로 팔면 되잖아. 형근에게 와인 값만 받고 라면은 서비스 주듯 마카롱을 서비스로 주는 건 안 돼요, 내 전공에 대한 알맞은 가치를 받아야지. 정히, 주고 싶으면 1cm짜리 공짜로 주고 규격 크기는 판매를 하는 건 어때요.

소연-형근 커플에 대한 기대 ^^ ⓒ 소연-형근 커플에 대한 기대 ^^ ⓒ

스스로 생각해도 참, 웃긴다. 재미를 느끼자 한 발 더 나간다. 자, 그럼 세 친구 중에 누구와 짝을 맺어 줄까. 신성한 옆에는 이서진(한혜진 분)이 있고, 장형근이 좋겠다. 결혼에 상처받아 허덕이는 형근에게는 나설 때 나서고, 빠질 때 빠질 줄 아는 상황 판단 능력과 배려가 깊은 그(답답해서 이름을 적기로 한다, 김소연^^) 소연 씨가 필요하다. 소연과 정식 커플보다는 소연-형근이 짝으로 은근히 어울린다.


상상에서 드라마 현실로 돌아와서. 소연은 아직 라면 가게 밖으로 한 발도 뗀 적이 없다. 그런데 갇혀 있어 보이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느껴진다. 음식에 머리카락을 떨구지 않되 패션 감각으로도 보이는 머리띠 수건, 포니테일(말꼬리) 모양으로 높이 묶어 땋아 내린 머리모양도 자유의 느낌을 보탠다.


자신이 어떤 스펙을 지녔고, 왜 지금 라면집에서 일하고 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자신감이 느껴지는 사람. 서비스를 파는 자로서 손님 일에 깊이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순간엔 위로의 와인과 서비스 라면을 내줄 줄 아는 균형감각과 인간미를 지닌 사람. 배우 강말금은 몇 장면 등장하지 않고도, 별 대사 없이도, 온몸으로 뿜어내는 분위기와 성격으로 캐릭터를 또렷이 빚어 우리에게 전달한다. 아직 자세히는 몰라도 괜찮은 어른임을 직감하게 한다.

드라마 '신성한, 이혼'에서 김소연 역을 맡은 배우 강말금의 '볼 맛 나는' 연기 ⓒ 드라마 '신성한, 이혼'에서 김소연 역을 맡은 배우 강말금의 '볼 맛 나는' 연기 ⓒ

말했듯 이런 직감은 필자의 감각에서 온 게 아니라 강말금의 배우로서의 힘과 연기 면면에서 배태된 것이다. 이 차지고 쫀득한 떡, 그것도 콩가루 듬뿍 묻은 인절미 같은 연기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런 연기를 하는 배우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는가. 맘껏 그 좋은 연기를 흠뻑 느낄 수 있도록 더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으로 만나고 싶은 건, 당연한 시청자의 권리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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