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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지켜온 K반도체 위상…잃으면 국회가 책임질건가[기자수첩-산업IT]


입력 2022.12.02 07:00 수정 2022.12.02 07:00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미국, 반도체 패권 위해 1980년대 日, 2020년대 中 '정조준'

코로나로 수 십조 손실 본 유럽, 대만 등 앞다퉈 조 단위 투자

한국만 반도체법 제자리걸음…파격적 지원으로 기업 지원 나서야

반도체 관련 이미지.ⓒ픽사베이 반도체 관련 이미지.ⓒ픽사베이

미·중의 반도체 '파워 게임'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모습이다. 원천기술을 무기로 미국은 각국에게 대중국 수출 비중을 낮출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반도체 군기잡기'에 나선 것은 궁극적으로 중국 기술의 몰락을 염두에 둔 것이다. 1980년대 반도체 강자였던 일본을 침몰시킨 것처럼 말이다.


1980년대 공격적인 투자와 정부의 지원을 업고 성장한 일본 반도체는 1988년 글로벌 점유율 50%를 넘어서며 미국을 누르고 1위 자리에 올랐다. '일본 천하'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에 보조금을 수억 달러를 지급했다며 반덤핑 혐의로 조사에 착수했다. 마이크론·AMD 등 미국 대표 기업들은 특허 침해를 이유로 일본 기업들을 무역대표부에 제소하기까지 했다.


미국의 저돌적인 공세에 굴복한 일본은 미국산 반도체 비중을 높이고, D램 수출 가격을 인상한다는 굴욕적인 반도체 협정을 두 차례 체결한 뒤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 덕분에 미국 인텔은 1위 반도체 기업 자리를 되찾았고 한국 반도체는 일본의 위축을 틈타 약진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반도체 장기 집권도 1980년대 '반도체 전쟁' 이후임을 부인할 수 없다.


반도체 헤게모니 다툼은 현재진행형이다. 경제·산업을 벗어나 국가안보 문제로 확전된만큼 단기간에 끝날 싸움으로 보이지 않는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가장 위협이 되는 중국을 누르기 위해 반도체 뿐 아니라 전기차·배터리를 겨냥한 법안을 잇따라 통과시키며 자국 중심의 공급망 정책을 공격적으로 펴고 있다.


미국이 전전긍긍할만큼 반도체는 미래 산업을 책임질 핵심물자로 부각되고 있다. 자율주행차, 5G,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핀테크 등 첨단 기술산업에 가장 많이 투입된다. 미래 경제·산업 주도권 잡으려면 반도체부터 확보해야 한다. 유럽, 일본, 중국이 자국 중심 반도체 정책을 앞다퉈 내놓으며 조 단위 투자를 진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2030년 반도체 생산능력 20% 확보를 목표로 최대 430억 유로(약 59조8000억원)를 투자하는 'EU 반도체칩법(EU Chips Act)를 추진중이다. 일본은 도요타, 키오시아, 소니, NTT, 소프트뱅크, NEC, 덴소, 미쓰비시 UFJ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 자동차·부품, 낸드플래시 반도체, 이미지센서, 통신사 8곳이 뭉쳐 드림팀 '라피더스(Rapidus)'를 결성했다.


노골적인 미국의 견제를 받고 있는 중국은 '과학기술 자립·자강'을 강조하며 반도체 국산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실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지난 4년간 연평균 27%씩 매출 증가율을 보이며 칩4(한국, 미국, 대만, 일본)를 맹추격하고 있다. 대만은 법안 개정을 통해 세액공제 규모를 기존 15%에서 25%로 대폭 올렸다.


이처럼 각국이 발로 뛰는 사이 한국만 뒷짐을 지고 있다. 반도체특별법이 2건 발의됐지만 여야 정쟁에 밀려 5개월째 표류중이다. 여야는 아직까지도 투자에 대한 대기업 세액공제 비율을 10%로 할지, 20%로 할지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미국과 대만이 25%의 파격 조건으로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거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감 떨어지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더 많은 세제혜택을 주고, 다양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곳에 투자 계획을 세우는 것이 당연하다. 실질적인 대책 없는 한국의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구호는 제대로 된 동력이 될 수 없다. 한참이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내 반도체법을 가지고 '기업들의 해외 이전을 막고 자국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얼마나 큰 소리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반도체 헤게모니 싸움은 장기전이다. 기업은 투자로, 정부와 국회는 정책이라는 무기로 전쟁에 임해야 한다. 반도체 전쟁 희생양이 1980년대 일본에 이어 2020년대에는 한국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여야는 그때 가서 서로 남탓 할 생각 말고 당장 반도체 생태계를 살릴 파격적인 법안을 내놓는 데 머리를 맞대는 게 책임감 있는 행동일 것이다.


한 번 뒤쳐진 경쟁력은 여간해서는 따라잡기 힘들다. '반도체 강국'이라는 타이틀은 법안을 아무리 뒤늦게 수 십개, 수 백개 만든다고 해서 쉽게 되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회는 반도체 성패를 가를 책임이 막중함을 직시하고 법안 통과에 힘을 보태는 한편 후속 대책 마련에도 속도감 있게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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