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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영화 뷰] '도덕적 가치·평등' 강조하는 오스카의 "빌어먹을 유리천장" 깨질까


입력 2023.03.12 12:47 수정 2023.03.12 13:45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한국시간 13일 오전 9시 중계

전 세계 영화인들의 축제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오스카의 관전 포인트는 무려 11개 부문에 최다 노미네이트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양자경이 여우주연상 수상 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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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경이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안는다면, 아시아계 배우 최초의 기록이다. 2021년 윤여정은 '미나리'로 한국인 최초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영화 '사요나라' 우메키 미요시 이후 64년만의 아시아계 배우의 수상이라 큰 관심을 받았다.


양자경 역시 수상을 향한 기대와 욕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양자경은 최근 자신의 SNS에 보그의 '백인이 아닌 이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한지 20년이 넘었다. 2023년에는 바뀔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했다. 해당 기사는 그 동안 백인 배우들이 수상을 독차지했던 '화이트 오스카'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와 함께 양자경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시 할리우드에서 더 많은 배역을 맡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이 기사는 양자경과 함께 유력 수상자인 '타르'의 케이트 블란쳇이 언급됐다. 양자경이 SNS에 이 기사를 공유한 것은 후보 이름이나 경쟁작을 언급하는 전략이 금지된 아카데미 규칙에 위반이다. 양자경은 바로 삭제했지만, 논란은 꽤 길게 갔다.


잡음을 일으킨 소동이었지만, 양자경이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에 대한 열망과 '화이트 오스카'의 관행을 깨고 싶어 한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도 양자경은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소식이 전해진 날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수많은 선배 여성 배우들의 어깨를 딛고 내가 이 자리에 서게 돼 만감이 교차한다. 빌어먹을 유리천장을 어서 깨버리고 싶다"라며 "내게 제발 그 오스카를 줬으면 좋겠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와 같을 것이다. 내게도 할리우드의 꿈을 이루는 데 40년이 걸렸다"라고 거침없이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아시아 영화인들에게 오스카의 하얀 벽은 높고 견고하다. 먼저 최다 후보로 지명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앤원스'가 미국의 배급사 A24의 작품인 것을 잊지 않고 가야 한다.


아카데미 역사상 아시아 배우가 후보로 선정된 횟수는 23번, 수상은 4번이었다. 여기에 올해 양자경, 케 후이 콴, 홍차우, 스테파니 슈, 그리고 지난해 리즈 아메드, 윤여정, 스티븐 연 등 7명을 제외하면 1928년부터 2019년까지 단 열 여섯 명의 배우 밖에 오스카의 초대장을 받지 못했다.


오스카가 '백인들만의 잔치'로 유색인종 배우들과 작품들에게 불리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2016년에 배우 부문 모든 후보에 백인만 지명되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비난의 수위가 세지고 사회적으로도 인종 차별이 문제가 되자 오스카는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행보를 보여왔다.


그리고 2020년 오스카 91년 역사상 최초로 비영화권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을 비롯해 4관왕을 차지했다. 당시 봉준호 감독은 "외국어영화가 각본·감독상을 받은 경우는 몇 번 있었는데 작품상을 받은게 최초라고 하죠. 왜 그랬을까요?"라는 수상 소감으로 그 동안 유독 백인에게 수상이 집중됐던 아카데미를 꼬집었다.


이후 아카데미는 수상작을 선정하는 회원 비율에서 인종과 여성의 비율을 40%까지 늘리고, 2024년부터는 작품상 수상작 선정 기준에 다양성을 추가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영화 묘사, 제작자, 영화 홍보 등 4개 분야에서 최소 2개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수상 후보에 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주연이나 조연 배우 중 최소 한 명은 아시아계, 흑인, 라틴계 등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 출신이어야 하고, 연출, 촬영, 분장 등 제작에서도 최소 두 분야 담당자가 여성이나 성소수자, 장애인 같은 사회적 소수자여야 한다는 항목이 만들어졌다.


다양성을 품기 위해 여러 각도로 움직이고 있는 오스카지만 여전히 하얗고 보수적이라는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올해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국제장편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 역시 한국은 물론 아시아인들에게 의문의 결과다. 현지 매체들도 후보 선정 결과를 두고 "칸영화제의 선두 주자였던 '헤어질 결심'을 무시하기로 한 아카데미의 결심은 범죄"라고 비난했다.


일각에서는 '헤어질 결심'의 후보 탈락에 오스카가 자국의 주도권을 되찾고, '기생충', '미나리'에 이은 아시아 영화 돌풍을 견제하기 위한 처사라는 분석도 내놨다. 또한 미국 자본이 들어간 영화지만 아시아계 감독과 배우들로 포진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11개 후보 부문에 오른 것이 다른 아시아 영화들을 배제하게 된 이유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외에도 시상식을 앞두고 평등과 함께 오스카가 지향하는 인권, 도덕적 가치에 흠집을 내는 사례도 일어났다. 아카데미 시상식 시상자로 선정된 견자단이 영국의 GQ 하이프와의 인터뷰 중 홍콩의 송환법 반대에 대해 "시위가 아닌 폭동"이라고 표현한 것이 문제가 됐다. 홍콩인들은 세계 최대 청원 사이트 '체인지닷오알지'에 중국 공산당을 지지하는 견자단을 시상식 초청 명단에서 제외해달라고 요구하는 청원을 게시했다. 오스카가 견자단을 시상자로 부르는 일은 인권과 가치에 심각한 해를 끼침과 동시에 언론의 자유정신 침해, 홍콩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화계 최고의 권위를 누리는 아카데미의 선택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대외적으로 가치와 명분을 중요시하는 만큼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을까. 양자경의 여우주연상 수상 여부와 함께 눈 여겨 지켜봐야 할 중요 포인트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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